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분할·후발경쟁·갑질타파…4면초가 롯데

머니투데이 세종=유선일 기자, 박준식 기자 2020.07.14 06:00
글자크기

편집자주 공정거래위원회가 관여하는 기업집단과 시장거래 사건의 전후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그룹분할·후발경쟁·갑질타파…4면초가 롯데


유통공룡 롯데 왕국이 흔들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롯데마트에 411억8500만원이라는 유통업계 역대 최고 과징금을 부과해 불명예를 안겼다.

신격호 고(故) 롯데 창업주가 숙환을 앓아온 지난 3년 여간 상속자 형제들 사이 분쟁이 심화했고, 지난 1월 19일 별이 진 이후에도 잡음은 계속되고 있다. 계열사 곳곳에서 터져 나온 문제들은 리더십이 방향타를 온전히 붙잡지 못한 것을 반증하는 상징적인 사건들로 지적된다.



'갑질' 인지 감수성이 떨어진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공정위는 거의 해마다 롯데에 이른바 '갑질'과 관련한 제재를 내리고 있다. 2017년 그룹 간판격인 롯데백화점에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2014~2015년 고객에 무료 사은품 행사를 벌였는데 납품업체와 판촉비용을 약정하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롯데백화점을 거느린 상장사인 롯데쇼핑은 공정위 처분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냈지만 최근 대법원이 공정위 손을 들어줬다.



롯데백화점은 납품업체에 원가정보 등을 요구한 혐의가 적발된 사실도 있다. 최근 롯데쇼핑 소속인 롯데홈쇼핑은 ‘소비자 청약 철회 방해’로 적발돼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공정위가 적발한 롯데쇼핑의 갑질은 대부분 판촉비용 전가, 종업원 불법 파견에서 비롯된다. 유통업계에서 지적돼 온 고질적 문제들이다. 과거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문제가 아니었지만, 최근 변화한 인식으로는 갑질로 충분히 지적될만한 사안들이다. 롯데처럼 업력이 길고, 사업 영역이 넓을수록 관행 개선은 더디다.

공정위가 지난해 말 주요 대규모 유통업체와 거래한 납품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판촉비용 전가를 경험한 업체 비율은 백화점 3.7%, 대형마트·SSM 1.6% 수준이었다. 부당한 납품업체 종업원 파견은 대형마트·SSM(2.0%)이 백화점(0.6%)보다 높았다. 설문조사로 나타난 문제이니 현실은 두자릿수로 예상된다.


최대치 과징금 매긴 이유도 '반복적 위반'
그룹분할·후발경쟁·갑질타파…4면초가 롯데
롯데마트는 2016년에 납품업체 종업원을 불법 파견받은 사실이 적발돼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이 문제가 2018년에도 다시 발견되면서 과징금과 함께 검찰 고발 조치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유통업계 역대 최고 과징금이라는 불명예도 안았다. 롯데마트가 돈육 납품업체를 상대로 판촉비용을 전가한 게 문제됐다. 공정위는 과징금 411억8500만원을 부과했는데 이는 2016년 홈플러스에 부과한 과징금(220억3200만원)의 두 배에 가까운 액수다.

하지만 롯데마트의 개선은 요원하다. 공정위는 이달 초 롯데마트의 판촉비용 전가를 다시 적발·제재했다. 롯데마트가 2017~2018년 가격 할인, 1+1 등 총 75건 판촉행사를 하면서 납품업체와 서면약정을 맺지 않고 2억2000만원(총 행사비의 47%)의 비용을 전가했다는 것이다.

중국사업 실패에 왜색논란까지…쫓기는 공룡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지난 2월 서울 중랑구 유니클로 엔터식스 상봉점 앞에 영업 종료를 알리는 세움 간판이 설치돼 있다.  2020.02.18.    photo1006@newsis.com[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지난 2월 서울 중랑구 유니클로 엔터식스 상봉점 앞에 영업 종료를 알리는 세움 간판이 설치돼 있다. 2020.02.18. [email protected]
롯데쇼핑 실적은 최근 지속 하향 추세다. 연간 매출은 지난해까지 3년간 17조원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성장은 이뤄지지 않았다. 영업이익을 보면 실적악화를 읽을 수 있다. 2017년 8010억원이던 이익이 지난해 4279억으로 반토막이 났고, 같은 기간 순손실 규모는 8400억원으로 불어났다.

박근혜 정부 때에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한 이후 중국이 경제 제재로 보복하면서 중국에서 백화점·대형마트를 철수, 조단위 손해를 감수해야 했던 것이 쇠락의 서막이다. 이후 오프라인 유통산업이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고, 경영권 분쟁으로 지배구조가 드러나면서 왜색논란이 일었다.

롯데는 창업주 신격호 회장이 1942년 83엔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세운 기업이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도 일본에 지배구조의 정점에 광윤사가 있고, 배당과 중요 결정이 일본 밀실 이사회에서 이뤄진다는 사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일본 기업이라고 매도한다.

지난해에는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불매운동이 롯데그룹 전반에 악재가 됐다. 특히 일본 의류업체 유니클로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되면서 롯데쇼핑이 직접 타격을 입었다. 유니클로의 한국 판매법인인 FRL코리아는 유니클로 본사인 일본 패스트리테일링과 롯데쇼핑이 지분 51대 49로 설립한 회사다.

쿠팡·SSG 온라인 경쟁도 압박
지난 4월 조영제 롯데쇼핑 e커머스사업부 대표가 '롯데ON 전략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 사진=롯데쇼핑지난 4월 조영제 롯데쇼핑 e커머스사업부 대표가 '롯데ON 전략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 사진=롯데쇼핑
롯데쇼핑에 올해는 더 힘든 시기가 될 전망이다. 쿠팡 등이 온라인쇼핑 시장을 빠르게 늘려가면서 오프라인 유통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기존 경쟁사인 신세계그룹마저 SSG.com이라는 온라인 브랜드를 출범해 격전지를 옮겨가고 있다.

롯데도 온라인사업을 꾸준히 강화하지만 두드러진 성과는 내지 못했다. 지난 2월 롯데쇼핑은 급기야 오프라인 매장 200여 곳을 5년 내에 닫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1분기 롯데쇼핑 매출은 4조767억원으로, 지난해(4조4468억원)보다 약 3700억원 줄었다. 영업이익은 작년 1분기 2052억원에서 올해 521억원으로 거의 4분의 1 토막이 났다.

롯데는 지난 4월 롯데홈쇼핑·롯데닷컴·롯데하이마트·롯데마트 등 7개 쇼핑몰을 통합한 온라인쇼핑몰 ‘롯데온’을 시작했다. 승계 문제는 아직 명확히 정리되지 못했지만 신동빈 현 회장에게 신격호 창업주가 남긴 유서가 나타나면서 불확실성이 서서히 제거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COVID-19)라는 초유의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수년간 허점을 노출한 롯데의 리더십을 각성하게 할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는 더 밀려날 여지가 없기 때문에 최근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며 "유통업계 온·오프라인 경쟁이 하반기 한층 치열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