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호랑이는, 10분 동안 100바퀴를 돌았다[르포]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20.08.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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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실내 동물원서 3시간 관찰해보니…비정상적 행동 반복, "무기력한 동물들의 좌절감 표시"

같은 곳만 맴돌던 호랑이./사진=남형도 기자같은 곳만 맴돌던 호랑이./사진=남형도 기자


흰 털을 가진 호랑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갔다. 서너 걸음 만에 반대편 유리 벽에 부딪혔다. 녀석은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갔다. 또 다른 유리 벽에 금세 다다라 머리가 닿았다. 그리고는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다시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리고 다섯 번. 같은 행동은 계속해서 반복됐다.

1분에 10번꼴, 10분 넘게 지켜보니 왔다 갔다 한 게 100번이 넘었다.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고개를 드니, '전설의 수호 동물 백호(白虎)'라 쓰여 있었다. 뱅갈 호랑이 사이에서 1만분의 1 확률로 태어난다고, '좌청룡 우백호'라 불린다며 서쪽을 지키는 사신이라 했다.



그러나 그 설명이 참 무색하게도, 내 눈앞엔 그저 제자리에서 도무지 알 수 없이 빙빙 도는 호랑이와, 그 앞에서 "어흥"하고 자세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아이들만 있었다.



호랑이는 15분이 지나서야 겨우 멈췄다. 바깥으로 통하는 아주 작은 동그란 구멍으로, 꼬챙이에 꽂힌 생고기가 쑥 들어온 순간이었다. 호랑이 우리 옆에서 파는 2000원짜리 '먹이'였다. "와, 먹는다"며 아이와 부모는 함께 좋아했다. 문제는 그런 이들이 너무 많단 거였다. 수시로 와서 구멍에 먹이를 들이밀었고, 호랑이는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대가로 무기력하게 그걸 받아먹었다.

같은 곳만 맴돌던 호랑이./사진=남형도 기자같은 곳만 맴돌던 호랑이./사진=남형도 기자
이것은, 경기도에 있는 한 자그마한 동물원에서 3시간 동안 머무르며 세세히 지켜본 실제 이야기다. 그러나 이 동물원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란 걸 꼭 기억해 읽어줬으면 싶다.


수사자는 3시간 동안, 움직이지도 않았다
잠들어 있는 암수 사자./사진=남형도 기자잠들어 있는 암수 사자./사진=남형도 기자
호랑이 오른편엔 '밀림의 왕'이라 불리는, 사자 두 마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밀림'에서만 통하는 수식어였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깊고 드넓은 숲 말이다. 어느 방향으로나 시원스레 탁 트여있고, 굳센 네 다리로 어디든 맘껏 뛰어다닐 수 있는.

이곳에서, 갈기가 멋진 수사자는 가만히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바라보던 날 지그시 봤다. 눈만 몇 번씩 감았다가 떴다가 했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잠을 잤다. 그렇게 세 시간이 지나도록, 한 자리에서 꿈쩍도 안 했다. 참고로 사자의 수면 시간은 13.5시간이라 한다(동물원에 동물이 없다면 서적 인용, 저자 노정래).



암사자는 호랑이와 비슷한 행동을 했다. 같은 곳을 반복해 돌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발걸음. 그리고 천천히 돌아 반대편으로 다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발걸음. 언제까지 하나 싶어서 지켜봤으나, 지칠 줄 모르는 행동에 내가 먼저 시선을 거뒀다.

비정상적 반복 행동, "동물들의 좌절감 표시"
너구리도 같은 공간만 계속해서 반복하는 정형행동을 보였다./사진=남형도 기자너구리도 같은 공간만 계속해서 반복하는 정형행동을 보였다./사진=남형도 기자
궁금했다. 호랑이와 사자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근데 가만히 보니, 다른 동물들도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미국 너구리(라쿤)는 사자보다 더 빨리 한쪽과 반대쪽을 왔다 갔다 했다. 거의 3초에 한 번 오가는 정도였다. 조그만 캥거루쥐는 너구리보다 더욱 빨리, 같은 곳을 왔다 갔다, 반복해서 뛰어다녔다. 보는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전문가들은 이를 '정형 행동'이라 했다. 쉽게 말해, 스트레스로 인해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곰이 숫자 8 모양으로 왔다 갔다 하고, 원숭이가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돌고래가 끝없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헤엄치는 것 등이다.

왜 이럴까. 전 세계 동물원을 1000번 이상 방문한, 동물보호운동 활동가 로브 레이들로는 저서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에서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동물원 동물들의 좌절감 표시"라고 했다. 이어 "움직일 공간이 너무 비좁거나, 자극할만한 흥밋거리가 충분치 않단 뜻"이라고도 덧붙였다

전문가 "스트레스가 없는 게 스트레스"
동물원을 구경하는 관람객들./사진=남형도 기자동물원을 구경하는 관람객들./사진=남형도 기자
전문가들에게 물어, 이게 무슨 뜻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봤다.

