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반도체강국' 단잠에 취한 우리 깨웠다"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2020.06.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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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수출규제 1년]
③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 회장 인터뷰
"1년간 반도체산업 큰 변화, 국산화 중요성 자각"

편집자주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재료를 무기화하면서 기습적인 수출규제를 단행한 지 1년이 됐다. 사태 초반의 우려와 달리 일본의 강공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맞물려 일본이 추가 조치를 예고한 가운데 지난 1년의 성과와 한계를 되짚고 향후 대책을 모색해 본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이 26일 머니투데이와 만나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이 26일 머니투데이와 만나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아베는 잠자고 있는 우리를 깨운 스승입니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 회장(전 하이닉스반도체 전무·극동대 석좌교수)은 아베가 한국 반도체 산업을 바꿨다고 단언했다.

노 회장은 지난 26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아베 정부의 공격으로 1년 전 촉발된 반도체 수출규제는 '메모리 강국'이란 단잠에 취해있던 우리 기업, 정부, 국민들을 모두 변화시켰다"며 이같이 말했다.



노 회장은 "역사 속에서 보면 진정한 스승은 천사의 얼굴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며 때론 전쟁의 적장이나 역병의 모습으로 오기도 한다"며 "우리 반도체 산업에 일본이 공격할 급소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그로 인해 국산화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큰 교훈"이라고 말했다.

노 회장은 2018년 말 발족한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 수장을 맡아 '세계 반도체 1위 국가'라는 간판에 가려져 있는 후진적 소재·장비·부품산업 육성과 반도체 산업의 건강한 생태계 조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아베 정부 덕분에 지난 1년간 반도체 산업에 실질적 변화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노 회장은 "반도체 대기업들이 공장 가동 중단이라는 절체절명의 위험에 직면하면서 상당한 변화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소·부·장 업체들이 삼성·SK하이닉스로부터 새로운 기술 개발 제의나 제품 테스트 요청을 받는 사례가 늘어나는 등 구체적 변화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년간 한국 반도체 대기업이 일본 수출규제에 잘 대응했다는 평가도 내렸다. 그는 "결과적으로 지난 1년간 삼성과 SK는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해 슬기롭게 잘 대응했다고 본다"며 "30년 넘게 아무 비판 없이 일본에 소재·부품·장비를 90% 이상 의존해왔는데, 이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고 말했다.

노 회장은 정부에게도 후한 점수를 줬다. 그는 "소·부·장 업체들을 조사해보면 정부 정책이 피부에 와닿고, 실제 기회도 많아졌다는 평을 듣는다"며 "2년쯤 후에는 더 구체적인 정책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이 26일 머니투데이와 만나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이 26일 머니투데이와 만나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다만 노 회장은 소·부·장 다변화 및 국산화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며, 일본이 추가적인 수출 규제로 우리의 급소를 공격해올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며 경계를 풀지 말 것을 주문했다.

노 회장은 "일본이 지난해 내놓은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3종 규제는 극히 일부에 그친다"며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급소가 너무 많다"고 경고했다.

특히 장비 분야의 자립은 시급하다. 그는 "소재·부품과 달리 장비는 반도체 투자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80%로 높은데 일본·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향후 상대국이 무기화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라며 "장비 국산화가 까다롭고 긴 시간이 걸리지만 더욱 주력해서 해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고 아베 일본 정부가 지난해 7월 감행한 대한국 수출규제는 결과적으로 일본 기업에만 타격을 입힌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한일갈등이 지속되는 한 아베 정부가 이를 반복할 가능성은 없지 않다.

노 회장은 "애초에 일본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우리 경제의 급소를 건드린 것"이라며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제적 실패와 무관하게 규제를 더 확장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결국 기업은 제품의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우리 소·부·장 업체가 혁신을 통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 회장은 마지막으로 국내 소·부·장 업체가 경쟁력을 갖추고 생태계를 확장하려면 국내 대기업과 거래하면서도 자유로운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소·부·장 업체들이 기술개발을 해도 삼성·SK가 사주지 않으면 사장된다"며 "국내 시장은 규모가 매우 작기 때문에 세계로 뻗어나가 다양한 밸류체인에서 한국 기업들이 사업 기회를 창출하도록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이 26일 머니투데이와 만나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이 26일 머니투데이와 만나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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