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반려했다는데 홍남기 "사표"…국회서 "참을수 없었다"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 정현수 기자 2020.11.0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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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종합)

①때와 방법 모두 예상 벗어났다, 홍남기 '사직서 소동'

(서울=뉴스1) 성동훈 기자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2020.11.3/뉴스1(서울=뉴스1) 성동훈 기자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2020.11.3/뉴스1


"제가 책임을 지고 오늘 사의 표명과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3일 오후 여의도 정가는 홍 부총리의 사의 표명 소식으로 뒤숭숭했다. 경제사령탑의 예상치 못한 사직서 제출은 그 시기와 방법 모두 예상 범위를 벗어났다. 무엇보다 홍 부총리가 사의 표명 사실을 본인이 직접, 그것도 국회에서 했다는 게 이례적이다.



평가는 엇갈린다. 홍 부총리의 소신이라는 평가, 정치적 행보라는 평가 등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여당의 반응은 후자쪽에 무게중심이 쏠린다. 야당 내에서도 홍 부총리의 방식이 부적절했다는 평가가 없지 않다. 홍 부총리는 "참을 수 없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홍 부총리의 사의 표명 사실이 알려진 건 이날 오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주주의 주식 양도소득세 강화방안을 질의했다. 홍 부총리는 기재부안과 다르게 결정됐다며 사직서 제출 소식을 알렸다.



대주주의 양도세 과세 기준은 정부와 여당이 줄곧 이견을 보였던 사안이다. 기재부는 예정대로 내년 4월부터 현행 대주주 기준인 10억원을 3억원으로 내릴 예정이었다. 여당의 다수 의견은 현행 유지였다. 주식 시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견을 좁히기 위해 지난 1일 고위 당정청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현행 유지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정부안은 철회수순을 밟게 됐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 2일 기자들과 만나 "가닥이 잡혔다"며 이를 넌지시 전했다. 홍 부총리로선 입장이 난처해질 수밖에 없었다.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친 후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홍 부총리는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주주 요건 강화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2020.11.3/뉴스1(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친 후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홍 부총리는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주주 요건 강화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2020.11.3/뉴스1
결국 홍 부총리는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날 오전 국무회의 직후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청와대의 설명을 종합하면 문 대통령은 신임을 재확인하고 사직서를 반려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홍 부총리가 별도의 질의가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사의 표명 사실을 알린 것이다.


당장 '정치적 행보'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기동민 민주당 의원은 "심하게 말하면 대통령 참모 역할이 아니라 기성 정치인의 정치적 행동과 담론으로 해석될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형식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홍 부총리는 "정치적 행동이라고 말씀주셨는데 저한테는 정치라는 단어가 접목될 수 없다"며 "갑론을박이 있다가 현행 유지가 된 것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텐데 제가 지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제가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가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위해 열린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사의 표명 사실을 알린 것 자체에도 부정적 평가가 잇따랐다. 실제로 상당수 의원들은 홍 부총리의 사의 표명 소식을 듣고 질의 대부분을 서면 질의로 대체했다. 정책질의는 사라지고, 홍 부총리의 거취만 부각됐다.

윤후덕 기재위원장은 "국회 상임위원회 의원의 질문도 없는 상태에서 기관장이 사의 표명 사실을 스스로 밝혀서 의원들이 애써 준비한 정책질의를 위축시켰다"며 "우리 위원회의 권위에도 안 맞는 행동을 했다고 지적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부 야당 의원들 사이에선 홍 부총리의 소신을 높게 평가한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국회에서 사의 표명 사실을 알린 것 자체에는 문제를 삼았다. 기재부 출신인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마저도 "부총리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추 의원은 "부총리가 견해를 달리해서 사의를 표명하라더도 (정기)국회는 마치고 대외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상임위도 그렇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도 그렇고 이제 떠날 사람이라고 하면 그 분을 상대로 진지한 문답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상임위와 별개로 민주당은 짧은 메시지만 냈다. 민주당은 최인호 수석대변인 명의로 "그동안 소신을 갖고 추진해 온 부총리의 책임의식을 발로로 이해한다"며 "경제수장으로서 흔들림 없이 나가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재신임 의사와 마찬가지로 동행에 방점을 둔 것이다.




