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공시가 현실화 없이 공정과세는 먼 나라 얘기

머니투데이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2020.12.24 11:00
글자크기
[기고]공시가 현실화 없이 공정과세는 먼 나라 얘기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힘들게 마련한 자산에 대해 국가가 세금을 부과하는 것에 불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국가가 국민이 힘들게 번 소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거나 자기 돈 내고 소비하는 데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국민이 돈을 벌고 저축을 하고 자산을 갖게 되는 것 모두 국가 경제시스템이 안정적 작동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소득과 자산이 있는 국민은 당연히 국가에 기여할 의무가 있다.

이런 이유로 부동산 보유세는 세계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부동산투자 기대수익을 낮춰 과도한 투자가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보유세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우리나라 부동산 보유세는 너무 약하다.



부동산 보유세 부담이 낮은 핵심적인 이유는 세금 부과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이 시가의 50~60% 정도로 매우 낮게 책정돼 있기 때문이다. 과표가 이와 같이 실제 가치에 크게 미달하는 것은 공정한 조세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다.

만일 소득이 계속 오르는데 정부가 소득세를 부과하는 소득금액을 실제 소득보다 작게 잡는다고 해보자. 공정하지 못한 과세라고 누구든 이야기할 것이다. 부동산 공시가격이 시세보다 낮은 것 때문에 보유세도 다음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다른 소득, 예를 들어 근로소득에 비해 부동산 자산이 마땅히 부담해야 할 세부담이 가벼워진다. 근로소득자에 비해 부동산 소유자들이 불공정하게 혜택을 누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둘째, 고가주택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큰 이득을 누리게 된다. 3000만원의 50%인 1500만원과 1억원의 50%인 5000만원이 비과세되는 혜택을 누리는 셈인데 고가주택이 절대금액에서 더욱 큰 혜택을 누리게 됨을 알 수 있다.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공시가격은 이처럼 보유세의 공정과세를 훼손할 뿐 아니라 투기과열,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거시경제 시스템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최근에는 공시가격의 연간 상승률을 5% 이내로 제한하는 법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시세가 20~30% 올라도 공시가격을 전년보다 5% 이상 높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고가주택의 공시가격이 턱없이 낮아지고 보유세 부담이 왜곡돼 자산가에게 유리한 결과가 초래된다. 우리의 보유세, 즉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에는 세부담 상한제도가 있다. 중저가 주택의 재산세는 공시가격이 올라도 전년도 보다 5~10% 이상 오르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공시가격이 상승하면 소상공인에게 임대료가 전가된다고 우려하지만 그 우려는 과장됐다. 고가의 주택을 소유한 계층에게 핑계거리를 줄 뿐이다. 이에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공시가격을 시세에 맞추는 것, 즉 공시가격을 현실화할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다.

정부는 지난 11월 3일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 안에 부동산 공시가격을 시세의 90%까지 올리는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발표했다. 이제 시작이다. 정부에서 공정과세와 공정복지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정치적 공세에 굴하지 않고 계획을 실천하기를 기대한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