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인데 훈육이라는 부모…'맞는 아이들' 매년 는다

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2021.05.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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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전라북도의 한 병원에서 생후 8개월 여아 A양이 숨졌다. 친어머니 B씨의 상습적 폭행으로 뇌사 상태에 빠져 있던 A양은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다 세상을 떠났다. B씨는 A양을 주먹으로 때리고 바닥에 내던지는 등 뇌의 75%가 손상될 때까지 폭행했다. B씨는 폭행 이유를 '소변을 보고 칭얼거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린이날이 제정된 지 99주년이 됐지만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출산율 하락으로 아동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에도 학대 피해 아동은 되레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학대 피해 아동의 70%는 친부모가 가해자였다. 전문가들은 부모들이 '학대가 아니라 훈육'이라는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아동학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아이들 소리 줄어도 늘어나는 학대…3분의2는 입건도 안 됐다
/사진 = 이지혜 디자인기자/사진 = 이지혜 디자인기자


5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112 신고 건수는 1만6149건으로 직전해보다 11.5% 증가했다. 최근 5년간 신고건수는 △2016년 1만830건 △2017년 1만2619명 △2018년 1만2853명 △2019명 1만4484명 등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경우 정인이 사건 후 아동학대 신고가 증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신고가 더 늘어난 경향도 있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검찰에 송치되는 건수는 지난해 기준 5551건으로 전체 신고건수의 34.4% 정도다. 아동학대로 신고된 사건 3건 중 2건은 송치조차 되지 않았다.

실제 처벌까지 이뤄지는 경우는 더 적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비중은 전체 피고인 220명 중 33명(15%)다. 대다수는 집행유예(43.6%)를 받거나 벌금형(17.7%)에 그쳤다.

같은 기간 출산율이 하락하면서 만 17세 미만 아동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4년 918만명에 달했던 아동은 5년 연속 감소해 2019년 792만명까지 줄었다. 아동학대 피해아동은 2015년 1000명당 1.32명에서 2019년 3.81명으로 늘었다.


아동학대 가해자 대부분은 친부모로 파악됐다. 2019년 기준 3만 45건의 아동학대에서 가해자가 친부모인 경우는 2만 1713건(72%)에 달했다. 같은 해 숨진 아동 53건 중 46건(87%)가 친부모에게 학대를 당했다.

피해아동 84%는 원래 가정으로 돌아간다…"'학대 아닌 체벌' 이라는 인식 바꿔야"
/사진 = 뉴스1/사진 = 뉴스1
전문가들은 아동학대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인식의 개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저지르는 것은 '훈육'이고 다른 부모가 저지르는 것은 '학대'라는 이른바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 인식이 아동학대를 방치한다는 지적이다.

훈육을 가장한 학대를 막기 위해 지난 1월8일 친권자 폭력 정당화 수단이 되기도 했던 '자녀 징계권'을 삭제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사랑의 매'는 이제 통하지 않는 셈이다.

피해 아동을 다시 가해 부모가 있는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대응체계도 문제를 키운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피해아동 상황에 따르면 2019년 전체 피해아동 3만45명 가운데 2만5206명(83.9%)가 원가정으로 복귀했다. 위험요인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가정으로 아동이 다시 노출된 셈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학대 사례가 늘고 있는데도 피해아동 지원예산은 5년간 동결되는 등 대응체계의 문제가 피해아동을 재학대로 내몰고 있다"며 "'나는 아니겠지'라며 체벌을 사용하는 부모들의 인식 개선과 예산 확충 등 구조적인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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