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일감 몰아주기 '자진시정' 신청...딜레마 빠진 공정위

머니투데이 유선일 기자 2021.05.18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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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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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의 깃발. 2021.4.28/뉴스1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의 깃발. 2021.4.28/뉴스1


"공정거래위원장 입장에서, 또 경제학자 입장에서 '동의의결'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공정위 사건에 있어 궁극적으로 시정조치를 내더라도 법원에 가서 불복하고 최종적으로 확정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문제가 있다. 동의의결은 잘만 운영된다면 신속하게 피해자 구제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정위가 선택할 수 있는 좋은 선택지라고 본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의의결제가 '면죄부'라는 지적을 받고 있음에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동의의결제는 기업의 자진시정, 피해구제를 조건으로 법 위반 여부를 가리지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다.



사실 조 위원장은 지난 2월 애플에 동의의결을 적용하면서도 비슷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날 발언에 유독 눈길이 가는 것은 그 시점이 삼성그룹이 공정위에 '동의의결 신청 의사'를 밝힌 이후였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삼성 계열사들이 급식업체 삼성웰스토리를 조직적으로 부당 지원한 혐의를 조사해왔고, 올해 초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에 해당)를 발송했다. 공정위는 오는 26일쯤 전원회의를 열고 삼성의 위법 여부를 가릴 예정이었는데, 이에 앞서 17일 삼성전자는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조 위원장 발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삼성도 애플처럼 동의의결을 적용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의 동의의결 관련 규정을 살펴보면 결코 이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공정위로선 우선 '동의의결 개시 여부 결정'부터 고민거리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공정위는 '신속한 조치의 필요성, 소비자 피해의 직접 보상 필요성 등을 종합 고려해' 동의의결 절차의 개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삼성에 제기된 '단체급식 일감 몰아주기'라는 혐의를 고려했을 때 '신속한 조치'나 '피해 직접 보상' 필요성 등 요건을 충족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공정거래법상 '고발 요건에 해당하지 않을 때에만 동의의결을 적용할 수 있다'는 규정도 핵심 검토 사안이다. 공정위 조사관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에는 삼성 일부 계열사에 대한 고발 조치 의견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9명의 공정위원이 심사보고서에 담긴 의견을 '뒤집고' 해당 계열사들을 고발할 필요가 없다는 데 뜻을 모아야 동의의결 개시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의의결 개시가 결정될 경우 공정위와 관련 업계가 인정할 만한 수준의 '자진시정·피해구제안'을 도출할 수 있느냐도 과제로 남는다. 일례로 애플은 공정위로부터 계획을 두 번 퇴짜 맞았고, 이 과정에서 애플이 제시한 상생기금 규모는 당초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두 배 늘었다. 삼성이 지난달 다른 대기업과 함께 선언한 '단체급식 일감 개방'을 자진시정·피해구제안의 일부로 인정할 것인지도 문제다.

동의의결제는 2011년 말 도입돼 올해로 만 10살이 된다. 지난 10년 동안 끊임없이 면죄부 논란에 시달렸지만, 조 위원장 발언대로 '잘만 운영된다면 공정위가 선택할 수 있는 좋은 선택지'임에는 분명하다. 삼성 사안이 이런 논란을 종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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