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언 유착' 수사 손 떼라" 결단 내린 추미애…사퇴 기로에 선 윤석열

머니투데이 김태은 기자 2020.07.0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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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사진 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상견례를 위해 7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 각각 들어서고 있다. / 사진=과천(경기)=이기범 기자 leekb@추미애 법무부 장관(사진 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상견례를 위해 7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 각각 들어서고 있다. / 사진=과천(경기)=이기범 기자 leekb@


결국 '총장 지휘권' 발동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자진 사퇴를 거세게 몰아붙이던 추미애 법무장관이 '결정타'로 꺼내든 카드다. 검찰 역사상 수사 중인 사안에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에게 지휘권을 발동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사상 초유의 '총장 지휘권' 발동은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5년 검찰총장의 사퇴로 이어졌다. 검찰총장이 검찰 조직을 더이상 지휘·감독할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다.

추 장관의 지휘권 발동 역시 이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검언유착' 의혹 사건에 대해 윤 총장의 수사지휘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윤 총장에게 반기를 든 서울중앙지검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윤 총장을 '이름 뿐인 총장'으로 만들었다. 윤 총장에게 사표를 쓰라는 최후통첩인 셈이다.



남은 것은 윤 총장의 결단이다. 윤 총장은 추 장관과 여권의 사퇴 공세 속에서도 총장 직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강하게 피력해왔다. 법으로 보장된 검찰총장 임기를 지키는 것이 검찰 독립성을 지키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을 밝혀왔다. 검찰 조직을 넘어 '헌법주의자'라고 자처했던 그의 신념이 사퇴 여부에 영향을 미칠 지도 주목된다.

추미애, 수사지휘 공문 공개하며 "검언유착 수사 관여말라"
법무부는 2일 추 장관이 이날 윤 총장에게 '채널A 관련 강요미수 사건'에 대한 전문수사자문단 심의를 중단할 것을 지휘한 수사지휘 공문을 공개했다. 추 장관은 공문에서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전문수사자문단의 심의를 통해 성급히 최종 결론을 내리는 것은 신장규명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며 특히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를 보장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대검찰청 등 상급자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사한 후 수사결과만을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도록 조치할 것을 지휘한다"고 밝혔다.



수사지휘 이유로는 "검찰총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현직 검사장이 수사 대상이므로 검찰총장의 수사지휘와 관련해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되지 않도록 합리적이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다른 외부 자문기구인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의 심의가 예정돼 전문수사자문단과 결론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상당한 혼란이 예상되며 국민들도 수사 결과를 신뢰하지 못할 우려가 커졌다는 점도 지휘권을 발동의 배경이 됐다고 밝혔다.

전날 추 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참석해 '검언유착 의혹' 수사와 관련해 "더 지켜보기 어렵다면 결단할 때 결단하겠다"면서 총장 지휘권 발동을 시사한 바 있다. 추 장관은 대검 전문수사자문단 구성과 관련해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검찰총장도 그런 우려 때문에 '손을 떼겠다'고 했는데 반대되는 결정을 자꾸 해서, 저도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 장관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과 관련해서도 대검에 지시를 내리면서 검찰청법 8조를 근거로 했다고 설명을 해 지휘권 발동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당시 '수사 중인 사안'이 아닌 '진정 사건에 대한 조사 방식'에 대한 지시여서 '총장 지휘권' 발동으로 볼 수 있느냐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이 역시 윤 총장에 대한 사퇴 압박 의도로 해석됐다.


이날 '지휘권 발동'은 공문까지 공개해 검찰 독립성 훼손에 대한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윤 총장의 사퇴를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제기된다.

순천지청장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법무부 장관의 구체적 사건에 대한 검찰총장 지휘권은 정치 권력의 검찰 수사 개입을 통해 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는 문제가 있어 지휘권 규정이 있는 국가에서도 극히 행사를 자제해온 권한"이라며 "윤 총장이 사표를 내지 않으면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을 수용한 첫 검찰총장이란 치욕적인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심 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윤석열 검찰총장이 1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심 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장고에 들어간 윤석열, '헌법주의자'의 선택은
윤 총장은 장고에 들어갔다. 15년 전 사상 첫 총장 지휘권을 받아들인 김종빈 전 검찰총장은 지휘권 발동 이틀 만에 사표를 냈다. 추 장관이 수사 지휘권 공문을 공개한 후 대검은 "이날 중 공식적인 입장은 없을 것"이라며 윤 총장이 당장 사퇴 여부를 결정할 일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대검 기획조정부 등 간부들도 오후 내내 부별로 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각 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대해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외부와 연락을 차단한 채 말을 아끼고 있다.

윤 총장은 한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 추 장관이 사실상 지휘권을 발동했다는 논란이 제기됐을 때에도 즉각 대응을 삼갔다. 당일에 공식 입장 없이 대응 방안을 고민한 후 나흘 만에 대검 감찰부에서 조사하라는 추 장관의 지시를 일부 수용하는 식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그러나 이때는 추 장관의 지시가 합당한 지휘권 발동인 지 명확하지 않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앞두고 확전이 자제된 측면이 있었다. 추 장관은 이후 ""제 지시의 절반을 잘라 먹고 틀린 지휘를 했다. 장관 말을 들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지휘랍시고 꼬이게 만들었다"며 윤 총장의 '버티기 전략'을 매섭게 옥죄어 나갔다.

반부패정책협의회 이후에도 추 장관을 비롯해 여권의 사퇴 공세가 이어지면서 임면권자인 문 대통령도 사실상 윤 총장의 사퇴를 재가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면서 윤 총장의 입지가 더욱 좁아진 것도 사실이다.

검찰 조직 내에서 윤 총장에 대한 항명 사태가 표면화된 것도 윤 총장이 총장직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부분이다. '검언유착' 의혹 수사를 놓고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윤 총장의 수사지휘를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정권의 신임을 받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뒤에 버티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란 지적이 나온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윤 총장이 사퇴를 하지 않고 버티더라도 역할을 전혀 할 수 없는 식물총장을 남게 된다"며 "결국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나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반면 윤 총장이 쉽게 사퇴를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도 만만찮다. '헌법주의자'를 자처해온 윤 총장이 정권과 맞서게 된 일련의 수사에서 헌법이 규정한 범위를 벗어나는 권력의 남용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신념을 자신의 총장직을 건 싸움에서도 관철하려고 할 것이란 관측에서다.

윤 총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저는 헌법정신과 국민의 뜻에 따라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여러분을 응원하고, 여러분의 정당한 소신을 끝까지 지켜드리겠다"며 정치권의 외압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표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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