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출신 18만 유튜버 '뉴욕주민'…가장 힘든 건 "○○ 때문이었다"

머니투데이 강민수 기자 2021.04.21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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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투업계 유리천장, 이대로 괜찮나]

편집자주 온 국민이 주식을 하는 시대다. 유례없는 '동학개미운동'으로 금융투자업계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됐다. 그러나 유독 개선이 느린 분야가 있다. 바로 유리천장이다. 여성 주식 투자자들은 대폭 늘었지만, 이들을 위한 여성 롤모델은 부족하다. 금융투자업계의 여성 직원 비율 증가에도 투자전문가로 불릴만한 증권업계 고위 임원은 대부분 남성이다. 금융권의 보수적인 분위기가 주 원인으로 꼽히지만, 국내 금융권은 해외와 비교해도 유독 여성 리더가 부족하다. 머니투데이는 금융투자업계 유리천장의 현주소와 최근 일고 있는 변화의 물결에 대해 조명해본다.

유튜버 뉴욕주민. /사진=뉴욕주민 제공유튜버 뉴욕주민. /사진=뉴욕주민 제공


"허니(Honey), 어떤 게 궁금해요?"

마치 동네 펍(Pub)에서나 들을 법한 호칭. 하지만 놀랍게도 기업 투자 콘퍼런스 때 나온 말이다. 심지어 갑을로 따지자면 '을'인 투자기업 경영진이 막대한 자본을 지닌 '갑' 헤지펀드 애널리스트에게 건넨 말이다.

미국 주식 유튜버 '뉴욕주민'이 애널리스트 시절 겪었다는 실화다. 그는 이 일화를 책 '디앤서'에서 소개하며 "장담하는데 다른 남자 헤지펀드 매니저들한테 '허니' 따위의 호칭을 감히 쓰지 못했을 것(227쪽)"이라고 강조했다. 단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볍게 여긴 셈이다.



뉴욕주민은 보기 드문 월스트리트 출신 유튜버다. 세계 최고 경영학부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을 졸업해 맥킨지·JP모건·시티그룹 등에서 근무했다. 최근까지 110억달러(약 12조원) 규모 헤지펀드에서 애널리스트 및 트레이더로 활동했다. 월가 근무 경력만 10년 이상이다.

'금융 지식의 보편화'를 목표로 시작한 유튜브 구독자 수는 1년 만에 18만명을 넘어섰다. 지난 2월에는 헤지펀드 트레이더로서의 경험과 투자철학을 담은 에세이 '디앤서'를 출간했다.



월가 생활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높은 업무 강도도, 없다시피 한 개인 생활도 아니었다. 과도한 친절과 호의로 포장된 '보이지 않는 차별'이었다.

뉴욕주민이 발 딛은 미국 IB(투자은행)·사모펀드·헤지펀드 업계는 '보이스클럽(Boys Club)'으로 불릴 만큼 남성 중심적 공간이었다. 그는 "백인 남성이 주류인 집단에서 아시아인 여성이 대등하게 경쟁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점이 수없이 많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COVID-19) 이후 국내 독자를 대상으로 시작한 유튜브에서도 역량보다 성별에 초점을 맞춘 시선은 존재했다. 지금도 성적인 모욕과 인신공격이 하루에도 수십 건 이상 쏟아진다.


머니투데이는 그가 겪은 미국 금융권 내 유리천장과 유튜브 활동을 하면서 마주한 편견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뉴욕주민과의 일문일답.
-백인 남성이 주류인 월스트리트 사회에서 아시아인 여성으로 활동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
▶보통 아시안 여성 조합을 흔히 '더블 마이너리티'라고 한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인종차별보다는 성차별이 훨씬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책에도 언급했지만 남자 매니저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느슨한 태도와 전문적이지 않은 호칭 등 무의식적인 차별이 가장 힘들었다.

어느 미팅 때는 기업 홍보부 직원이 동양인 여성인 나를 호텔 직원으로 착각해 쫓아낸 적도 있었다. 드러나는 차별은 없지만 네트워킹에서 소외되거나 선입견 등 보이지 않는 차별이 크다.

특히 헤지펀드 업계엔 여성이 너무 없다. 투자 콘퍼런스를 가도 200~300명의 애널리스트·펀드매니저들이 모이는 자리에 여성은 나 포함 4~5명에 불과했다.

최근 헤지펀드 애널리스트 교육 업무를 맡게 됐는데 평균 100여명의 신입 가운데 여성은 3명이다. 업계 진입 시점부터 여성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애초에 이 분야에 관심이 적어서 지원하는 여성 인력이 적나'라는 생각도 든다.

