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 당겨 쓴 반도체, 하반기 '주춤'...희망은 내년으로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0.08.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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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판다]코로나19 생산차질 걱정에 2분기 메모리 사재기...3분기 재고 한달 수준으로 늘어

편집자주 독자에게 가치 있는 좋은 정보를 팔 수 있게 만든다(판다)는 의미와 산업 분야의 이슈를 깊이 있게 파헤친다는 의미로 마련한 코너입니다.

"지금 어디 계세요?"

"집에서 몇 달째 재택근무 중입니다."

올 하반기와 내년 반도체 시장 전망을 묻는 기자의 질문을 받던 상당수 반도체 전문가들은 집에서 모니터·전화기와 씨름 중이었다. 집에서 컨퍼런스콜을 통해 각국에 있는 관계자들과 글로벌 시장 전망을 조사하고 논의하던 차였다. 올해 반도체 시장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 모습이다.



출처: 세계반도체무역통계(WSTS) 홈페이지 공지. 코로나19로 인해 WSTS의 시장전망 미팅을 하지 못해 WSTS 회원사들의 온라인 통계 툴을 활용해 시장 전망을 내놨다는 공지문이다.출처: 세계반도체무역통계(WSTS) 홈페이지 공지. 코로나19로 인해 WSTS의 시장전망 미팅을 하지 못해 WSTS 회원사들의 온라인 통계 툴을 활용해 시장 전망을 내놨다는 공지문이다.


전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회원사로 있는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지난 6월 코로나19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올해 반도체 시장은 4259억 6699만달러(한화 약 505조 8358억원)로 3.3% 성장하고, 내년에는 6.2% 더 성장할 것(4522억 5200만달러, 한화 약 537조 493억원))이라고 내다봤다.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더 빠른 성장세를 내다봤다. 올해 15% 성장해 1223억 5800만달러(약 145조 3001억원)를 기록하고, 내년에는 11.2% 더 커진 1360억 7600만달러(161조 5903억원)의 시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도체 전문가들, "하반기 메모리 시장 좋지 않다" 한 목소리
2개월 전의 이같은 전망이 유효할까.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를 잘 버텨줬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하반기에 침체기로 접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3분기와 4분기 실적에 크게 기대를 걸지 말라는 얘기가 다수였다. 이런 침체는 내년 상반기 후반 혹은 하반기 초반에 회복되고 반등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쏠렸다.

정창원 노무라금융투자 리서치본부장은 "지난 2분기에는 코로나19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메모리 시장이 잘 버텼는데 그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해 생산라인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한 세트업체들이 2분기에 선주문해 재고를 가져가면서 사재기를 한 영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우려와 달리 반도체 생산라인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으면서 미리 사놓은 재고를 소진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3분기 메모리 시장은 가격하락과 함께 재고소진의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재택근무 중인 정 본부장처럼 소비자들이 2분기에 대외활동을 줄이면서 클라우드컴퓨팅 업체들의 서버 수요는 늘어났으나, 신규 스마트폰 등 소비재의 수요가 줄었다.

반면 3분기에는 락다운이 해제되면서 2분기보다 클라우드 수요는 줄어드는데 반해 스마트폰 등의 수요는 2분기보다 나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연간 전체 수요가 코로나 이전 예상보다는 줄어서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앞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불 당겨 쓴 반도체, 하반기 '주춤'...희망은 내년으로
반도체 업체 A사 관계자는 "D램이나 낸드플래시나 큰 흐름에서는 하락세다"며 "통상 업계의 재고 수준이 3~4주 정도를 일반적으로 보는데, 3분기에는 재고가 쌓여 지금은 한달 조금 넘는 상황에 있다"면서 "시장이 좋을 때인 2017~2018년에는 1주후반에서 2주 정도로 재고가 빠듯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재고가 공급자에게도 있지만, 세트고객사에게도 있어 그 재고가 소진될 때까지는 공급이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2분기 선주문 깜짝 실적 물량, 3분기 재고로 쌓여
이와 관련 또 다른 업계 고위 관계자는 "3분기에 재고로 판매가 주춤한 상태다"며 "메모리는 3분기, 4분기 슬로우하고 2021년에 다시 상승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탁승수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략기획본부장도 "스마트폰이 상반기에 저조했지만, 서버 쪽이 받혀주면서 견뎠는데, 하반기는 상반기보다 안 좋고, 내년 이후 코로나의 변화 여부에 따라 내년 2분기부터 좋아질 것이냐 3분기부터 좋아질 것이냐가 정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는 시장조사업체 IDC코리아의 김수겸 부사장은 내년 상반기보다는 하반기 회복에 무게를 두는 다소 보수적인 견해를 내놨다.

김 부사장은 "'올 하반기는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올해 시장을 보는 관점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데, 내년 상반기는 반도체 시장의 수요가 약해 상반기까지도 좋지 않을 것"이라며 다른 전문가들보다는 한분기 더 회복이 늦춰질 것으로 봤다.

언택트 상황이 길어지더라도 올 하반기와 내년 초까지 클라우드 컴퓨팅에 필요한 메모리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미 투자를 선집행해 데이터센터 등에 재고가 늘면서 2분기와 3분기까지는 메모리업체들이 버텄다는 것이다.

김 부사장은 메모리 수요는 데이터센터의 사재기의 결과로 2/4분기가 피크였고, 3/4분기가 슬로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봄에 코로나19 백신이 나온다고 가정하면 새로운 수요창출이 예상되나, 내년 투자가 올해만큼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김 부사장은 "내년은 평범한 한해가 될 것이고, 내후년은 메모리 쇼티지(공급부족)로 인해 시장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선불 당겨 쓴 반도체, 하반기 '주춤'...희망은 내년으로
큰 흐름에서 반도체 성장세 지속...미중 갈등과 코로나19가 변수
익명을 요구한 삼성전자 (79,200원 ▼500 -0.63%) 최고위 관계자는 "큰 흐름에서 앞으로 3~4년은 삼성 반도체의 실적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중국의 추격도 이때까지는 큰 우려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낙관적 전망을 내놨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시장의 등락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다른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D램 시장이 단기 하락해 3분기가 2분기보다 슬로우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삼성전자의 경우 파운드리 수요가 늘어나면서 반도체 전체적으로는 나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미국이 TSMC 등에 미국 본토에 공장을 짓도록 하는 리쇼어링을 요구하고 있고, 이같은 요구는 삼성전자에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5나노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는 업체가 삼성전자와 TSMC 등 2곳 정도여서 TSMC가 맡고 있는 애플 외의 물량이 삼성전자에게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향후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관련 반도체 수요가 늘어 장기적 관점에서는 여전히 긍정적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화웨이를 필두로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이 어떤 양상을 띠느냐에 따라 중국의 반도체 투자가 달라지고, 그로 인한 시장의 변화와 헤게모니 쟁탈전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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