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살리자" 선진국들이 '탄소중립' 속도내는 진짜 이유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2021.06.21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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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상)-⑤

편집자주 대한민국이 '탄소중립'의 긴 항해를 시작했다. 기존의 화석 연료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 강자인 대한민국에 탄소중립은 생존의 필수요건이자 새로운 기회의 장이다. 2050년 탄소 발생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우리 기업들의 준비 상황, 풀어야할 과제 등을 점검한다.

"전 세계적 행동과 합심한 리더십을 통해 2021년이 우리의 행성을 위한 터닝포인트가 돼야 한다."

사흘간의 일정 후 13일 영국 콘월에서 막을 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는 기후변화 대응의 시급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다시 한번 담겼다. 올해는 2016년 발효된 파리기후변화협정이 적용되기 시작하는 원년이다. 지구의 기온상승폭을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5년마다 상향 조정하며 이행상황을 주기적으로 보고하게 된다. 지난해 만료된 12년간의 교토의정서체제가 선진국 중심으로 이뤄져 한계가 컸던 반면 파리협정은 190개국 이상이 참여해 이행만 된다면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이 파리협약 이행을 위한 구체적 논의가 이뤄질 제26차 유엔기후협약 당사국 총회(COP26)는 오는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다. 지난해 말 열렸어야 하지만 코로나19로 한 해 밀렸다. 이번 총회에선 파리협약의 주요 내용 중 하나인 글로벌 탄소시장 추진 방안 등이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G7 정상회의 주요 의제 '기후변화' …속도 내는 미국·유럽
무엇보다 올해 1월 출범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파리협정에 재가입하고 지난 4월 기후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등 기후대응을 글로벌 의제로 띄우면서 논의에 가속이 붙고 있다. 이 기후정상회의에서 미국이 버락 오바마 정부 당시 내놓은 탄소 저감 목표를 약 2배 높인 걸 포함해 영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선진국이 기존보다 늘린 목표치를 내놨다. EU는 이 정상회의 전 탄소 저감 목표 및 재생에너지 이용률을 높이는 내용 등의 유럽기후법에도 합의했다. 중국도 지난해 9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206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선진국이 기후대응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일차적으로 기후 위기를 막아야 한다는 당위성과 함께 이를 통해 창출될 경제적 기회가 있다. 탄소 중립은 화석연료를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다. 새로운 인프라 투자 필요가 커지고 일자리를 늘릴 기회가 된다. 바이든 정부가 추진 중인 '미국 일자리 계획'에 친환경 분야 예산이 상당 부분 배정된 이유다. EU 집행위는 일찌감치 2019년 에너지, 산업 등 분야별 탄소배출감축안을 담은 '그린딜' 정책 구상을 내놓고 최소 1조유로를 투입하기로 했다. 일본과 영국도 지난해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 투자계획을 공개했다.



유럽은 탄소배출권 거래제 및 탄소국경세 도입에도 적극적이다. EU는 이미 2005년 역내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했다. 탄소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적은 국가로 상품·서비스를 수출할 때 부과하는 탄소국경세도 2023년까지 도입한다는 계획으로, 이 법안 초안을 다음 달 공개할 예정이다. 미국도 탄소국경세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라 실현될 경우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수출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동시에 홍수·가뭄 같은 기후변화가 금융 리스크 원인이 될 수 있어 중앙은행의 정책목표에 기후대응이 포함돼야 한다는 차원의 논의도 올해 들어 부쩍 늘었다.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이 지난 3월 '탄소중립 목표에 부합하는 경제성장'을 정책목표에 처음으로 추가했고,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기후변화 대응 방안을 모색 중이다.

중앙은행이 기후변화 대응을 정책목표로 삼아야 하느냐 여부 및 개입 방식에 대한 논의는 아직 이견이 있으나 논의 속도는 빨라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관련해 구체적인 행보를 보인다면 중앙은행의 대응 움직임은 한층 빨라질 수 있다. 연준은 주요국 중앙은행과 금융감독 당국들이 기후관련 금융 리스크 관리를 위해 2017년 만든 녹색금융협의체(NGFS)에 지난해 말 가입했다.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산하 금융안정위원회(FSB)의 기후재무정보공개 테스크포스(TCFD)가 2017년 내놓은 권고안에 기반한 기업 기후변화 관련 정보공시 의무화 주장도 G7이 힘을 싣고 있다.


탄소시장 이견 해소, 중국·인도 동참 등 실제적 과제
이러한 변화가 실행되기까지에는 넘어야 할 산들이 있다. 당장 환경단체 측은 이번 G7 정상회의가 부족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G7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개도국의 기후위기 대응에 2025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를 투입하겠다는 2009년 약속을 재확인하며 이 기여액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구체적 증액 목표를 밝힌 곳은 7개국 중 독일·캐나다뿐이다. 캐서린 페튼젤 기후행동네트워크 이사는 로이터에 "G7은 기후금융에 대한 구체적 약속을 합의하는 데 실패했다"며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의 정상들이 말뿐 아닌 돈 쓰는 걸 바랐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온실가스의 약 4분의 1을 배출하는 G7이 석탄발전 이용을 끝내는 구체적 시한에 합의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G7 정상회의 성명은 "탄소저감장치를 갖추지 않은 석탄 발전에서 탈탄소화 발전 시스템으로 전환을 더 가속해야 한다"고만 명시했다. NYT는 G7가 구체적인 합의를 하지 못해 중국 등에 석탄발전 축소 등을 요구할 힘을 떨어트렸다고 했다.

유럽이 추진하는 탄소국경세 등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가 쉽지 않을 거란 전망도 상당하다. 이미 탄소배출 감축을 상당히 달성한 선진국 입장에게는 세수확보 기회지만 신흥국엔 새로운 무역관세가 된다는 시각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구체적 방법론 단계에선 '선진국 대 신흥국' 간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 최대국인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이 동참하지 않으면 전세계적인 탄소배출 감축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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