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제례에 여자는 술 못 올려"…부산서 의병 기리는 제사 '구시대적' 비판

뉴스1 제공 2020.10.26 15:58
글자크기
안동 도산서원서 600년 서원 역사 최초 여성 초헌관이 추계향사를 봉행했다.2020.09.22.(안동시 제공)© 뉴스1안동 도산서원서 600년 서원 역사 최초 여성 초헌관이 추계향사를 봉행했다.2020.09.22.(안동시 제공)© 뉴스1


(부산=뉴스1) 이유진 기자 = 부산에서 지역 의병을 모시는 제단에 여성이 술을 올리는 것이 제한되면서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처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26일 부산 수영구의회 등에 따르면 수영구에서는 매년 11월 초 임진왜란 때 7년간 왜군에 항전하다가 전사한 의용군 25인을 위한 제사가 진행된다.



이때 고인에게 술을 올리는 것을 ‘헌관’이라고 하는데 전통적으로 남성이 헌관을 해오면서 지역 내 여성들의 불만이 큰 상황이다.

지난 제7~8대 수영구의회 전 의장들도 여성이었지만 헌관은 줄곧 남성이 해왔다는 전통으로 인해 남성 부의장 등이 대신 술을 올렸다.



현재 수영구의회 의장을 맡고 있는 김진 의원은 “지역을 위해 희생한 의용군을 모시는 제사이기 때문에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이 술을 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전통이라는 이유로 남성과 여성에 구별을 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전통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이번에 도산서원에서 지낸 제사에서도 600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이 헌관을 했다”며 “의용군 25인을 모시는 제사에는 초등학생들이 체험학습으로 참관하기도 하는데, 여성과 남성을 구별하는 전통이 교육에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역에서도 의용군 25인을 모시는 제사에 구민들의 세금이 들어가고 있어 성별을 떠나 구민들의 선택을 받은 구의회 의장이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경옥 전반기 의장도 “수영구의회 8대 전후반기 의장이 여성이고 7대 때도 여성의장이었는데 성별을 구별하는 것은 구시대적이다”며 “전통을 한순간에 바꾸기가 어렵다 보니 남성만 헌관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전통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수영구 지역 유지들의 모임인 '기로회'에서는 수백년 동안 지켜온 전통을 한순간에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사를 주관하는 민속보존협의회는 문제를 제기한 측과 협의를 진행한 끝에 올해에도 기존 전통에 따라 남성이 헌관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당장 다음해부터는 여성도 헌관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방안을 고려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제대로 실행될 지는 미지수인 상황이다.

민속보존협의회 관계자는 “수영구가 지역 특색이 강하고 유지들의 자부심이 크다 보니, 전통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실정”이라며 “80~90대 기로회 회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어 “전국적으로도 지역에서 제사를 모실 때 남성 위주의 풍습이 내려오고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해 공감을 하고 있다. 내년에는 여성도 헌관을 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겠다”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