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앨라배마주 현대차 공장. /사진제공=현대차
법으로 막히자 정부가 나서 법을 고쳤다. 기아 공장에는 국비로 화물 철도까지 깔아줬다. 기아는 공장 내부까지 들어오는 철로로 부품을 실어오고 완성된 차량을 나르면서 물류비를 대폭 낮췄다.
미국이 무엇이 아쉬워 현대차에 이런 조건을 걸었을까.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의 현황을 보면 미국의 계산을 가늠할 수 있다.
현대차 공장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인구가 유입되면서 공장이 세워진 몽고메리시(市)는 앨라배마주 제2의 도시로 부상했다.
자동차 산업의 성지로 불리던 미시간주 디트로이트가 포드와 크라이슬러, GM(제너럴모터스)의 이탈 때문에 '유령 도시'로 전락하는 동안 현대차를 유치한 앨라배마주는 남동부주에서 실업률이 가장 낮은 '모터시티'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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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기업 하나가 도시를 먹여 살린다는 것을 간파한 정부가 한국에서라면 성사되기 힘든 특혜(?)를 주고 얻어낸 변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최고경영자(CEO) 화상 회의에 참석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 이 회의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 TSMC 등이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주정부 일부 부처가 법에서 규정한 세금감면 최장기간 10년을 넘어 15년까지 기간을 늘릴 수 있다는 적극적인 유권해석을 내놓으면서 줄다리기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삼성전자가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는 조건으로 20년 동안 세금 8억547만달러(약 9070억원)를 감면해달라고 요구하자 오스틴시정부는 15년 감면안을 역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삼 부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미국과 비교하면 우리는 국민 정서도, 정부 정책도 유독 기업에 매몰차다.
지난해 말부터 불붙기 시작한 미국 정부 주도의 반도체 대전을 두고도 백악관이 삼성전자를 불러들이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고나서야 우리 정부는 부랴부랴 업계와 소통에 나섰다.
업계에서 줄곧 정부 지원을 건의했지만 그동안 정부의 인식은 '잘 되는 산업까지 지원할 여력은 없다'는 수준에 머물렀다. 올 1월 말 관계부처 합동으로 작성한 '시스템반도체 핵심인력 양성' 문서를 보면 "2017~2018년 반도체 분야의 정부 신규사업이 전무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정부가 이렇게 '특정기업'에 대한 특혜 시비를 멀리하는 사이 독자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해온 기업들은 미국, 중국, 유럽의 민관 연합군을 상대로 또 한차례의 전투를 준비하는 참이다. 미국이 500억달러(약 56조원), 유럽이 1345억 유로(약 180조원)를 반도체산업 지원에 쏟아붓기로 했다.
우린 언제까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우물쭈물 하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9일 반도체협회 회장단과 함께한 회의에서 "업계의 건의를 반영해 국내 반도체산업 생태계 강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종합정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업계는 이 자리에서 연구개발과 제조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6%에서 50%까지 확대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음달 종합정책이 나오기까지 이제 길어야 한달 남짓밖에 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