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판] 결혼을 앞두고 약혼자가 사라졌습니다

머니투데이 정영희 법률N미디어 에디터 2021.02.06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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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과 관련없습니다./사진=게티이미지본문 내용과 관련없습니다./사진=게티이미지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두절됐다는 여성의 사연이 화제입니다.

A씨에게는 결혼을 전제로 5년째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 B씨가 있습니다. 얼마 전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겼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결혼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집을 보러 가기로 약속한 하루 전날 갑자기 B씨와의 모든 연락이 끊겼습니다. B씨 부모님에게도 물었으나 이미 실종신고를 마쳐 A씨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현재 B씨가 사라진지는 20일이 넘었습니다.

누리꾼들은 '부모도 알고 숨겨주는 것 아니냐', '유부남인 것 같다' 등 다양한 추측을 제시했습니다. 지친 A씨는 B씨와의 결혼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중지된 결혼 준비와 아이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실제 실종이라도 파혼은 가능

두 사람은 아직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았으므로 약혼 상태인 셈입니다. 약혼이 깨지면 파혼이 됩니다. 이혼과 달리 파혼은 양 당사자 중 한쪽의 의사만 있어도 가능하지만 귀책사유가 있는 쪽에서 위자료를 지급하는 일도 있습니다.



민법에 따라 약혼 후 1년 이상 생사(生死)가 불명한 경우 약혼 해제가 가능합니다. (민법 제804조) 만약 B씨가 불의의 사고로 정말 실종이 됐고 1년 넘게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A씨는 적법하게 파혼할 수 있습니다. 혹은 많은 이들의 추측대로 B씨가 결혼을 회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잠수를 탄 상황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떄는 법정 약혼 해제 사유 중 정당한 이유 없이 혼인을 거절한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일방의 잘못으로 파혼했다면 파혼의 책임이 있는 당사자는 물론 이를 알고도 묵인한 직계존속에게도 위자료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가정법원은 일반적으로 상견례를 마치고 예식장을 예약하는 등 결혼을 위한 절차를 밟던 중임이 확인되면 약혼 성립을 인정합니다.

A씨의 사례에선 결혼 준비가 어느 정도로 진행됐는지에 따라 B씨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여부가 달라집니다. 결혼하자는 이야기만 나왔다면 어렵겠지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신혼집 마련만 앞두고 있었다면 결혼에 대한 강한 의사가 존재했음이 증명돼 B씨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죠.


다만 B씨가 이른바 '잠수' 상태인데다 언제 연락이 될지 모릅니다. A씨가 소송을 제기해도 B씨가 법정에 출석하지 않을 확률이 큰데요. 상대방의 주소를 몰라 서류를 직접 전달하기 힘든 경우, 서류는 일단 법원이 보관하고 그 사정을 법원게시판이나 신문 등에 알리는 공시송달을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공시송달한 날로부터 2주 후에 해당 서류의 효력이 발생합니다.

A씨가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해 위자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B씨가 연락이 안 된다면 공시송달 후 강제집행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아이 낳는다면 양육비와 유산 상속은?

A씨는 결혼 포기를 결정했다고 하면서도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요. 아이를 지우지 않고 낳는다면 양육비 청구나 상속 문제는 어떻게 될까요?

혼인신고 없이 아이가 태어나면 사실 친부에게 양육 책임을 묻기란 쉽지 않습니다. A씨 사례처럼 아기 아빠와의 연락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면 상황이 더욱 복잡합니다. 통상 친모·친자의 관계는 출산으로 확정되지만 혼외자의 아버지는 법률상 친자관계가 자동으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때는 민사상 인지청구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실종 상태라도 유전자 검사 등의 절차를 통해 인지가 가능하기에, 이 과정을 통해 친부를 찾고 양육비를 청구해야 합니다.

B씨가 실제로 실종됐다면 5년 후 실종선고가 내려집니다. 선고 후에는 사망한 것으로 추정돼 양육비 채무가 B씨의 부모나 형제에게 넘어갑니다. 하지만 양육비채무는 당사자 사이 양육비에 관한 합의가 있었거나 양육비이행청구소송을 통한 법원의 결정 등이 있어야만 재산권으로서 상속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B씨가 실종된 게 아니라 결혼이 싫어 잠적한 것이라면 A씨는 인지청구소송 후 양육비를 청구해야 합니다. 법원이 양육비를 정해줬는데도 돈을 주지 않는다면 가정법원에 이행명령이나 강제집행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B씨가 실제로 실종됐든 잠적했든 두 사람의 아이에게는 유산이 상속될 텐데요. 아이가 B씨의 유일한 자녀라면 법정 유류분만큼을 받은 후 직계존속과 형제자매 순으로 상속이 개시되겠지만, B씨가 다른 사람과 혼인해 다른 자녀를 낳는 일도 생각해볼 수 있죠.

이 경우 아이는 유류분반환청구소송을 통해 배다른 형제와 유산을 나눠가져야 합니다. 상속받을 몫이 있음을 알게 된 시점부터 1년, 상속이 개시된 시점부터 10년 내에 소송을 걸지 않으면 반환청구권은 시효에 의해 소멸합니다.

글 : 법률N미디어 정영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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