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강의실과 학습실, 교수진 거주공간 등을 갖춘 프로펠센터(글로벌 혁신·교육 지원센터) 캠퍼스. /사진제공=애플.
팀 쿡은 미국 전역의 흑인대학(HBCU)들과 협력해 글로벌 혁신·교육지원센터(프로펠센터) 100곳을 세우고 유색인종 기업가들을 위한 벤처캐피탈 펀딩도 지원하겠다고 했다. 애플이 REJI 프로젝트를 출범한 것은 경찰에 의한 흑인 참사로 인종차별 반대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이다. 사실 애플은 제품 광고모델, 채용 등에서 유색인종을 차별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업 경영에 다양성과 포용성의 가치를 반영한 결과다. 기업 울타리를 넘어 미국 사회를 갈라놓는 차별과 편견에 맞서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이 혁신기업의 책무라는 게 팀 쿡의 판단이다.
#테크기업들이 사회문제 해결에 과감해진 이유는 뭘까. 코로나19(COVID-19) 팬데믹(대유행)과 인종차별 시위, 대통령선거 등을 거치며 극단으로 치닫는 현지 사회의 갈등과 반목에 플랫폼기업으로서 책임감과 반성이 깔렸다.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스마트폰, SNS, 유튜브 등 플랫폼은 인류문명에 혁신을 불러일으켰지만 기술의 근간인 알고리즘은 확증편향과 필터버블(개인 성향에 맞게 필터링된 정보로 이용자 스스로 편향된 정보에 갇히는 현상)을 부채질하며 시민사회를 파편화한다. AI(인공지능)·빅데이터 등 첨단기술이 결합할수록 악순환의 굴레는 더하다.
#편견과 편향이 극에 달한 것은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여대생 AI’ 이루다 논란은 편향·편견에 찌든 대한민국의 현실을 투영한 자화상이다. 성소수자·장애인 이슈에 대한 이루다의 차별발언들은 다름 아닌 우리가 쏟아낸 텍스트다. AI가 학습한 데이터는 평소 우리 사회의 현주소 그대로다. 돌이켜보자. ‘n번방’ 충격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각종 딥페이크(가짜 영상합성물) 성범죄물들이 온라인 공간을 떠돌고 게시판엔 좌우·지역·종교적 차별과 혐오 글이 넘쳐난다. ‘스무살 여대생’으로 설정된 AI에 성적 답변을 유도하고 이에 희열하는 비뚤어진 성 가치관도 문제다. 현실이 이럴 진대 기계인 AI에 공정하고 중립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아닐까.
# 팀 쿡 CEO의 중대발표(?)가 있던 날, 공교롭게도 한국에선 카카오가 증오 발언을 근절하기 위한 원칙을 선언했다. 뉴스, 게시판, 카페공개 게시글 등 카카오 서비스 내 공개된 공간에서 출신이나 인종, 외양, 장애, 사회·경제적 지위, 종교, 성별, 성 정체성 등을 이유로 특정 대상을 차별하는 발언에 강경하게 대처하겠다고 했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직접 챙기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위원회의 첫 결과물이다. 실제 서비스 정책에 반영하기까지 녹록지 않겠지만 민간기업 최초로 이런 원칙을 제시했다는 것만으로 환영할 만하다. 혐오·차별콘텐츠와 발언들이 더이상 발 디딜 수 없는 공간을 만드는 일. 디지털기업이라면 이제는 미뤄선 안 되는 사회적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