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모두 등 돌릴 때 넌 다가왔어"

머니투데이 중기협력팀 배병욱 기자 2021.02.0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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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헌 지앤넷 대표의 '그 사람'

[그 사람]"모두 등 돌릴 때 넌 다가왔어"


살다 보면 잊을 수 없는 '그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김동헌 지앤넷 대표는 "죽을 때까지 그를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한 친구에 대해 운을 뗐다.

◇첫 만남



덩치가 컸다. 대범해 보였다. 그냥 딱 '사내'였다. 거의 40년 만에 그를 만났다.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 본 것이나 다름없다.

2018년 어느 날 초등학교 동창이 그런다. "초등학교 모임을 '밴드'로 하는데 한번 가입해 봐." 그렇게 들어간 밴드에는 반가운 이름들이 보였다. 아슴아슴하기도··· 동심으로 가끔 밴드에 들어가 친구들과 소통했다.



언제부턴가 밴드상에서 한 친구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송 아무개'(이하 S)였다. S가 한 번씩 올리는 글엔 왠지 모를 이끌림이 있었다. 막연히 생각했다. '괜찮은 녀석이구나.' 동류의 호감을 서로 가진 걸까. 자연스레 서로의 글에 댓글을 남겼고 가끔 전화도 주고받았다. 만난 적 없지만 시나브로 가까워졌다.

하루는 S가 회사 근처로 올 일이 생겼단다. 그 김에 회사로 한번 오라고 했다.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초등학교 땐 같은 반도 아니었다. 당시엔 이름조차 몰랐다.

S가 회사로 들어섰다. 덩치가 컸다. 그냥 딱 '사내'였다. S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간혹 볼 수 있는 친구가 된 것이다.


실은 그 무렵 회사가 많이 어려웠다. 힘든 내색 못하는 성격이라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굳이 그런 얘기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어려운 사정을, 친구는 모를 것이라 여겼다. 어느 날 출근길 S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기 전까진 그랬다.

◇역경

20여년 전 지앤넷을 설립했다. 콜센터 음성인식 솔루션을 개발, 구축하는 기업이었다. 매출액은 200억원에 달할 만큼 성장했다. 사옥도 세웠다.

잘나갔지만 음성인식 콜센터는 일반화되고 있었다. 새로운 비즈니스가 필요했다. '실손보험 빠른청구 서비스' 사업에 뛰어들어 2013년 플랫폼 개발을 끝냈다. 이듬해 대학병원 및 대형 보험사와 협약을 맺고 서비스를 시작하려던 찰나 '규제'란 벽에 부딪혔다. 의료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규제를 피하고 유권해석을 받는 데만 3년이 걸렸다. 간신히 규제를 풀었지만 의사협회가 또 다시 반대하고 나섰다.

20여년간 회사를 운영했지만 임직원에게 급여를 못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2017년 1월, 처음으로 월급날을 지나쳤다. 2월엔 50%만 지급했다. 방법이 없었다. 사옥을 팔았다. 그 돈으로 월급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임원들을 불러 물었다. "우리, 이 사업을 계속 하는 게 맞나. 그냥 접을까." 임원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사장님, 여기까지 왔는데 끝까지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가진 걸 모두 내놨다. 집(아파트)도 팔았다. 미국 IBM연구소에서 근무한 바 있어 IBM 주식도 좀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도 처분했다. '올인'이었다.

이 같은 역경을 딛고 2017년 11월, 드디어 '실손보험 빠른청구 서비스'를 본격화했다. 개발한 지 4년 만이었다. 하지만 자금이 문제였다. 늘 허덕였고 사로잠을 잤다.

◇잊을 수 없는···

2018년 어느 날 출근길에 전화벨이 울렸다. S였다.

"요새 많이 힘들지."
"하하, 그냥 열심히 하고 있어. 아침부터 어쩐 일이야."
"너희 회사에 1억원 정도 투자하고 싶어. 보내줄게."

생각지도, 기대치도 않았다. 이런 문제로 교감한 적 없었기 때문이다. 어찌 알았을까. 암흑 속을 헤매다 불현듯 관통해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을 본 듯했다. 고마웠다. 회사에 도착하니 1억원이 들어와 있었다. 불과 5분 사이였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밤 10시 전화벨이 울렸다. S였다. "초등학교 친구 한 명도 너희 회사에 1억원 투자하고 싶대." 그렇게 일주일 새 2억원이 들어왔다.

서비스 초창기라 자금은 계속 필요했다. 서너 달 후 S를 다시 만났다. 이번엔 직접 권했다. '혹시, 조금 더 투자할 수 있어?" S는 "1억원을 더 하겠다"고 했다.

그 1억원이 들어오기로 한 날이다. S를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한 날이다. 그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만큼 S에게 부끄러운, 군걱정을, 망할 놈의 전두엽이 생산해 냈다.

S는 1억원을 넣기로 한 그날 새벽에 문자를 보내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였다. 문자를 본 순간부터 단 하나의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오늘 돈이 안 들어오면 어떡하지. 직원들 월급 줘야 하는데···'

오전 8시 S한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아내에게 너희 회사로 1억원 보내라고 했어. 아내 이름으로 송금될 거야."

부끄러웠다. 몸 둘 바를 몰랐다. S는 부친상 중이었지만 아내까지 동원해 돈을 부쳤다. '그는 그랬건만, 나는 뭔가.' 위로는 못할망정 앞가림만 생각했다. 이렇게라도 고백한다. "친구야, 그날 난, 내 자신이 한심할 만큼 부끄러웠다."

S에게 두남받은 일이 이쯤이면 됐으련만 염치 없게도 그러지 못했다. 그해 겨울 일이다. 급여 지급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고 돈은 또 모자랐다. '내일이 월급날인데, 어쩌지···' 차 키를 꽂고 시동을 걸었다. 무작정 내달렸다. 남양주로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남양주는 S가 있는 곳이다.

"내일 직원들 월급 줘야 하는데, 5000만원이 모자라."
"아, 그래, 지금 금고에 3000만원 있는데 이거라도 가져 갈래."

그 자리에서 봉투에 담아 나왔다. 그 뒤로도 급할 때면 이런 식의 도움을 받았다. 차용증 같은 건 없었다. 그것만 없으랴. S는 꿔 준 돈에 대해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언급도 없다.

어려워지니까 '진짜 사람'이 보였다. 회사에 넣은 돈을 악착같이 받아 내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참으로 다양했다. 나름대로 베풀면서 잘 살아 왔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워지니까 안면을 바꾸는 사람이 많았다. 가진 자들이 더했다. 그러던 중 S가 나타났다.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 '정면'으로 다가온 것이다. 어떻게 잊을 수 있나.

"친구야, 고맙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가장 어려울 때 옆에서 응원하고 도와줬지. 죽을 때까지 널 잊을 수 없을 거다. 요즘은 회사가 잘되고 있어. 네 덕분이야."

#에필로그

하루는 아내와 S에 대해 얘길 나눴다. 아내가 묻는다. "여보, 당신이 만약 '그 사람'이었다면, 당신도 누군가에게 똑같이 할 수 있었을까?"

"음… 나라면 그렇게 못했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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