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파산하고 사고는 안 줄었다"...중대재해법 英 사례 보니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2020.12.0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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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식(왼쪽 두번째)경총회장이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백범로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열린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2020.10.6.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손경식(왼쪽 두번째)경총회장이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백범로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열린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2020.10.6.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영국에선 2007년 시행된 법인 과실치사법으로 높은 벌금을 받은 중소기업 28개 중 58%가 파산하거나 영업을 중단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법 시행 이후 사망자가 줄어드는 효과는 크지 않았습니다."(빅토리아 로퍼 영국 노섬브리아대 로스쿨 교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기업주의 처벌 규정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상황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까지 제정된다면 과잉 입법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산업현장 사망사고에 대해 사후 처벌보다는 사전 예방 위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2일 이 같은 내용을 다룬 '산재예방 선진화를 위한 입법과제 토론회'를 개최했다.

빅토리아 로퍼 교수는 동영상 인터뷰에서 "영국은 대형 인명피해를 유발한 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보건안전법과 별도로 2007년에 법인 과실치사법을 추가 제정했다"며 "그럼에도 영국에서는 현재 산재 사망사고는 주로 보건안전법에 의해 대부분 기소되고 있다"고 말했다.



로퍼 교수는 "법인 과실치사법을 적용받는 대상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영국의 산재 사망사고 감소는 일반적인 보건안전법 규율에 따른 장기적 효과라고 봐야 하며, 법인 과실치사법 도입에 따른 사망자 감소 영향은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영국은 법인 과실치사법을 통해 법인에 대한 벌금을 대폭 상향 조정했지만 개인의 책임은 묻지 않는다. CEO(최고경영자)에게 최대 3년형을 내릴 수 있는 한국의 중대재해법에 비해 처벌 규정은 약한 편이다.

니콜라스 릭비 영국 산업안전보건청(HSE) 수석감독관은 "영국 산업안전보건청은 법 위반 적발이나 기소보다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운영되는지 점검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다만 사고 결과에 대해서만 적합한 책임을 묻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유일한 해결책은 이것'이라는 식으로 규율한다면 어떠한 혁신도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날 발제에 나선 이근우 가천대 교수(법학)는 "형벌은 매우 엄격한 조건 아래 적용돼야 하며, 법률 제정의 목적이 정당하다 해서 그 수단의 위헌성이 정당화 될 순 없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중대재해법은) 대단히 무거운 형벌로 일관하고 있어 오히려 적용 가능성에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실효성이 낮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는 "중대재해법은 전체적으로 안전원리나 법 원칙과 부합하지 않고 재해예방 실효성이나 현장작동성과도 거리가 멀다"며 "산업재해 감소에 기여하지 못하고, 영세중소기업 등에 과잉 처벌이 집중되는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김용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최근 산업현장에서 사망사고가 계속 발생해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경영계도 근로자 안전 확보가 기업 경영의 최우선 가치라는 인식 하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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