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상단'에 무색한 수요예측…공모주 '과열주의보'

머니투데이 강민수 기자 2021.03.25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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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NH투자증권 여의도 본사 영업점에서 고객들이 SK바이오사이언스 청약을 위해 상담 대기하고 있다. /사진=NH투자증권 제공10일 NH투자증권 여의도 본사 영업점에서 고객들이 SK바이오사이언스 청약을 위해 상담 대기하고 있다. /사진=NH투자증권 제공


올해 역대급 공모주 열풍이 이는 가운데 일각에선 과열 우려가 나온다. 적정가를 결정해야 할 수요예측에서 밴드 상단, 심지어는 상단을 넘어서 공모가를 결정하는 경우가 적잖다. 이같은 '묻지마 상단' 추세는 공모주 수익률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적잖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상장한 IPO(기업공개) 공모주 25곳(스팩·리츠 제외)은 모두 공모가가 희망밴드 상단 또는 상단을 초과해 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25곳 가운데 무려 16곳(64%)이 희망밴드 상단을 초과해 공모가를 결정했다. 나머지 9곳(36%)도 희망밴드 상단에서 공모가를 확정했다.
'공모주 돌풍'으로 꼽히는 지난해에도 상단을 초과한 경우는 70개 IPO 기업 가운데 9곳(12.8%), 상단은 47곳(67.1%)에 그쳤다.

지난해만 해도 하단 또는 하단에 가깝게 결정된 경우도 9곳(12.8%)이 있었다. 희망밴드 하단에 못 미친 곳도 4곳(5.7%)이 있었다.



수요예측이란 공모주 청약 이전에 기관투자가의 수요 조사를 통해 수요와 공급의 적정한 수준을 맞춰 공모가를 결정하는 제도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수요예측에 나서는 기관투자자의 90% 이상이 공모가 상단이나 그 이상을 제시하면서 사실상 제도 취지가 무색한 상황이다. 일부는 아예 가격 자체를 적지 않는 '미제시'를 적기도 한다. 통상 가격 미제시는 밴드 상단 초과로 여겨진다.

이를두고 '과열' 우려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최근 수요예측의 상단 랠리는 중소형 기관들의 '지르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업계에 따르면 중소형 사모펀드의 경우 주요 운용 펀드와 관계없이 공모주펀드를 함께 운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청수량에 따라 물량의 50%가 정확하게 비례 배정되는 일반 청약과 달리, 기관투자자의 배정물량은 자산규모별로 배분되지 않는다.

의무보유확약 기간, 주관사와의 관계 등 주관적인 요소가 상당수 반영된다. 이 때문에 오히려 AUM(운용자산)이 작은 자산운용사가 수익률 관리에는 유리하다.

한 공모주펀드 운용역은 "코스닥벤처펀드와 달리 공모주펀드는 자산규모별 배정물량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예를 들어 1000억원 규모 펀드가 물량을 100주 받는데, 50억원 규모 펀드가 50주 받는다면 당연히 소규모 펀드가 유리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헤지펀드 운용사 매니저는 "대부분 사모펀드가 공모주펀드를 병행해 운용한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업계에서는 수익률 관리를 위해서는 (자산규모) 30억~50억원이 '베스트'라는 말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 년에 수십개씩 쏟아져 나오는 공모주를 소규모 운용사가 모두 자체 분석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일단 물량부터 받기 위해 가격을 높게 쓰고 보는 것이다.

대형 증권사 IB(투자은행) 관계자는 "공모가가 상단을 뚫고 올라가는 일은 사실 주관사 입장에서도 부담"이라며 "보통 자체 리서치 역량이 없는 소규모 자산운용사가 물량을 더 많이 배정받기 위해 질러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들 운용사는 공모주펀드 관련 경력이 많은 투자자문사나 자산운용사로부터 계약을 맺고 투자자문을 받기도 한다. 공모주 수요예측 때 의무보유확약 기간을 얼마나 둘지 등까지 구체적으로 조언받는다.

상당수 운용사가 이들의 조언대로 따라 하다 보면 수요예측도 한 방향으로 쏠리기 쉽다. 어떨 때는 불법 브로커 등이 연루되기도 한다.

IB 관계자는 "기업 분석 브로커 가운데 가격 장난을 치는 곳이 종종 있다"며 "지금처럼 장이 좋을 때는 영향력이 크지 않지만, 장이 좋지 않으면 담합해서 가격을 내릴 수도 있어 대형 기관들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같은 수요예측 과열이 공모주 수익률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올해 상장한 공모주 24곳의 상장일 종가 기준 수익률은 82.9%였다. 지난해 전체 공모주 수익률(57.2%)보다는 높지만, 경쟁률이 수백대 일이나 천대 일을 넘어가는 수요예측 열기 등을 고려하면 수익률 차이가 크지는 않다.

지난 1월 상장한 {씨앤투스성진}은 공모가가 밴드 상단인 3만2000원에서 결정됐으나, 상장 첫날 공모가를 10%가량 밑돈 2만8700원에 마감했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역시 공모가가 상단인 3만2000원에서 결정됐으나, 시초가(2만8800원)가 공모가를 밑돌면서 상장 당일 공모가 대비 2.5% 오르는 데 그쳤다. 현 주가는 3만650원으로, 공모가를 밑돈다.

지난 23일 상장한 {라이프시맨틱스}는 상장 첫날 시초가가 공모가(1만2500원)의 두 배인 2만5000원에서 형성됐으나,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날도 주가가 8% 넘게 빠지며 이틀 만에 36% 넘게 빠졌다. 다만, 현 주가도 공모가보다는 27.6%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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