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대표 '최태원 회장'이 가야할 길[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1.03.2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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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신임 대한상의 회장이 24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임시의원총회에 참석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최태원 신임 대한상의 회장이 24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임시의원총회에 참석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24일 임기 3년(2024년 3월)의 제24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공식 선임됐다.

18만 기업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대한상의는 1884년 서울상의를 시작으로 137년의 역사를 가진 법정단체다. 137년의 역사 속에는 조선과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에 이은 8.15광복과 6.25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의 여러 경험이 담겨 있다.

이런 오랜 경험과 대중소기업을 두루 아우르는 대표 경제단체 수장으로 4대 그룹 총수가 선임되면서 그에 대한 기대가 크다. 우선 경영계가 그에게 거는 기대는 기울어진 운동장 내에서의 갈등 조정자 역할이다. 그 운동자 위에 바로 서 있기는 쉽지 않은 자리다.



노동계는 운동장이 사용자 쪽으로 기울었다고 하고, 사용자 측은 정치권을 포함해 모두가 노동계에 기울어져 있다고 한다. 최근 국회에서의 여러 입법화 과정을 보면 우군이 없는 후자의 읍소가 귀에 더 들린다. 경영계와 노동계의 갈등은 코로나19의 엄중한 상황에서 더 첨예해질 수 있다.

노사문제를 전담해온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사용자 중심의 대변자 역할을 하겠지만, 최 회장은 더 큰 틀에서 경영계와 노동계 갈등을 조정하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갈등은 상대적인 것에서 온다. 공정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비교대상이 없으면 갈등도 없고, 공정성 시비도 일지 않는다. 그게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상대성이론이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든 나만 존재해서는 의미가 없다.

상대가 존재하고, 그 존재의 가치를 인정면서 신중하게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려오느냐에 따라 충돌의 크기가 달라진다. 마주보고 달리면 충돌의 피해는 배가 된다. 옆에서 같은 속도로 뛰면 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다.

최 회장의 역할은 상대와 함께 뛰면서 옆에서 그들을 보고, 듣고 해법을 찾는 것이다. 갈등의 어느 한 편에 서서 갈등의 조장자가 되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들다. 그래서 갈등의 조장자가 아닌 조정자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MZ 세대들로부터 불고 있는 공정의 화두도 결국은 상대성의 문제이자 비교급의 문제다. 공정한지 아닌지는 비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내가 저 사람보다 더, 혹은 덜'이라는 비교에서 시작된다. 이를 탈 없이 다루기 위해서는 개인기가 아닌 상호의 약속인 규범을 중시해야 한다.

최 회장은 최근 사회적 가치와 소통을 통해 SK 그룹의 최전성기를 이끌고 있다. 특히 최 회장이 결단해 2012년에 인수한 SK하이닉스를 통해 내수기업의 이미지에서 글로벌 기업으로의 발돋움에 성공했다. 그의 결단은 SK 그룹에 터닝포인트를 만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SK하이닉스 성과급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내부 규범을 흔듦으로써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자신의 연봉을 선뜻 내놓는 선한 의지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오랜 사회적 합의의 과정인 규범이 행동의 잣대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대한상의 회장으로서 최 회장의 역할은 SK 그룹 회장과는 달라야 한다. 누군가 떼를 쓴다고 원칙을 바꿔서는 안된다. 하나의 성과물은 그 당대 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의 결과물이다. 그 속에는 이런 역사의식까지 담겨 있다.

당장 MZ세대의 요구에 화답하는 것은 좋으나 개인의 결단보다는 심도있는 논의를 통한 대응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SK 내부 문제일 때는 모르지만, 재계 전체를 대표하는 수장으로서의 결정이라면 달리 대응해야 한다.

최 회장에게는 갈등 조정자로서의 역할 이외에도 침체된 경제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도 기대된다.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공인들이 반기업정서를 헤치고 활력을 되찾음으로써 일자리 창출을 통해 국민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길에 최 회장이 앞장서 주기를 재계는 바라고 있다. 최 회장의 말대로 엄중한 시기에 무거운 짐을 어깨에 졌다. 제24대 대한상의 회장에 오른 최 회장의 앞날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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