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고(故) 롯데 창업주가 숙환을 앓아온 지난 3년 여간 상속자 형제들 사이 분쟁이 심화했고, 지난 1월 19일 별이 진 이후에도 잡음은 계속되고 있다. 계열사 곳곳에서 터져 나온 문제들은 리더십이 방향타를 온전히 붙잡지 못한 것을 반증하는 상징적인 사건들로 지적된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공정위가 적발한 롯데쇼핑의 갑질은 대부분 판촉비용 전가, 종업원 불법 파견에서 비롯된다. 유통업계에서 지적돼 온 고질적 문제들이다. 과거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문제가 아니었지만, 최근 변화한 인식으로는 갑질로 충분히 지적될만한 사안들이다. 롯데처럼 업력이 길고, 사업 영역이 넓을수록 관행 개선은 더디다.
공정위가 지난해 말 주요 대규모 유통업체와 거래한 납품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판촉비용 전가를 경험한 업체 비율은 백화점 3.7%, 대형마트·SSM 1.6% 수준이었다. 부당한 납품업체 종업원 파견은 대형마트·SSM(2.0%)이 백화점(0.6%)보다 높았다. 설문조사로 나타난 문제이니 현실은 두자릿수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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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치 과징금 매긴 이유도 '반복적 위반'
지난해 11월에는 유통업계 역대 최고 과징금이라는 불명예도 안았다. 롯데마트가 돈육 납품업체를 상대로 판촉비용을 전가한 게 문제됐다. 공정위는 과징금 411억8500만원을 부과했는데 이는 2016년 홈플러스에 부과한 과징금(220억3200만원)의 두 배에 가까운 액수다.
하지만 롯데마트의 개선은 요원하다. 공정위는 이달 초 롯데마트의 판촉비용 전가를 다시 적발·제재했다. 롯데마트가 2017~2018년 가격 할인, 1+1 등 총 75건 판촉행사를 하면서 납품업체와 서면약정을 맺지 않고 2억2000만원(총 행사비의 47%)의 비용을 전가했다는 것이다.
중국사업 실패에 왜색논란까지…쫓기는 공룡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지난 2월 서울 중랑구 유니클로 엔터식스 상봉점 앞에 영업 종료를 알리는 세움 간판이 설치돼 있다. 2020.02.18. [email protected]
박근혜 정부 때에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한 이후 중국이 경제 제재로 보복하면서 중국에서 백화점·대형마트를 철수, 조단위 손해를 감수해야 했던 것이 쇠락의 서막이다. 이후 오프라인 유통산업이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고, 경영권 분쟁으로 지배구조가 드러나면서 왜색논란이 일었다.
롯데는 창업주 신격호 회장이 1942년 83엔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세운 기업이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도 일본에 지배구조의 정점에 광윤사가 있고, 배당과 중요 결정이 일본 밀실 이사회에서 이뤄진다는 사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일본 기업이라고 매도한다.
지난해에는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불매운동이 롯데그룹 전반에 악재가 됐다. 특히 일본 의류업체 유니클로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되면서 롯데쇼핑이 직접 타격을 입었다. 유니클로의 한국 판매법인인 FRL코리아는 유니클로 본사인 일본 패스트리테일링과 롯데쇼핑이 지분 51대 49로 설립한 회사다.
쿠팡·SSG 온라인 경쟁도 압박
지난 4월 조영제 롯데쇼핑 e커머스사업부 대표가 '롯데ON 전략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 사진=롯데쇼핑
롯데도 온라인사업을 꾸준히 강화하지만 두드러진 성과는 내지 못했다. 지난 2월 롯데쇼핑은 급기야 오프라인 매장 200여 곳을 5년 내에 닫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1분기 롯데쇼핑 매출은 4조767억원으로, 지난해(4조4468억원)보다 약 3700억원 줄었다. 영업이익은 작년 1분기 2052억원에서 올해 521억원으로 거의 4분의 1 토막이 났다.
롯데는 지난 4월 롯데홈쇼핑·롯데닷컴·롯데하이마트·롯데마트 등 7개 쇼핑몰을 통합한 온라인쇼핑몰 ‘롯데온’을 시작했다. 승계 문제는 아직 명확히 정리되지 못했지만 신동빈 현 회장에게 신격호 창업주가 남긴 유서가 나타나면서 불확실성이 서서히 제거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COVID-19)라는 초유의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수년간 허점을 노출한 롯데의 리더십을 각성하게 할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는 더 밀려날 여지가 없기 때문에 최근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며 "유통업계 온·오프라인 경쟁이 하반기 한층 치열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