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100℃] '로동요'를 통해 본 미지의 영역, 북한의 음악

뉴스1 제공 2020.10.3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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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템포 노동요 즐기는 南 현장서 노래 불러주는 北
서로 다른 남북 가요…교류의 장에서는 톡톡히 역할

[편집자주][북한 100℃]는 대중문화·스포츠·과학·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는 코너입니다. 뉴스1 북한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관점을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유튜버 'Sake L'의 '노동요' 영상 갈무리.© 뉴스1유튜버 'Sake L'의 '노동요' 영상 갈무리.© 뉴스1


(서울=뉴스1) 이설 기자 = "노동요를 듣고 밀린 작업을 1시간 만에 끝냈습니다!"



1800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한 유튜버 'Sake L'의 '노동요' 영상은 효과를 간증(?)하는 댓글들의 '놀이터'다. 이 영상은 중독성 있는 노래들을 빠른 템포로 이어 붙인 게 특징이다.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라는 사전적 의미와 달리 요즘 노동요는 듣는 게 대세다.

노동요를 북한식으로 패러디한 '로동요'도 덩달아 인기다. 이 영상도 북한 노래 여러 곡을 빠른 템포로 이어 붙였다. 다만 실제 노동요와는 거리가 먼, '반갑습니다', '대홍단 감자' 같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북한 노래들이다. 대부분의 북한 패러디물들이 그렇듯 로동요도 '희화'에 중점을 둔 듯싶다.



"신기하다", "촌스럽다" 같은 반응을 얻었던 2018년 북한 예술단의 서울 공연 취재 경험이 문득 떠올랐다. 당시 북한 예술인들의 무대도 사상, 선전보다는 재미, 즐거움으로 소비됐던 기억이 있다. 남북은 서로 다르고 낯선 음악을 매개로 꽤 오랜 기간 소통을 시도해왔다. 시대가 변해도, 잘 몰라도, 음악을 매개로 교류해왔던 남북은 지금 얼마나 다르고, 또 같을까.

◇북한도 라이브로 '로동요'를 듣는다?

요즘 유행하는 '노동요' 영상은 신나는 음악을 빠르게 재생하면서 일의 능률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 북한도 방법은 다르지만 일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음악을 사용한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9일 수해 복구 중인 함경남도 검덕지구에 현재까지 1000세대의 살림집(주택)이 완공됐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수해 복구 현장에서 벌어지는 화선식 선전선동 장면.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9일 수해 복구 중인 함경남도 검덕지구에 현재까지 1000세대의 살림집(주택)이 완공됐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수해 복구 현장에서 벌어지는 화선식 선전선동 장면.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email protected]
올해 여름 폭우 여파로 아직까지 복구가 한창인 북한의 건설 현장에는 노랫소리가 빠지지 않는다. 예술선전대라고 불리는 이들이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선전대는 시·도·군 등 지역별로도 꾸려져 있으며 전쟁노병·학생·여성 등이 소속돼 많게는 수만 개에 이른다. 이들은 공사장뿐만 아니라 공장이나 모내기철 농촌에도 투입돼 노래를 부른다.

지난 22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선전대원들이 부르는 '사회주의 전진가', '우리의 국기'를 비롯한 혁명적이며 기백이 넘친 노래들에 고무된 군인 건설자들은 총공격전으로 매일 공사 계획을 2배 이상 수행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전대원들은 당에 대한 충성심, 수령의 은덕을 강조하는 노래를 부른다.

"정치가 없는 음악은 영혼이 없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북한에서는 무엇보다 가사가 중요하다. 반복되는 가사와 빠른 템포가 특징인 남한의 '노동요'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지난 20일 노동신문이 보도한 화선선동 현장을 보면 예술선전대원들은 '내가 지켜선 조국'과 같은 느린 템포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일 전국 각지에서 수해복구에 나선 인민군 장병을 응원하는 위문편지가 전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일 전국 각지에서 수해복구에 나선 인민군 장병을 응원하는 위문편지가 전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email protected]
이들은 노래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온 위문편지를 읽어주기도 한다. 모두 녹음이 아닌 라이브로 진행되는 게 특징이다. 작업이 밤늦게까지 이어진다면 이들도 함께 '철야전'을 벌인다. 북한은 이러한 활동을 '화선(火線·전투의 최전선)식 경제 선동'이라 정의하면서, 꽤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각종 소음으로 둘러싸인 공사장에서 이들의 공연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남한은 '댓글'로 효과를 표현하며 하나의 놀이문화를 형성했지만, 북한 인민들의 '진짜' 마음은 확인할 길이 없다. "선전대원들이 불러준 노래가 큰 힘이 된다"라고 인터뷰하는 북한 인민들의 모습을 조선중앙TV를 통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북한도 GD를 알까?…숨어서 듣는 남한 가요

물론 북한의 음악 중에는 선전적 요소를 배제한 가요도 있다. 다만 우리의 대중가요와는 달리 형식이나 내용에서의 파격은 쉽지 않다.

