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출신 초선 의원의 집념, GTX 사업 틀을 바꿨다

머니투데이 김민우 기자 2021.01.02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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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준 국민의힘 의원, 'GTX 사회적 갈등 대응 평가' 항목 신설 제안해 C노선 사업에 반영

29일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났다/사진=김휘선 기자29일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났다/사진=김휘선 기자


정부가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사업자를 선정할 때 사회적 갈등비용을 줄이는 방안을 평가하기 위해 '사회적 갈등요소 대응계획' 부문을 평가항목에 신설했다. 내년으로 예정돼 있는 C노선 사업자 선정부터 적용된다. 국책사업의 사업자선정고시에 '갈등완화부문'이 평가요소로 만들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역구에서 벌어진 GTX 노선 갈등, "제도적 장치 마련 필요 절감"
이 정책은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서울 강남병)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유 의원이 이같은 제안을 한 배경에는 삼성동, 대치동, 도곡동으로 이뤄진 유 의원의 지역구가 GTX 노선 갈등의 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도곡동 주민들은 양재역의 GTX 출구가 도곡동 쪽으로 신설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초구청이 발표한 확정공모안에 양재역의 GTX 출구가 서초구청쪽으로만 향해 있어 도곡동 주민들은 소외된다는 주장이다. 철도 역사가 어느 방향으로 생기느냐에 따라 상권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곧 주변 집값에도 영향을 미치는 탓이다.

반면 대치동 주민들은 GTX가 은마아파트 밑으로 지나가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재건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안전상으로도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유 의원은 "'역의 위치를 우리 집 근처로' 짓기를 원하는 지역주민들과 '필요한 시설이긴 하지만 우리집 앞마당에는 안된다'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장치를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정책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유 의원은 이것을 "사회적 갈등비용의 내재화"라고 표현했다.

유 의원은 "현재 민간투자사업 방식으로 진행되는 국책사업의 경우 비용 '기술력'과 '경제성'을 중심으로 사업자가 선정된다. 민간투자자는 금전적 이익에 따라 이해관계가 움직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적 비용(social cost)라는 평가 항목이 별도로 없고 경제성 만으로 사업자를 선정한다면 사회적 갈등은 해결하지 못하고 많은 시간과 비용은 낭비된다"며 "이제는 사회적 갈등비용에 주목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29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GTX-C 노선 사업자 선정을 위한 시설사업본계획(RFP)고시에 반영된 '사회적갈등요소 대응'평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29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GTX-C 노선 사업자 선정을 위한 시설사업본계획(RFP)고시에 반영된 '사회적갈등요소 대응'평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경제성만 쫓다 놓친 사회적 갈등 비용
유 의원이 해결방안을 찾는 데에는 과거 KDI에의 이력이 빛을 발했다. 유 의원은 국토연구원의 민간투자지원센터가 2005년 KDI로 통합되면서 만들어진 KDI 공공투자관리센터(PIMAC·피맥)의 창립멤버다.

피맥 정책연구실장을 지내면서 민간사업평가지침과 예비타당성조사의 분석틀을 설계할 때부터 참여하다보니 공공투자분야와 민간투자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복지예산 등에 대한 평가 분석틀인 사회정책 심층평가 지침도 KDI 재정성과평가실장을 지낼 때 유 의원의 손에서 탄생했다.

유 의원은 예비타당성조사의 '지역균형발전요소'가 평가항목으로 신설된 점에 착안해 사회적 갈등요소 대응계획을 평가항목으로 신설하는 안을 생각해냈다.

유 의원은 "과거 비용대비 편익(B/C)만을 평가하던 예비타당성조사에 '지역낙후도'와 같은 지역균형발전 요소가 평가항목으로 신설됐고 지금은 굉장히 중요한 평가요소로 격상됐다"며 "예비타당성 조사의 지역균형발전의 항목과 마찬가지로 국책사업에 사회적 갈등비용을 내재화 하는 것은 필연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책으로 반영되기까지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GTX 사업의 주체는 국토교통부지만 민간투자사업 제도 전반은 기획재정부의 영역이었다. 실제 평가작업 등은 KDI 가 실시한다.

유 의원은 "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며 "6개월동안 국토부와 기재부 담당자들과 가진 공식회의만 10번이 넘는다"고 말했다.

6개월에 걸친 노력 끝에 11월 말 국토부는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고 지난 10일과 16일 민간투자사업심의위원회(민투위) 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각각 열고 '사회적 갈등요소 대응계획'을 평가항목에 신설했다. 기술분야 세부 평가항목 중에서 두 번 째로 큰 점수가 배점됐다.

추가정차역 설치, 대규모도심지 우회, 환경문제 등 사회적 갈등 문제의 해법을 찾는 사업자는 해당 분야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갈등 줄일 수 있는 민간의 창의적 발상이 결국 비용 낭비 막는 길
그러나 정부와 민간투자자들이 함께 사업을 추진하는 특성상 시장참여자들이 받아들여야 정책의 효과가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유 의원은 이에대해 "GTX-A 사업을 봐라. 청담동 등에서 노선우회를 주장해 공사가 수개월간 착공조차 하지 못하고 사업이 지연되지 않았냐"며 "공기지연, 공사중단에 따른 비용을 계산해보면 실제 사업자들의 손실은 엄청나게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업자 선정과정에서부터 전체 공사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큰 민원, 해결이 어려운 민원, 이기적 민원 등을 분류해 버릴 것은 버리고 대응할 부분은 반영해 설계한다면 민간사업자들도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사업이 중단되는 일도 최소화되고 비용낭비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의원은 또 "GTX-C 노선에 추가정차역을 3개까지 설치할 수 있도록 고시됐는데 추가정차역을 설정하면서 점(역)과 점(역)을 잇는 새로운 선(노선)을 그리다보면 꼭 은마아파트가 아니더라도 도심지를 우회하는 방안이 나올수도 있지 않겠냐"며 "민간의 창의적인 발상으로 민간은 전체 투자비를 줄이고 사회적 갈등도 완화할 수 있는 상호이익(Win-Win)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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