14년 제자리걸음 '차별금지법', 이번엔 통과되나

머니투데이 안채원 기자, 정경훈 기자, 박수현 기자, 이창명 기자 2021.06.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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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차별금지법의 세상, 유토피아일까(하)

편집자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논의가 본격화됐다. 나이 또는 성별, 학력 등으로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누구나 공감하는 고귀한 가치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차별금지법 입법이 우리 사회에 몰고올 변화를 짚어본다.

표심 눈치보는 의원들…"차별금지법 처리, 적어도 대선 이후"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주민 위원장 직무대행이 '군사법원법 개정 관련 공청회 계획서 채택의 건'을 통과시키고 있다. 2021.6.9/뉴스1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주민 위원장 직무대행이 '군사법원법 개정 관련 공청회 계획서 채택의 건'을 통과시키고 있다. 2021.6.9/뉴스1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이 성립 요건을 채우면서 법안 처리 여부에 이목이 쏠린다. 국회 내부에선 대선을 앞둔 시점인 만큼 올해 안에 처리되긴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23일 국회에 따르면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청원이 국회 국민동의청원 요건인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자동 회부됐다.



법사위는 기존에 발의돼 있던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차별금지법, 지난 16일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범여권 의원들이 발의한 평등법 제정안 등을 해당 청원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

그러나 상임위에 회부됐다고 해서 곧바로 논의와 처리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여야 간사가 서로 협의를 통해 논의 테이블에 어떤 법안을 올릴지 결정한다. 선입선출(회부된 순서대로 처리하는 방식) 원칙도 고려 대상이다. 물론 차별금지법을 시급한 논의 대상에 올릴 수도 있지만 차별금지법의 특성을 볼 때 시급한 법안으로 분류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21대 국회에서 10만명 이상 동의를 얻은 청원은 16건이었는데, 소관 상임위에서 심사가 이뤄진 안건은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에 관한 청원' 등 3건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야당이 차별금지법 처리에 신중한 입장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7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차별금지법 관련 질문을 받고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며 "제가 미국에서 보면 동성애와 동성혼 같은 것도 상당히 구분돼서 다뤄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혼재되고 있다. 아직 입법의 단계에 이르기에는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법사위 소속이자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인 전주혜 의원은 이날 '차별금지법에 대한 당론을 정했는지'를 묻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에 "어떤 한 법안에 대해 당론을 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차별금지법을) 법사위에서 심사하려면 선입선출 원칙에 따라 아직 시한이 많이 남았다"고 말했다.

법사위 야당 간사인 윤한홍 의원실의 한 관계자도 "시일 내에 법사위에서 논의되긴 어려울 것 같다"며 "안건으로 이야기가 오가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전에 비해 기류가 바뀐 것은 사실이지만 여당 의원들도 여전히 차별금지법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한 현직 의원실의 비서는 "대선을 앞두고 누가 그 예민한 법안을 논의하려고 하겠냐"면서 "폭탄 돌리기처럼 서로 미루고 논의는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현직 의원실의 비서관도 "법안 처리는 적어도 대선 이후가 될 것"이라며 "차별금지법 제정 관련해서 지역구에서 계속 구두 항의가 들어오고 문자 메시지도 이어지는 상황이다. 표를 먹고 사는 의원들 입장에서 쉽게 나서기 힘들다"고 했다.

맞불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국회에 따르면 전날(22일) 평등법 제정에 반대하는 내용의 국회 국민동의 청원이 성립 요건을 채웠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커지는 가운데 여야 모두 여론의 흐름을 주시하며 논의 시점을 저울질할 공산이 커 보인다.

14년째 국회 문턱 못넘은 차별금지법...기독교·재계에 발목
차별금지법이 또 한번 국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2007년 이후 줄곧 국회의 문을 두드린 차별금지법은 14년 동안 기독교계와 재계의 반발에 부딪혀 번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10만서명 보고 및 입법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1.6.15/뉴스1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10만서명 보고 및 입법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1.6.15/뉴스1
◇'국회 청원' 10만명 돌파한 차별금지법…법사위 회부=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온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최근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차별금지법 청원은 지난달 24일 공개됐는데, 이달 14일 10만명 동의를 받아 회부 조건을 충족했다. 법사위는 해당 청원과 함께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6월 29일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평등법)도 함께 심의한다. 각 법안 발의에는 대표 발의자를 포함 10명, 24명의 의원이 참여했다.

위 법안의 목적은 모든 영역의 차별 금지, 차별로 인한 피해의 효과적 구제, 차별 예방과 실질적 평등 구현 등이다. 차별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 조항이 빠졌으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선관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당대표 후보자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대회에서 개회선언을 하고 있다. 2021.4.18/뉴스1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선관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당대표 후보자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대회에서 개회선언을 하고 있다. 2021.4.18/뉴스1
◇14년 간 '제자리 걸음'…왜? = 차별금지법은 2007년 최초 입법 시도 이후 총 8차례(정부입법 1번, 의원입법 7번) 발의됐다. 그러나 제대로 된 논의도 거치지 못하고 좌초됐다. 보수 기독교계의 반대와 재계의 우려가 높은 '벽'으로 다가왔다.

2007년 10월 2일 법무부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라 차별금지법을 입법 예고했다. 법무부는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실현'이라는 제정 이유를 밝히며, 병력(질병 이력), 학력, 출신 국가와 민족, 성적 지향 등 20개 차별금지조항을 설정했다.