1990년대 들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민들이 생활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더 많이 창작할 것을 지시함에 따라 정치적 요소를 배제한 노래들이 많이 등장했다고 한다. 북한의 대표적인 가수 전혜영이 부른 '휘파람'은 남녀 간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어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하지만 한 때 '날라리풍'이라며 단속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한의 가요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거 GD(지드래곤)라고 아오?" "알지, 걔 모르면 간첩이지." (영화 '강철비' 中)

쿠데타 발생 직후 남한으로 내려온 북한 최정예 요원 엄철우(정우성 분)와 남한의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 분)가 나눈 대화다. GD의 '삐딱하게'를 열창하는 곽철우를 보며 질색(?)하는 엄철우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냈다. 딸을 통해 남한 GD의 존재를 전해 들었지만, 곽철우가 재연한 GD는 영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이 영화 양우석 감독은 자본주의 사상에 대한 단속이 심한 북한에서도 GD는 알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 장면을 구상했다고 한다.

영화 '강철비' 포스터 © News1영화 '강철비' 포스터 © News1
북한 주민들이 MP3플레이어 등을 사용해 남한 노래를 몰래 듣는다는 것은 여러 탈북민들의 증언을 통해 알려진 바다. 숨어서 듣는다는 걸 보니 남한 노래에 대한 반응이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심지어는 남한 노래인 줄 모르고 흥얼거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북한 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주민들의 일상을 담은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을 약 40초간 플레이하기도 했다. 남한 노래임을 알지 못해 벌어진 해프닝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대중가요에 대한 남북 차이가 크다 보니 소통은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에서 공연했던 남한 가수들을 보는 관중들의 무표정은 우리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당시 남한에서는 이들이 남한 노래를 들으며 좋아하면 '총살'을 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지만 한 탈북민은 "음악을 어떻게 즐기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강철비' 속 엄철우는 GD를 좋아하는 딸과는 달랐던 것처럼, 북한에도 음악을 두고 벌어지는 세대 간 차이도 물론 있을 것이다.

◇김정은도 만난 레드벨벳…가요로 교류한 남북

이처럼 남북의 음악적 차이는 적지 않지만, 노래는 남북 교류의 장에서 톡톡히 역할을 해왔다. 남북 음악 교류는 1985년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처음 시작돼 클래식, 국악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였다. 이후에는 대중음악 위주로 꾸며져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남한의 패티김, 태진아, 설운도, 최진희, 젝스키스, 핑클 등은 1999년 12월 북한에서의 첫 공연을 펼쳤다. 2001년 4월 함경남도 함흥에서 열린 가수 김연자의 공연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관람해 극찬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2년에는 KBS교향악단과 조선국립교향악단의 합동 무대와 MBC가 주최한 평양 특별공연이 있었다. 이때 윤도현 밴드가 부른 '오! 통일 코리아'는 최초로 남북 전역에 동시 생중계되기도 했다. 이 노래는 이후 북한 주민들이 좋아하는 남한 노래로 회자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에는 KBS 전국노래자랑 평양편이 평양모란봉공원 평화정 앞 야외무대에서 열렸다. 2005년에는 가수 조용필 단독 콘서트가 평양에서 개최됐다.

나는 2018년 2월 북한 예술단의 서울, 강릉 공연을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북한 예술인들은 기존보다는 세련미 넘치는 무대를 선보였지만 남한의 공연들에 비해 촌스럽다는 평이 다수를 이뤘다. 또 한편으론 북한이 최대한 선전적 요소를 배제하고 남한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려 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8일 오후 평양대극장에서 열린 삼지연 관현악단의 환영공연을 관람한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부인 리설주 여사와 무대에 올라 출연진을 격려하고 있다. 2018.9.18/뉴스1 © News1 평양사진공동취재단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8일 오후 평양대극장에서 열린 삼지연 관현악단의 환영공연을 관람한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부인 리설주 여사와 무대에 올라 출연진을 격려하고 있다. 2018.9.18/뉴스1 © News1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북한 예술단은 당시 이선희의 'J에게',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등을 불렀고, 남한 가수 서현과 손을 잡고 무대를 마무리했다. 북한 음악에는 정치적인 요소가 명확하지만 남과 북이 만나는 무대에서는 감동을 연출해왔다.

같은 해 4월 조용필, 이선희, 서현, 아이돌그룹 레드벨벳 등이 평양을 방문해 '봄이 온다'를 주제로 공연을 펼쳤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시 남한 예술인들의 무대를 관람하고 기념사진도 찍으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예술인들의 무대도 정치적인 상황과 맞물리는 제약이 있었다. 김 위원장은 그 해 '봄이 온다'의 답방 공연인 북한 예술인들의 '가을이 왔다'를 제안했지만 남북 대화가 교착되면서 결국 무산됐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북평화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에 참석했다고 노동신문이 2일 보도했다. (노동신문) 2018.4.2/뉴스1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북평화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에 참석했다고 노동신문이 2일 보도했다. (노동신문) 2018.4.2/뉴스1
"저는 절대로 이 영상을 재생 목록에 넣지 않았습니다. 고양이가 그랬습니다." "아 내가 먼저 로동요 컨셉(콘셉트)으로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로동요' 영상에는 이런 댓글들이 달려 있다. 남북 공연은 멈췄지만 북한 음악은 여전히 장난스러운 반응들로 소비되는 모습이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에 상상력을 더 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약 2년 6개월 전 남북이 함께 노래했던 그 때 이후 속절없이 흐른 시간은 더 많은 과제들을 남겼다. 남북의 음악은 또 한 무대에서 만날 수 있을까. 그 해 가을은 결국 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계절은 바뀌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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