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쇠퇴하고 있는가?[김남국의 아포리아]

머니투데이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0.11.19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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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σ)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미국은 쇠퇴하고 있는가?[김남국의 아포리아]


역사상 모든 제국은 쇠퇴했다. 미국도 예외일 수 없고 따라서 미국이 쇠퇴한다고 해서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폴 케네디는 그의 책 ‘강대국의 흥망성쇠’에서 제국이 쇠퇴하는 공통의 원인으로 제국주의적 과대팽창(imperial overstrech)을 꼽았다. 즉 자신의 경제력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과도한 군사적 팽창이 가장 큰 쇠퇴 원인으로 본 것이다. 어떤 원인에서든 미국의 쇠퇴 여부는 중국의 부상과 관련해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이 된다.
 
중국은 미국이 이끄는 세계 무역질서에 참여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빠른 성장을 이룩했다. 1978년 중국의 GDP(국내총생산)는 1400억달러로 미국의 2조3500억달러에 비하면 6%에 불과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2018년 중국의 GDP는 13조4600억달러로 미국의 20조5100억달러와 비교해 65% 수준에 육박했다. 더구나 중국은 2035년을 전후해 약 38조달러선에서 미국 GDP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양한 수치에서 드러나는 미국의 쇠퇴 경향과 중국의 뚜렷한 부상은 압도적 패권국가의 존재와 힘의 불균형으로 유지되던 평화의 시기가 가고 새로운 패권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 속에 국제질서의 불안정성이 심화할 것을 예고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중국 편승이나 미국 편승, 또는 미중 사이 절충을 놓고 고심을 거듭한다. 그러나 미국의 쇠퇴를 기정사실화하고 누구도 미국의 쇠퇴를 막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우선 모든 국가에서 쇠퇴의 징후는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지만 중요한 점은 그 징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상당기간 쇠퇴를 지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제국주의적 과대팽창의 측면에서 미국은 고립주의와 개입주의가 교차하면서 외교·안보정책의 방향을 조정하는 능력을 보여왔다. 굴욕을 감수하면서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고 네오콘의 공세도 민주당 집권 이후 약해졌으며 동아시아에서 전략적 유연성이란 이름 아래 미군을 축소 재배치하는 것도 과대팽창을 스스로 조정 중인 사례일 것이다.
 
나아가 미중 패권경쟁이 사실은 관세전쟁이 아닌 기술패권경쟁을 그 본질로 한다는 점도 미국의 일방적 쇠퇴를 반박하는 맥락으로서 중요하다. 미국은 AI(인공지능), 빅데이터, 항공우주 관련 첨단산업의 기술혁신을 통해 자본주의 발전을 주도했고 기술경쟁을 뒷받침하는 연구·개발, 생산성, 교육 차원에서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 미래 첨단기술은 대부분 산업기술인 동시에 군사기술로도 쓰인다는 점에서 패권을 꿈꾸는 국가에는 사활적 경쟁의 영역이고 이 분야의 기술혁신에서 미국은 아직 상대적 우위를 점한 것이다.
 
오히려 미국의 쇠퇴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전혀 다른 곳에서 온다. 어떤 국가든 국내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만 대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올해 미 대통령선거에서 드러났듯이 빈부격차 심화와 계층상승 단절, 이러한 균열이 인종 및 종교와 겹치면서 화해하기 힘든 2개 미국으로 나뉜 현상은 사실 미국의 쇠퇴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근거다. 중국이 경제의 총량에서 미국을 추월할 뿐 아니라 자유주의 세계가 직면한 불평등의 확산과 계층이동의 단절이라는 사회문제까지 해결한다면 이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진영을 총체적으로 흔드는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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