그러나 당시 기독교계는 '성적 지향' 항목을 문제 삼아 반대했다. '동성애 허용법안'이라는 표현도 사용하며 비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재계도 '병력이나 학력 차별 금지 조항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방해한다'며 반대했다. 차별금지법 시행에 따른 사업장 별로 지출될 시설 개보수 비용 등도 문제라는 지적도 일었다. 그 결과 '성적 지향' '학력' 등 7가지 차별금지 사유가 삭제됐지만 이마저도 2008년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18~19대 국회에서는 노회찬·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김한길·최원식 민주통합당 의원 등이 각각 대표 발의했으나 회기 만료 등으로 모두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는 발의조차 되지 않았다. 시도는 있었지만 법안 발의 요건인 의원 10명이 모이지 않은 것이다.

조영관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18·19대 국회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이 과도한 항의를 받아서 20대 국회 동안에도 충분히 논의를 거치지 못한 면이 있다"며 "다만 최근 성소수자의 극단적 선택, 고용·외국인·여성 차별 이슈가 관심을 많이 받다보니 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최근 관련 법안 발의의 배경으로 작용한 듯하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장병 건강권 보장 및 군 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1.5.25/뉴스1  (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장병 건강권 보장 및 군 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1.5.25/뉴스1
◇인권위 "평등법, 21대 국회의 우선 과제"…법원도 '차별 인정' 확대 기조= 국가기관도 '차별 철폐' 방향에 힘을 싣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1일 성명을 통해 "평등법 제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라는 간절함으로 15년을 기다려 온 국민의 준엄한 요청"이라며 "제 21대 국회가 우선적으로 답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평등법 제정에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도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헌법의 평등권을 구체화하고 여성,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입법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평등법 제정 필요성에 대한 법무부 입장을 밝혔다. 다만 "차별 금지 사유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으므로 적절한 의견 수렴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의견도 더했다.

법원도 재판에서 '차별 인정의 폭'을 점점 넓히는 추세다. 김기윤 변호사(김기윤법률사무소)는 "헌법재판소가 군 가산점제, 호주제, 혼인빙자간음죄,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하며 차별 금지 기조를 띄어 왔다"며 "간통죄를 폐지하면 간통을 형사처벌할 수 없는 것처럼 법원 판결도 헌재 기조에 맞춰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민사 법원에서도 여성 상속 비율이 점점 남성과 동등하게 변해가고 있다"며 "헌재 결정이나 판례를 보면 차별 금지의 영역의 확대가 큰 흐름이다. 차별 금지 영역은 부딪혔다 뚫렸다를 반복하며 넓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 변호사는 "차별에 대한 형사처벌 필요성, 종교 활동 위축 가능성은 법 시행 후 논의를 통해 조율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기업이 차별금지법에 따르면서 지출하게 될 일부 비용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지원하도록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학력별 임금 차등도 금지?.. 차별금지법 생기면 채용시장 대혼란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10만서명 보고 및 입법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1.6.15/뉴스1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10만서명 보고 및 입법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1.6.15/뉴스1
차별금지법이 시행될 경우 당장 채용시장에서 대혼란이 예상된다.

차별금지법은 모집과 채용, 교육, 배치, 승진, 임금에 자금의 융자에서도 차별을 금지한다고 명시했다. 특히 학력 등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은 앞으로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 변호사는 "완전히 비슷한 업무나 근로를 하는데 외부 조건으로 차별이 이뤄졌다면 금지할 수 있다고 본다"며 "하지만 학력 등으로 인해 주어진 업무와 역할이 다르고 이에 따라 처우도 다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장 고용노동부는 이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현재 시행 중인 법률보다 범위가 훨씬 더 포괄적이어서 단순히 한 부처의 결정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차별금지법의 경우 구체적인 사안을 따져보려면 사실상 모든 부처가 얽혀 있는 문제여서 채용이나 근로조건 수준의 차별을 넘어선다"면서 "거의 모든 부처가 세심하게 따져봐야 하고, 이에 따라 성소수자나 종교 등에 대한 차별금지 규정이 각 주무부처 소관 법률에 적용 여부가 결정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채용이나 근로조건에 대해서는 성별이나 외모, 장애, 비정규직 등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고 있고, 관련 규정을 위반하면 사업주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법률이 시행 중이다.

이를 테면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채용절차법)은 채용 과정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 우려가 있는 구직자를 보호하기 위한 금지 규정을 두고 있다. 채용절차법에선 구직자의 용모와 키, 체중 등 신체적 조건과 출신지역이나 혼인여부, 재산, 부모형제의 학력이나 직업, 재산을 기재하도록 요구하거나 입증자료로 수집할 수 없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을 통해서는 여성이 혼인이나 임신, 출산 등의 사유로 채용이나 근로 조건이 달라지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상 차별이란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성별, 혼인, 가족 안에서의 지위, 임신 또는 출산 등의 사유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채용 또는 근로의 조건을 다르게 하거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는 경우'로 정의한다.

이 법에선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금지 규정도 두고 있다. 여성근로자 모집시 용모나 키, 체중 등을 조건으로 요구하는 행위도 금지한다. 이밖에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도 모집과 채용, 승진, 정년, 해고 등에 있어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고용형태에 있어선 비정규직이 불합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도 시행되고 있다. 기간제법에는 기간제 근로자라는 이유로 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금지 규정이 존재한다. 여기서 말하는 차별적 처우란 임금은 물론 정기상여금이나 명절상여금, 경영성과에 따른 성과금, 그밖에 복리후생 조건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만큼 기업들 입장에선 이미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소연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이미 각종 입법을 통해 그간 불합리했던 여성이나 비정규직, 장애인에 대한 차별 등은 개선되고 사라지는 추세"라며 "하지만 학력 등을 통한 구별을 차별의 범위에 포함시켜 놓는다면 현장에선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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