-경영 컨설팅 회사, 투자은행, 헤지펀드 등 월스트리트 내에서도 다양한 업계에서 일했다. 이 가운데 유독 여성비율이 낮거나 남성 중심 문화가 뚜렷하게 나타난 분야는 어디라고 보는지.
▶투자은행 내에서는 IB부문이 가장 여성이 적고 리서치는 여성 비율이 높은 편이다. 기관보다 리테일을 상대하는 부문에서도 여성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맥킨지 등 컨설팅회사는 금융권 내 다른 업계에 비해 여성 비율이 많은 편이다. 여성 파트너도 여럿 있고 컨설턴트 레벨에서 보면 여성 비율이 체감상 30~40%다.

IB 및 PE(사모펀드) 분야는 오래전부터 '보이스클럽'이라고 불릴 만큼 남성 중심적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문화적으로 바뀐 것이 거의 없어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IB에 유독 여성이 적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셀사이드'인 IB 인력이 남성일 수밖에 없는 요소는 상대 클라이언트가 대부분 남성이라 그렇다. 백인 남성은 절대 다수라 유리하다.

PE나 헤지펀드 등 '바이사이드'가 남성들밖에 없는 이유는 대부분 셀사이드 인력들이 이직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금융권 내 채용 프로세스가 정형화돼 있는데, 사모펀드·헤지펀드는 대부분 주니어 인력을 IB에서 뽑아서 데려간다. 그래서 커리어가 진행될수록 남성중심 문화가 더 심해진다.

-귀국해 국내 증권사 또는 외국계 증권사 한국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것을 고려해본 적은 없나.
▶대학생 때 한국에 있는 외국계 IB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다. 여러 하우스를 돌아다니며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여성 지원자를 거의 고려하지도 않는 분위기였다.

그 당시 한 선배가 따로 불러서 말씀해 주시더라. "너 진짜 뱅킹(IB)하고 싶으면 그냥 미국 가라. 여기는 IB에서 여자 안 써." 솔직한 조언에 지금도 감사히 여기고 있다. 사실 한국은 자본시장이 미국만큼 발달하지 않아 풀타임 커리어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업계 분위기를 대변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뉴욕주민이 지난해 출간한 에세이 '디앤서' /사진제공=푸른숲뉴욕주민이 지난해 출간한 에세이 '디앤서' /사진제공=푸른숲
-월스트리트에서도 업무와 출산·육아를 병행하는 여성이 많나.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시선은 어떤가.
▶결혼·출산·육아 및 금융권 커리어까지 해내는 여성은 굉장히 드물다. 업계 자체가 삶을 온전히 헌납하는 업무 강도를 요구하고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정글이기 때문이다.

IB 근무 당시 어느 여성 MD(매니징 디렉터)분은 출산 후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 클라이언트 미팅 자료를 검토하고 새벽까지 일하더라.

출산휴가가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지만 그걸 마음껏 쓰지 못하는 것 같다. 분위기나 눈치보다는 본인 커리어 욕심도 있고, 승진 불이익이나 혹은 동료들보다 뒤처진다는 우려가 크다.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악성 댓글 등에 시달린다고 들었다. 주로 어떤 내용의 댓글이 많은지.
▶성기 사진부터 시작해 온갖 성적인 욕이 수없이 많다. 유튜브에서 블라인드 처리가 될 정도로 심각한 수위이고 하루에 수십 개씩 있다. 개인 메일 뿐만 아니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난무하는 데 참 씁쓸하다.

더 큰 문제는 비상식적인 욕보다 '여자가 가르치려 들려 하지 마라'와 같은 말이다. 이 유튜브는 업계 종사자로서 내가 자신 있는 전문 분야 지식을 알리는 콘텐츠다. 그런데 다른 남성 유튜버들에게는 하지 않는 말을 왜 내게 하는가.

내 경력에 대해서 평가절하하며 억측을 내놓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는 전부 백오피스(업무지원) 경력인데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여자가 무슨 IB를 가고 헤지펀드에서 일했겠느냐' 등이다. 들을 때마다 매우 허탈하다. 요즘 시대에 아직도 '여자는 당연히 능력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충격적이고 슬프다.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업계 내 유리천장은 여성들이 노력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남성들이 함께 개선해 나가야 한다. 여성들이 갖는 커리어 불안감의 큰 부분은 여성 멘토의 부재다. 업계 시니어 레벨의 남성들이 멘토의 자리를 메꾸며 주니어 여성들을 도와줬으면 한다.

또 여성들이 자신의 성공에 대해 더 당당했으면 한다. 금융권에서 특별히 요구되는 성향이 있다. 자신감 있고 진취적인 모습이다. 이런 면에서 여성들이 부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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