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싫다는데"…정부는 왜 제주에 대기업 면세점 강행하나

뉴스1 제공 2020.09.1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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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제주에 대기업 시내면세점 신규 특허 허용
반대여론 들끓는데 정부 부처들은 '책임 떠넘기기'

마스크를 쓴 중국인 관광객들이 제주의 한 시내면세점에서 쇼핑을 하고 있다.2020.2.7 /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마스크를 쓴 중국인 관광객들이 제주의 한 시내면세점에서 쇼핑을 하고 있다.2020.2.7 /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지역민심을 철저히 외면하고 오로지 대기업을 위한 일방통행식 결정을 내렸다."

제주도의회 포스트 코로나 대응 특별위원회가 7월31일 발표한 성명의 한 대목이다.

이는 같은 달 10일 기획재정부가 김용범 제1차관 주재로 '보세판매장 제도운영위원회'를 열고 대기업이 서울과 제주에 각각 1개씩 추가로 시내면세점을 열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데 따른 비판이다.



당초 기재부는 지난해 제주에 관련 특허를 부여할 예정이었으나 제주지역의 반대 여론을 고려해 1년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고, 결국 올해 제주에 소상공인과의 상생협력을 조건으로 1개의 대기업 시내면세점 신규 특허 수를 부여했다.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소상공인단체, 시민사회단체 등 지역 전체가 해마다 기재부에 항의하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기재부는 왜 이런 결정을 강행했을까.



◇우스워진 '코로나19' 논리…오판의 역사 재조명

롯데면세점 제주점 앞에 휴업 안내문이 걸려 있다.2020.6.1 /뉴스1 © News1 홍수영 기자롯데면세점 제주점 앞에 휴업 안내문이 걸려 있다.2020.6.1 /뉴스1 © News1 홍수영 기자
올해 관세법 시행령에 따라 대기업 시내면세점 신규 특허 수를 부여받을 수 있는 지역은 서울, 제주, 부산, 경기 단 4곳이다. 지난해보다 시내면세점 매출액이 2000억원 이상 또는 외국인 관광객 수가 20만명 이상 증가한 지역들이다.

제주는 이 가운데 1순위 지역이었다.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할 뿐 아니라 코로나19 이전인 최근 3년간 시내면세점 평균 매출 증가율이 47.9%로 서울(38.2%)·부산(6.8%)·경기(-92.1%)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난 점이 주효했다.


특히 기재부 보세판매장 제도운영위는 제주의 경우 시내면세점이 단 2곳(신라·롯데) 뿐인 독과점 시장이기 때문에 코로나19 이후의 상황에 대비해 잠재적 신규 사업자에 대한 진입 장벽을 완화시킬 필요성도 있다고 봤다.

반면 기재부 보세판매장 제도운영위는 부산, 경기에 신규 특허 수를 부여하지 않으면서 코로나19로 인한 영업환경 악화와 지역 여건 등의 이유를 댔다. 그러나 실제 이는 광 위주의 산업구조인 제주에 더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인들이다.

현재 제주에서는 코로나19로 내국인 관광객은 반타작, 외국인 관광객은 무비자 입국 중단 조치로 전멸했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기존 경영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제주관광공사 시내면세점은 지난 4월 폐업했고, 나머지 시내면세점 2곳 마저 90%대 매출 감소율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상 기재부 보세판매장 제도운영위가 당장의 암울한 제주 시장상황에는 눈을 감으면서 코로나19 사태 종식 시기를 섣불리 예단하며 대기업에 향후 성장성이 높은 '노다지' 제주의 문을 강제로 열어버린 셈이다.

이 같은 기재부의 섣부른 예단은 이미 실패로 이어진 바 있다.

기재부의 사업자 선정 후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시내면세점(제주국제공항)과 제주관광공사 시내면세점(중문관광단지)은 특허 갱신 주기인 5년이 채 되기도 전인 각각 2017년 7월과 지난 4월 사업성 악화로 자진 폐업하며 실업자를 양산해 비판받은 바 있다.

◇지역사회 '부글부글'…기재부·관세청은 책임 떠넘기기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제주도의회 본회의장에서 제주도의회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제주도의회 제공)2020.7.28 /뉴스1 © News1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제주도의회 본회의장에서 제주도의회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제주도의회 제공)2020.7.28 /뉴스1 © News1
이에 제주에서는 기재부에 대한 반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제주도는 기재부에 두 차례 의견서를 제출한 데 이어 최근 기재부를 세 차례 항의 방문하며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있고, 지난 7월 말 출범한 제주도의회 포스트 코로나 대응 특별위원회도 잇단 성명 발표와 항의 방문으로 기재부를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제주관광공사, 제주참여환경연대, 제주도소상공인연합회, 제주중앙지하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 등 각계 기관·단체들도 반대 목소리를 내며 힘을 싣고 있다.

모두 과당 경쟁에 따른 송객 수수료 관행 제한 등 제도 개선과 지역 상권과의 상생 방안 마련, 면세점 수익 지역환원 대책 등이 조속히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4월에도 제주도의회에서 반대 입장을 밝혔었다. 그는 "구조적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광객이 많다고 면세점이 들어오는 것은 반대"라며 "우리 땅에서 남 좋은 일만 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었다.

그러나 기재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기재부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보세판매장 제도운영위의 결정사항을 철회하는 것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 하락과 시장 참여자들의 혼란 초래 등의 우려가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며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기재부는 "보세판매장 제도운영위의 결정사항은 특허를 부여할 수 있는 한도로, 실제 특허는 관세청 보세판매장 특허심사위가 부여한다"며 선을 긋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관세청이 "특허는 기재부 보세판매장 제도운영위 소관사항으로 관세청은 특허 절차만 이행할 뿐"이라고 반박하면서 정부 부처 간 낯뜨거운 책임 떠넘기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강성민 제주도의회 포스트 코로나 대응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역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민생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에 책임 미루기식 부처들의 행태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며 "기재부는 진정 국민을 위한 부처로 거듭나라"고 기존 결정 철회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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