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재일유학생 간첩 사건 불법구금, 재심 당사자 외 피해자도 손배청구 가능"

뉴스1 제공 2021.05.1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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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위반으로 3명 불법구금…1명만 유죄 판결
2심 "당사자 외 나머지 소멸시효 지나"→대법 파기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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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같은 사건으로 여러 명이 불법구금을 당해 그 중 한 명만 유죄 판결을 받고 이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경우, 재심 당사자뿐만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도 재심선고일을 기준으로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장의균씨 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장씨는 1987년 '재일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국가안전기획부, 국군보안사령부 소속 수사관들에 의해 불법구금돼 가혹행위를 당했다. 장씨는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기소돼 징역 8년 및 자격정지 8년을 선고받고 1988년 판결이 확정됐다.

장씨의 배우자인 윤혜경씨도 1987년 7월 영장 없이 임의동행 형식으로 강제연행돼 5일간 구금돼 조사를 받았다. 윤씨는 국가보안법위반 피의자로 입건되지는 않았으나, 윤씨에 대한 진술조서는 장씨의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됐다.



민주동우회 간사였던 한해수씨 역시 1987년 7월 영장 없이 임의동행 형식으로 강제연행돼 10일 넘게 구금돼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조사받았다. 한씨의 피의자 신문조서는 장씨의 유죄의 증거로 쓰였고, 한씨는 간첩불고지죄로 불구속 송치됐으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장씨는 이후 유죄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고 2017년 11월 서울고법은 장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장씨 등은 2018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은 "국가 소속 수사관들이 영장주의 및 적법절차 원칙에 반해 원고들을 불법 구금하고 고문, 협박 등 가혹행위를 해 위법 수사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국가의 주장에 대해서는 "권리남용"이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1심은 국가가 장씨에게 8억원, 윤씨에게 2억원, 한씨에게는 3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한다고 판결했다. 또 장씨의 자녀 3명에게 각 1억원, 형제 3명에게 각 25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반면 2심은 "윤씨와 한씨는 불법구금 상태가 해소된 1987년 7월쯤에는 손해 및 가해자를 인식해 손해배상청구 등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손해배상 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했다고 판단했다.

장씨에 대해서는 "재심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국가 소속 안기부 및 보안사 수사관들의 불법행위를 주장하며 국가배상을 청구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소송제기에 객관적인 장애사유가 있었다"며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봐 청구를 인정했다.

2심은 장씨에게는 1심과 같이 8억원의 배상금을 인정했다. 다만 장씨가 앞서 국가로부터 7억6449만원의 형사보상금을 지급받은 사실이 있기 때문에 이를 공제한 3550만원을 국가가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윤씨에게는 본인의 구금부분을 제외하고 장씨의 가족으로서 피해를 본 부분만 인정해 1억7000만원의 배상금을 인정했다. 한씨의 청구는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 판결 중 윤씨와 한씨의 대한 부분을 파기해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윤씨와 한씨에 대한 불법감금 또는 가혹행위는 모두 장씨의 유죄를 뒷받침할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며 "비록 윤씨, 한씨에 대한 유죄확정 판결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재심을 통해 장씨에 대한 유죄확정 판결을 취소하는 법원의 공권적 판단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윤씨 등이 수사 당시의 불법구금이나 가혹행위를 주장하면서 독자적으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는 사실상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장씨에 대한 불법행위와 마찬가지로 윤씨 등에 대한 소멸시효도 씨에 대한 재심무죄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기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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