②사의반려 못들었다고?…'부글부글' 靑 "반려 후 재신임 최종상황"

[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치고 의원들과 인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0.11.03.  photo@newsis.com[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치고 의원들과 인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0.11.03. [email protected]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즉각 반려했다. 문 대통령이 홍 부총리를 재신임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출입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홍 부총리는 오늘 국무회의 직후 대통령께 사의를 표명했으나 대통령은 바로 반려 후 재신임했다"고 밝혔다.

강 대변인은 이후 추가 서면브리핑을 통해 "국무회의 직후 대통령께서 홍 부총리를 면담했다"며 "홍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했으나 대통령께선 격려하시면서 신임을 재확인하고 반려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홍 부총리가 대통령과의 면담 및 반려 사실을 국회 기재위에서 밝히지 않은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존중해서다"며 "대통령의 동선이나 인사권에 관한 사안은 공직자로서 보안을 유지해야하는 사안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더욱이 홍 부총리는 청와대 대변인실의 반려 사실 공식 발표(오후 2시50분경)를 국회 기재위에 출석한 상태였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며 "공식발표를 확인하지 못한 채 국회에서 대통령과의 면담 및 발표사실을 확인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홍 부총리가 국회에서 사의표명 사실을 언급한 후 일부 의원들이 문 대통령의 반려 소식을 들었냐고 묻자 "듣지 못했다"고 답한데 대한 청와대의 설명인 셈이다. 강 대변인은 "홍 부총리의 사의표명 문제는 ‘반려 및 재신임’이 최종 상황이다"고 강조했다.
[춘천=뉴시스]배훈식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강원 춘천시 남산면 더존비즈온 강촌캠퍼스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디지털경제 현장방문'에 참석해 데이터, AI 혁신 서비스 발표 시연을 참관하고 있다. 2020.06.18.   dahora83@newsis.com[춘천=뉴시스]배훈식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강원 춘천시 남산면 더존비즈온 강촌캠퍼스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디지털경제 현장방문'에 참석해 데이터, AI 혁신 서비스 발표 시연을 참관하고 있다. 2020.06.18. [email protected]
홍 부총리는 그동안 더불어민주당과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주주 요건 강화 등을 놓고 갈등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주주 요건 3억원을 고수해왔던 홍 부총리는 앞선 고위당정청 회의에서 대주주 요건 10억원 유지가 결정된 데 대해 반대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홍 부총리가 최근 대주주 요건 강화 등 주요 정책을 놓고 민주당과 갈등을 보이는 것에 부담을 느껴왔다”며 “당정간 이견 커지는 것에 책임을 지겠다는 차원에서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앞서 당정청은 지난 1일 비공개 협의회를 열었지만 사안별로 다른 입장만을 확인한 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1주택 보유 재산세 기준과 주식 보유 대주주 기준 등에서 이견을 보여 정부의 최종 발표를 미뤄왔다.

하지만 지난 2일 물밑 접촉을 통해 접점을 찾았고, 곧 발표를 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1주택 보유 재산세 기준은 청와대가 고수했던 6억원 이하로 완화하는 방안이, 대주주 요건은 10억원을 유지하는 방안이 정부 발표안에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홍 부총리는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주주 요건 완화 등에 대한 질문에 "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대 의견을 제시했지만 고위 당정청에서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요건을 10억원으로 유지하기로 했다"며 "누군가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싶어 제가 오늘 사의표명과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홍 부총리와의 비공개 업무보고를 받은 뒤 "경제팀이 잘 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신임의 뜻을 밝혔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홍 부총리에게 "8월 중순 이후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내수와 고용 충격에도 불구하고 경제팀이 수고를 많이 했다"고 칭찬했었다.

청와대 안팎에서 불편한 기류가 감지된다. 코로나19(COVID-19) 위기 극복에 온 힘을 쏟아야 할 경제사령탑이 내년도 예산안을 심사하는 국회에 가서 사표를 썼다고 공개한 게 무책임하다는 이유에서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앞둔 경제부총리가 갑자기 사의를 표명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며 “예산심사를 앞둔 상황에선 신중한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공직자가 일신상의 사유로 사의를 표명할 수 있지만, 모든 국민이 지켜보는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듯 말하면 모든 사안이 결국 정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며 "국회에서 얘기한 것 자체가 정치적 행위로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권 관계자는 “인사 관련 문제는 대통령의 판단이 가장 중요한데, 홍 부총리가 공개적으로 먼저 언급을 한 건 항명성 시위에 가까워 보인다”며 “당정협의 과정에서 불거진 잡음이 결국 인사문제로 커졌는데, 이를 컨트롤해야 할 청와대 입장에선 난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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