한준우 동물심리전문가(딩고코리아 대표)는 "스트레스가 없는 게 스트레스"라고 했다. 의아한 얘기다. 풀어서 말하면 이렇다. 좁은 우리 속에 사는 동물들은 사냥할 일이 없다. 끼니때마다 죽은 닭고기 등이 나온다. 그러니 먹이를 구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없다.

그러나 실은 이 스트레스를 이기고, 사냥하고, 보상을 받는 과정에서 행복지수가 높아진단 것. 사람이 열심히 일하고, 그렇게 받은 월급으로 하고 싶은 걸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 동물들은, 스트레스가 없는 좁다란 우리 속에서 무기력해진 것이다. 그게 더 심한 스트레스가 된다. 사람이 아무 일도 안 하고, 집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자리를 빙빙 도는 것에 대해 한 대표는 "무기력을 극복해보려는 심리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심한 경우엔 '자해'도 한다고 했다.

바닥은 시멘트, 허락된 공간은 열두 발자국
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하이에나. 잠시 뒤엔 아예 몸을 돌려 누웠다./사진=남형도 기자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하이에나. 잠시 뒤엔 아예 몸을 돌려 누웠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리 가뒀으면, '환경'이라도 좋아야 할 텐데. 그래야 무기력에 빠지지 않겠으나 그 또한 열악하다.

일단 다닐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좁았다. 그 큰 호랑이에게 허락된 공간이, 성인 걸음으로 고작 열여덟 발자국이었다. 야생 호랑이의 활동 반경은 수컷은 267~294 제곱킬로미터나 된다. 사자는 그보다 더 심했다. 두 마리가 함께 들어가 있는데, 열한 발자국 만에 방사장이 끝났다. 캥거루쥐가 있는 공간은 더 심했다. 한 발자국 남짓이었다.

'돌아다닐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야생 동물은 별다른 이유 없이도 하루종일 움직인단다. 꼭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거나, 쉴 장소가 필요해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동물원 동물들도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매우 작은 공간에 갇혀 있다.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 책에선 "동물원 코끼리의 공간은 야생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무려 1000배 이상 작다"고 했다.

'숨을 곳'도 필요한데, 그것도 마땅찮았다. 동물원 동물도 숨을 곳이 필요하다. "와, 호랑이다!" "사자야, 안녕!"하고 아이들이 외치는 소리, 찰칵찰칵하는 셔터 소리, 방문객의 낯선 냄새 등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니까. 도망칠 수 없으면 불안, 스트레스로 괴로워하게 된다.

호랑이가 있는 곳 바닥은 돌처럼 보였으나, '퉁퉁' 소리가 나는 구조물이었다. 갇힌 동물들의 행동을 풍부하고 의욕적으로 만들어줄, 장치도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니 동물원 내 대다수 동물이 비정상적 행동을 보이거나 계속해서 잠만 잤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해당 동물원에 대해 "일반 동물원에선 하다못해 먹이를 숨겨놓고 찾아 먹게 한다거나 행동 풍부화를 시도라도 하는데, 여긴 그냥 진열 수준"이라고 했다. 특히 "실내 동물원이다보니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고 했다.

동물원 같지 않은 동물원 '태반', 환경부 "허가제 추진하겠다"
몸을 포개고 잠든, 두 코아티./사진=남형도 기자몸을 포개고 잠든, 두 코아티./사진=남형도 기자
더 큰 문제는, 이런 동물원이 한둘이 아니란 것. 동물들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 만들어낸 동물원들 말이다. 이 대표는 "전국 동물원 사자와 호랑이, 그 절반 이상이 방사장도 없는 환경에 있다"고 했다.

제대로 된 환경도 못 갖춘 동물원이 왜 이렇게 많아진 걸까. '동물원 및 수족관 관리에 관한 법률'을 살펴봤다.

자세히 보니, '허가'를 받는 게 아니라 그냥 신고하면 되는 거였다. 해당법 제3조엔 '동물원을 운영하려는 자는 관할 시도지사에게 '등록'해야 한다'고 쓰여 있었다. 서식환경에 대해선 '적정한'이란 말로 애매하게 쓰여 있었다. 금지 행위에 대해서도 상해, 방치 등 학대 행위만 규정해놓았다. 매우 기본적인 수준이었다.

이형주 대표는 "(경기 부천 동물원 같은) 시설은 외국 기준으로는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기준을 만들고, 이런 수준 미달 시설은 운영하지 못하도록 허가제, 검사관제를 일단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환경부도 이에 발맞춰, '동물원 허가제'를 추진 중이다. 장성현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과장은 "동물원, 실내 동물원, 기타 가축 등 유형별로 나눠 허가제를 위한 개정안을 만들고 있다"며 "연내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기존 동물원들도 다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면./사진=남형도 기자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면./사진=남형도 기자

"동물원은 우리 안의 자비심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입니다. 또 인간이 함께 사는 다른 존재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진정 코끼리를 위하는 것은 그들을 소유하지 않는 것입니다."

- 론 케이건, 디트로이트 동물원 원장,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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