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째 불켜진 빈소'에 뒤늦은 사과…故이선호 유족 "인정 못 해"

머니투데이 평택(경기)=정한결 기자 2021.05.1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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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선호씨. /사진제공=이철우씨고(故) 이선호씨. /사진제공=이철우씨


"많은 사람들이 선호의 사고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12일 오전 경기 평택시 안중백병원에 마련된 고(故) 이선호씨의 빈소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 이철우씨는 떠나버린 친구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선호씨의 빈소를 지킨지 어느덧 21일째. 취침 시간을 제외한 하루 대부분을 빈소에서 보낸다.

선호씨는 지난달 22일 평택항 부두에서 컨테이너 바닥에 있는 이물질 청소작업을 하다가 300㎏에 달하는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졌다. 유족 측은 현장에 안전관리자도 없었던 산업재해라며 사측의 진정어린 사과와 진상규명을 요구 중이다. 유족과 친구들은 억울함을 풀기 전까지 장례를 치르지 못한다며 21일째 빈소를 지키고 있다.



이날 선호씨가 일했던 곳의 원청 기업인 동방은 20여일만에 사과했다. 성경민 동방 대표이사는 "한 가족의 사랑하는 아들이자 삶을 지탱하는 희망이었던 청년이 평택항에서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며 "유가족의 고통과 슬픔 앞에 정중한 위로와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족 등 '이선호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사과들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은 유족 앞에 자체감사 결과 보고와 사과를 선행하지 않고, 성급하게 기자회견을 진행한 것에 유감을 표했다. 이어 "구조의 문제를 외면한채 사과의 모양만 갖추려는 행태로 보인다"며 "사과의 진정성을 받아 들릴 수 없다"고 했다.



유쾌하고 사려 깊었던 선호씨
12일 오전 경기 평택시 안중백병원에 마련된 고(故) 이선호씨의 빈소에서 선호씨의 동갑내기 친구 이철우씨가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정한결 기자.12일 오전 경기 평택시 안중백병원에 마련된 고(故) 이선호씨의 빈소에서 선호씨의 동갑내기 친구 이철우씨가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정한결 기자.
이씨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선호씨는 재미있고 사려 깊은 친구였다. 이씨는 "선호는 평상시에 유쾌하고 재밌는 친구였지만 항상 웃기지만은 않았다"면서 "생각도 깊어 친구들이 힘들어할 때 다독여주던, 힘이 되는 친구"라고 말했다.

이어 "조문 첫날과 둘째날 선호 친구만 100명이 넘게 왔다"면서 "선호가 워낙 발이 넓고 친구들에게 잘해 애정있는 친구들이 주위에 많았다"고 밝혔다.

직장이나 학교를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운 다른 친구들도 틈이 나면 빈소를 찾는 등 선호씨에 대한 친구들의 애정이 각별했다는 설명이다.


이씨는 선호씨와 고등학교 동창으로, 사고 바로 직전 주말에도 선호씨를 만났다. 선호씨가 평택항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예전만큼 자주는 아니더라도 주말에 만나 술도 한 잔하고 게임도 같이 했다.

그러기에 그는 선호씨의 비보를 듣고 믿지 못했다. 이씨는 "집에서 쉬고 있는데 친구에게 사망 소식을 처음 전해들었다"면서 "실감이 안나 멍 때리고 있다가 빈소에 오니 '이제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
선호씨의 끔찍했던 사고는 사후 15일이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이씨는 "관심이 덜하다고 아쉬운 건 전혀 없다"면서 "이제는 선호의 사고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매우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사건 관계자들에게는 아쉬움을 표했다. 이씨는 "선호에게 청소작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지게차 운전자 A씨는 선호가 죽고 1주일이 지난 뒤에 빈소로 찾아와 '억울하다'는 말만 하고 갔다"고 밝혔다.

이어 "회사 측도 우리에게 와서 '선호가 안전모 안쓰지 않았냐'는 등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면서 "진심 어린 사과와 조사가 필요했는데 (이런 식의 대응은) 너무 무례하지 않나"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이씨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인 것 같다"면서"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법을 개정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원청회사 동방은 사고 발생 20여일 만에 사과에 나섰다. 이에 대해 선호씨의 부친 이재훈씨는 사측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이재훈씨가 매우 불쾌해하고 있다"면서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명확한 입장"이라고 했다.

/사진=정한결 기자./사진=정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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