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남양유업은 스냅이 될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2021.04.21 05:00
글자크기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남양유업 불가리스 연구결과 발표/사진=남양유업남양유업 불가리스 연구결과 발표/사진=남양유업


'10초 안에 사라지는 인스턴트 메시지'라는 독특한 방식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스냅챗으로 '제2의 페이스북'으로 불렸던 스냅은 인스타그램 등의 등장으로 2017년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스냅을 이끈 인물은 모델출신 사업가 미란다 커의 남편으로 잘 알려진 에반 스피겔이었다. 그의 독단경영 방식은 처음엔 성공하는 듯 했지만 경쟁기업이 늘어나면서 한계에 봉착했다. 거듭된 실패가 누적되자 내부 불만이 표출되기도 했는데 '직원들이 일하기 싫어하는 최악의 회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모든 결정은 스피겔이 결정했고, 임원들은 권한이 없었으며, 직원들은 회사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 지 몰랐다'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최근 남양유업 (511,000원 ▼6,000 -1.16%)의 불가리스 코로나19(COVID-19) 예방효과를 골자로 한 연구결과 발표 과정을 보면 3~4년전 스냅과 판박이다. 임상 없이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밝히는 것 자체가 무리한 판단임에도 임원 누구도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 실무자 역시 코로나19 예방효과를 발표한다는 내용을 알지 못한 채 일을 진행했다고 한다.



무리한 연구결과 발표는 시장에 혼란을 야기시켰다. 일부 편의점과 마트에선 불가리스 제품이 품절됐고, 30만원을 오르내리던 주가는 발표일 전부터 상승곡선을 그리더니 발표 다음날인 14일에는 장중 48만900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당국의 견제가 시작되자 주가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발표를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떠안게 됐다.

남양유업도 대가를 치르고 있다. 당장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세종공장의 영업정지 2개월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것이 뼈아프다. 대리점 갑질, 경쟁사 비방, 창업주 손녀 마약사건 등으로 추락한 기업 이미지는 이번 사건으로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남양유업처럼 특정기업 이름이 걸린 법(남양유업방지법, 정식 명칭은 대리점거래공정화법)이 생기고, 8년간 불매운동에 시달리는 기업 사례는 매우 드물다.



내부에선 쉬쉬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의 책임은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과 장남 홍진석 상무에 있다는게 중론이다. 마케팅 총괄책임자인 홍 상무와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홍 회장이 결정하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을 프로젝트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양유업은 회사 입장문을 언론에 배포했을 뿐, 홍 회장 명의의 사과문은 나오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여론의 표적은 오너일가로 향한다. 벌써부터 홍 상무가 회사 명의로 수입차 4대를 리스해 개인용도로 쓴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독단경영에 따른 몰락의 상징이었던 스냅은 1년여만에 다시 성장가도를 달렸다. 그동안 문책이 두려워 보고하지 않던 문제들을 하나씩 개선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해 증강현실 필터 적용과 콘텐츠 제작 등으로 신규사용자를 대거 유입시킨 것이 성과로 이어졌다.

스냅의 변화에는 스피겔의 반성이 있었다. 스피겔은 동고동락을 함께해 온 임원들이 연이어 퇴사하자 충격을 받고 독선적인 경영방식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문을 전직원에게 발송한다. 이후 새로운 임원들에 전권을 주고, 자신의 결정권은 최소화했다. 비밀리에 진행해온 중역회의를 없애고 직원들과 만나는 자리를 대폭 늘렸다. 방음 유리벽으로 차단된 사무실은 개방된 자리로 옮기고 건의사항이나 아이디어를 언제든 제시할 수 있도록 메모판을 만들었다.


현재 남양유업의 최종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는 홍 회장 일가가 장악하고 있다. 홍 회장과 모친인 지종숙씨, 홍 상무가 4명의 사내이사 중 세자리를 차지한다. 남은 한자리는 홍 회장의 신임을 받는 이광범 남양유업 대표이사 상무가 맡고 있다. 사외이사 2명은 후보추천위원회가 아닌 이사회 추천으로 선임하고 있다. 견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구조다.

남양유업은 얼마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추진위원회를 설립하고 플라스틱 감축과 사회공헌 강화를 통해 지속가능 경영을 강화한다고 했다. 문제는 E(Environment)와 S(Social)는 강조하면서도 G(Governance)에 대한 언급은 없다는 점이다. 정작 남양유업에 가장 시급한 것은 지배구조 개선임에도 말이다. 남양유업의 경영회복에 대한 해답을 모두 알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당사자만 모르는 듯 하다.

 /사진=지영호 /사진=지영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