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판] 전 남편 집 현관문에 '아동폭력 전과자' 메모 써붙인 여성, 처벌은?

머니투데이 김효정 에디터 2021.01.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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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사진=게티이미지


이혼한 전 남편 집에 찾아가 거짓 메모를 남긴 여성이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3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9월 전 남편 B씨가 사는 집 현관문에 ‘아동 폭력범·임산부 폭행범이 사는 집, 폭력 전과자가 사는 집’이라는 문구가 적힌 메모를 붙였습니다. 그러나 조사 결과 해당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메모를 남긴 A씨는 명예훼손 및 주거침입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는데요.

법원은 A씨에게 벌금 15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A씨가 불안 증세로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를 앓는 등 범행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봤습니다. 특히 A씨가 병원치료를 성실하게 받겠다고 약속했고 B씨 또한 A씨가 약속을 지키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점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연히 구체적 내용 적시했다면 사실 여부 떠나 명예훼손

공공연하게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을 줄 경우 명예훼손 또는 모욕죄가 성립합니다. 명예훼손과 모욕은 그 내용에 따라 구분되는데요.



명예훼손은 구체적 사실로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트린 경우 성립합니다. 반면 조롱이나 욕설 등 추상적 평가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할 경우 모욕죄가 성립합니다. 예를 들어 “연예인 C가 마약 중독자더라”와 같이 구체적 내용을 적시한 경우 명예훼손에 해당하지만 “연예인 C는 마약중독자처럼 생겨서 보기 싫다”라고 말하는 것은 추상적 표현이므로 모욕에 가깝습니다.

A씨는 ‘폭행범, 폭력 전과자’ 등 구체적 내용을 적시해 B씨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트렸으므로 명예훼손에 해당합니다. 이웃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B씨가 사는 집 현관문에 메모를 붙였기 때문에 특정성과 공연성도 충족됩니다. 형법은 공연히 허위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 해당 메모가 사실이어도 A씨는 처벌될 수 있습니다. 우리 형법은 사실적시 명예훼손도 인정하고 있기 떄문인데요. 이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 수위가 낮아집니다. 다만 그 내용이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위법성이 조각됩니다.


A씨에게는 주거침입 혐의도 적용됐습니다. 주거침입죄는 반드시 현관문을 열고 생활공간에 들어가지 않아도 성립할 수 있는데요. 아파트 등 다세대주택의 공용계단, 복도 역시 ‘주거’로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A씨는 공용 출입문을 이용해 몰래 B씨가 사는 아파트에 들어갔는데요. 공용공간이라도 관리인이나 거주자 의사에 반해 들어간 경우 주거침입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벌금 대신 징역형 집행유예' 호소에 벌금형도 집행유예 도입



이번 판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A씨에게 벌금형 집행유예가 선고됐다는 점입니다. 말 그대로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집행유예는 징역형에만 선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실제로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후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선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경제적으로 벌금 납부가 어려운 피고인들이 벌금형 대신 집행유예가 가능한 징역형을 구하는 부작용이 빈번히 발생했습니다.

이에 2018년 벌금형에도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도록 형법이 개정됐습니다. 개정 형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대해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벌금형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내려진 형사재판 1심 선고 중 벌금형 집행유예가 선고된 경우는 전체 벌금형 선고의 2.9%에 불과합니다. 벌금형 집행유예 선고 기준이 없는데다 벌금형 선고를 위한 약식절차에서도 집행유예가 가능한지 여부가 불분명하기 때문인데요.

입법조사처는 벌금형 집행유예 선고 기준을 별도로 마련하고 약식절차에도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한지 명확히 하는 등 제도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글: 법률N미디어 김효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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