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듀 조작' PD 앞에서…판사는 '꿈 뺏긴' 12명 이름을 모두 불렀다

머니투데이 임찬영 기자 2020.11.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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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판례씨]

지난해 4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엠넷 '프로듀스X101'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출연진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지난해 4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엠넷 '프로듀스X101'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출연진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아이돌 선발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시리즈 투표 결과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방송 연출자들이 2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제작진의 조작행위로 억울하게 탈락한 연습생들을 호명하며 "모두 승자가 될 수 있었으나 모두 패자가 되고 말았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송영승 강상욱)는 지난 18일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모 PD에 대해 징역 2년, 김모 CP(총괄프로듀서)에 대해 징역 1년8개월을 각 선고했다. 1심과 같은 결론이다.



이들은 프로듀스 시리즈에 출연하는 아이돌 연습생들의 시청자 투표 결과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됐다. 프로그램에서 많은 표를 얻은 아이돌들은 프로듀스 시리즈 이름으로 그룹 활동을 할 기회를 얻는다. 검찰은 데뷔할 연습생들을 처음부터 정해놓고 투표 결과를 짜 맞춘 혐의를 잡아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재판에서 이들은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사욕 때문에 벌인 일은 아니라고 항변했다. 아이돌 연습생이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되자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해 다른 연습생들의 순위를 하나씩 올렸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연습생들의 득표 순위를 조작해달라는 부정청탁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안PD는 연예기획사 관계자들로부터 유흥업소 접대를 받은 혐의도 있다. 안PD와 연예기획사 측은 술자리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부정청탁은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이번 범행으로 방송프로그램의 공정성이 현저하게 훼손됐고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습생들과 시청자들을 농락하는 결과가 생겼다"며 "일부 연습생들은 정식 데뷔할 기회를 부당하게 박탈당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사건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은 순위조작으로 억울하게 탈락한 연습생들"이라며 연습생들의 이름을 일일이 나열했다. 이날 재판부가 호명한 이들은 △시즌1 김수현·서혜린 △시즌2 성현우·강동호 △시즌3 이가은·한초원 △시즌4 앙자르디 디모데·김국헌·이진우·구정모·이진혁·금동현 등이었다.


다만 재판부는 조작으로 순위가 오른 연습생들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재판부는 "순위가 유리하게 조작된 연습생 명단도 공개하는 것이 진실을 밝히는 차원에서 최선이겠지만 그 연습생들 또한 자신의 순위가 조작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순위가 유리하게 조작된 연습생들 명단이 공개되면 피고인들을 대신해 희생양이 될 위험이 크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김 CP에 대해 "지휘감독 의무가 있는데도 데뷔조 선정과정에서 순위조작을 묵인해 책임이 매우 무겁다"고, 안 PD에 대해 "메인PD로서 연예기획사로부터 3700만원을 받고 연습생들의 순위를 조작해 책임이 매우 무겁다"면서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번 사건 피고인들이 투표에 참여한 시청자에게 생방송 문자투표 비용 100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액수 자체보다 시청자를 속인 사기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결정했다는 데서 의미가 있는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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