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업가정신의 시대적 소명

머니투데이 한정화 아산나눔재단 이사장 2021.02.23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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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아산나눔재단 이사장

[기고]기업가정신의 시대적 소명


우리나라가 1960년대 초 세계 최빈국에서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수많은 기업가들의 의지와 열정, 기업가정신의 힘이었다. 한국과 대만, 홍콩, 싱가포르는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1980년대까지 가장 빠른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들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고 불렀다. 이 국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유시장경제’라는 제도적 기반에서 경제 운영을 한 것이다.

한국이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전통적 계층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급속한 변화 속에서 ‘사회 이동성’(social mobility)이 높아졌다. 1960년대 본격적 경제발전이 시작되면서 외쳤던 구호는 ‘잘 살아보세’였다. 누구나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는 높은 성취욕을 불러일으켰고, 고난을 통해 형성된 ‘배고픈 자의 정신력’(hungry spirit)이 성공체험을 통해 ‘할 수 있다’(can do spirit) 정신으로 전환됐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중동 건설붐으로 전환하고, 조선사업의 불모지에서 30여년 만에 세계 최고의 조선소를 만들어낸 아산 정주영 회장이 바로 ‘할 수 있다’ 정신을 대표하는 기업가였다.



이러한 현상을 관찰한 앨리스 암스덴은 ‘아시아의 다음 거인’(Asia’s Next Giant)이라는 책에서 한국은 일본 다음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피터 드러커 역시 한국을 세계 최고의 기업가정신을 가진 나라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재건을 시작한 지 40여년 만에 주요 산업에서 세계 10위권에 들었고 조선 등은 세계 1위가 된 점을 예로 들었다. 마이클 슈만도 ‘미라클’(Miracle)이라는 책에서 발전 요인을 기업가정신과 정부정책의 선순환적 상호작용이라고 봤다. 정부가 ‘당근과 채찍’ 정책을 적절하게 구사해 민간 경제 주체들의 역동성이 살아나도록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고난의 역사를 겪어오다가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동북아 세력 균형과 한반도 평화체제 속에서 자주적 발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발전 성과와 기업가정신을 실현한 나라가 됐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현재 한국이 직면한 상황은 과거의 성공요인이 약화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기업가정신이 쇠퇴하고 있다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반기업정서가 높아지고 기업활동을 옥죄는 온갖 규제를 양산하는 현실이 기업인의 의욕과 열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의 기반을 흔드는 정책들이 쏟아지면서 기업활동의 역동성 약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 주도적 스타트업 활성화가 이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사회 전반적 위험회피, 안정추구 성향은 높아지고 있다. 기업가의 열정과 도전의지라는 사회적 자산을 과소평가하는 사회에서는 기업가정신이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사실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

올해는 아산 정주영 회장의 소천 20주기다. 아산은 역경의 근대사를 겪어오면서 “모든 일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해낼 수 있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수많은 분야에 도전했고 성취했다. 전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상황 속에서 경기는 침체되고 불확실성과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아산이 보여 준 역경극복 기업가정신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아산나눔재단은 청년 세대에게 도전·창조 기업가정신을 고취시키고 긍정적 미래에 대한 꿈을 심어 주는 역할을 감당하고자 한다. 반만년 역사 속에서 어렵게 갖게 된 발전의 모멘텀을 지속시키는 것이 이 시대 기업가정신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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