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의 골칫거리' 유명희 WTO사무총장 승산이...

머니투데이 세종=민동훈 기자 2020.07.2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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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일본이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할까.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에 도전한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바라보는 일본의 속내가 복잡하다.

1년 넘게 수출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 정부의 통상 수장이 WTO 사무총장에 당선되는 것이 못내 껄끄럽다. 그렇다고 대놓고 반대하기엔 역대 WTO 사무총장 선거 때 다른 한 국가를 비토하는 '네거티브 선거전'을 한 사례가 없다는 점은 부담스럽다.



정부 당국자는 "일본의 국제적 위상과 수준을 고려하면 스스로 얼굴에 먹칠은 '절대' 안 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행보를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지난 24일 일본 교토통신은 일본 총리관저 관계자의 입을 빌어 "일본이 유 본부장을 지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보도했다. 이미 일본 언론들은 유 본부장이 출마선언을 할 때부터 "일본의 골칫거리가 될 것(닛케이)"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겉으로는 이같은 언론 보도를 부인해 왔지만 이번 교토통신의 보도를 보면 익명에 숨어 본심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총장 선출은 회원국들의 지지도가 낮아 당선 가능성이 없는 후보를 도중에 자진 철회 형식으로 탈락시키는 절차를 차례로 반복한 뒤 마지막 1명을 만장일치로 추대하는 방식이다.

세계무역기구를 움직여온 미국·유럽연합·중국은 판세를 지켜보다 최후의 순간에 의견을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끝내 유 본부장을 반대를 하고 싶다면 대항마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미 일본 언론들은 "정부가 나이지리아 출신의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후보, 케냐 출신의 아미나 모하메드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네거티브 캠페인은 선거전이 가열될 수록 더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당장 한일 양국이 당면한 현안이 산적한 까닭이다. 당장 일본 기업의 국내자산 현금화 명령 집행 가능성이 있고 다음달 말에는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여부도 다시 도마 위에 오른다. 미국, 중국의 갈등 심화도 변수다. 일본 언론은 이를 집요하게 부각한다. 유 본부장이 WTO 사무총장이 되면 영향력을 행사해 일본에 불리한 결과를 내도록 할 것이라는 서사다.


정부 당국자는 "WTO 사무총장은 인사·예산권을 쥐고 있는 유엔 사무총장과 다르다. 개별 사안에 개입할 힘이 없다"며 "한일 무역분쟁에 사무총장이 개입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없다"고 반박했다.

일본의 네거티브 공세는 유연하게 받아내야 한다. WTO 체제 존속이라는 대의를 위해선 일본과도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유 본부장은 일본에 손을 내밀었다. 그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WTO 특별 일반이사회에서 열린 차기 WTO 사무총장 후보 정견 발표 직후 진행된 문답에서 "한일 양국은 다자무역체제 수혜자로 이를 유지 및 진흥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WTO 사무총장 선거는 만장일치제다. 일본도 1표를 쥐고 있다. 명분과 전례를 생각하면 일본도 끝까지 반대만 고집할 수는 없다. 즉 마지막까지 살아남기만하면 충분히 당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한국이야 말로 WTO의 회복을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는 점을 파고 들어야 한다. 아울러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재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 당국자는 "유 본부장은 WTO에서 목소리를 내는 거의 모든 중견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만큼, 각 국가 관료들과 수시로 협의할 수 있는 인적 관계를 구축했다"며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유 본부장은 25일(현지시각)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화상 통상장관회의에 참석해 WTO 다자통상시스템 강화와 글로벌 교역 신뢰 회복을 위한 APEC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다양하고 역동성 있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경제 활동을 통해 세계무역기구(WTO) 다자통상시스템을 강화하고 글로벌 교역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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