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광의 디지털프리즘]망중립성? 플랫폼은 공정한가

머니투데이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2020.11.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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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소송이 소환한 망중립성 논쟁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망 중립성’(Net neutrality) 논쟁이 법정에서 재소환됐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망 사용료 협상 중재를 요청한 SK브로드밴드에 대응해 법정에서 ‘사용료 지불 의무가 없음’을 확인하겠다며 넷플릭스가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에서다.

 지난달 30일 진행된 첫 재판에서 넷플릭스 측 변론은 ‘망 중립성’에 근거를 뒀다. 가입자가 요청한 콘텐츠를 전송하는 것은 ISP(통신사)의 당연한 업무인데 CP(콘텐츠기업)에 전송료(망 사용료)를 강제하는 행위는 인터넷·망 중립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게 요지다. 이에 대해 SK브로드밴드는 콘텐츠를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원칙일 뿐인데 넷플릭스가 자의적으로 해석한다고 맞섰다. 망 중립성이 아무런 대가 없이 무임승차하란 취지는 아니라는 반박이다.



 ‘어떤 콘텐츠나 서비스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망 중립성 원칙은 과거 통신사와 분쟁에서 CP들이 곧잘 인용했다. 2003년 미국 컬럼비아대 미디어법학자인 팀 우 교수가 처음 제시했다. 초창기엔 정보평등주의 혹은 인터넷 공공성 관점에서 ‘상식적 규약’으로 여기기도 했다. 통신사의 힘이 워낙 막강하던 시절이다. 통신사 갑(甲)질에 대한 방어논리가 필요했다.

 그런데 지금도 이 원칙이 유효할까. 2015년 미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망 중립성 원칙을 제정한 이면을 들여다보면 글로벌 신산업 패권을 쥐겠다는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현지 기업들의 노림수가 깔려 있다. 실제 망 중립성은 구글과 넷플릭스, 페이스북 등 미국 IT(정보기술)기업들이 글로벌 공룡사업자로 초고속 성장하는 데 더 없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다. 이를 명분으로 각국 통신망에 무임승차할 수 있어서다. 따지고 보면 불공정거래의 단초였다. 글로벌 CP들이 전세계 곳곳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지만 지역 내 이익환원은 미미했고 산업은 종속됐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내 7개 카드사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구글플레이 매출은 2조원을 넘어섰다. 와이즈앱이 표본데이터로 추정한 지난달 한국인들의 넷플릭스 카드결제액은 462억원에 달했다. 올해 연간 결제액이 5000억원을 넘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서버가 현지에 없다”는 이유로 세금도, ‘망 중립성 원칙’을 핑계로 망 사용료도 내길 꺼린다.

 올 상반기 국내 통신사들의 시설투자비 합계는 무려 3조4000억원. 이 중 상당액이 글로벌 동영상 트래픽에 대응하는 데 쓰인다. 올 2분기 일평균 트래픽 발생량 상위 10개 사업자 중 구글, 넷플릭스 등 글로벌 CP가 차지하는 비중은 73.1%.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CP 26.8%보다 2배 이상 높았다.(김상희 민주당 의원)

 이미 힘의 균형은 깨졌다. 구글플레이, 유튜브, 넷플릭스, 페이스북 등은 일개 통신사의 영향력을 넘어선 지 한참됐다. 이들은 이미 막강한 이용자 기반을 갖춘 절대 권력자다. 오죽하면 넷플릭스가 자의적 ISP별 속도 측정 결과를 공개하며 통신사들을 줄 세울까. 구글은 콘텐츠기업들의 반발에도 내년에 앱마켓결제(인앱결제) 수수료정책 개편을 강행키로 했다. 구글플레이에서 콘텐츠앱을 팔려면 30%의 수수료를 내란 얘기다. “수수료 인상을 강행하기 위한 꼼수이자 갑질 횡포”라고 목소리를 높여도 꿈쩍하지 않는다.


 어쩌면 망(網)보다 플랫폼 중립·공정성이 더 절실한 시기 아닐까. 글로벌 공룡기업들의 시장독점 행태는 자국에서도 비판받는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망 중립성 원칙을 용도폐기한 이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미국 대선결과가 곧 나온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지만 망 중립성 원칙은 이제 누가 봐도 진부한 ‘키워드’다. 해묵은 망 중립성 논쟁보단 글로벌 콘텐츠 권력의 횡포를 견제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의 공정규칙들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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