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증권거래세 폐지, 큰 그림 그려야 한다

머니투데이 김익태 증권부장 2020.06.24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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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투자자들이요? 완전 봉이죠. 주식 투자가 무슨 죄도 아니고 이건 거의 징벌적 과세죠”

최근 주식 양도차익과세와 증권거래세 폐지가 이슈화되자 이런 한탄이 봇물 터지 듯 흘러나온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따라붙는 건 당연하지만, 정도가 심하다는 의미다.

주식 시장이 일찌감치 발달한 국가에선 증권거래세가 아예 없다.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못한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이런 과세 체제를 갖고는 증시로 자금을 끌어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주식양도차익과세 대신 손쉽게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는 증권거래세를 택했다.



늘 의문이었던 점은 왜 세금을 주식을 살 때가 아니라 팔 때 내는지였다. 예컨대 집을 살 때는 등기 등 행정 시스템 이용 비용으로 취·등록세를 낸다고 하지만, 주식을 팔 때 어떤 이용료 명목으로 세금을 걷어가는 건지 지금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특히 주식투자로 돈을 벌었으면 그나마 낫지, 손해 본 사람들은 쓰린 속을 움켜쥐며 세금까지 강제 징수당한다.

어쨌든 시간이 흘러 경제는 성장했고, 주식 시장도 발전했다. 그러자 아시아 각국은 후진적인 증권거래세에 대해 손을 보기 시작했다. 일시에 없애거나(대만) 점진적으로(일본) 과세 체계를 정비했다. 대만의 경우 그 후유증으로 주식 시장이 붕괴됐고, 일본은 이를 지켜본 후 연착륙을 시도했다. 양도차익 과세 폭을 넓히면서 단계적으로 증권거래세를 인하하다 결국 폐지했다.



우리는 어땠을까. 일본의 사례를 따르기로 방침을 정한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정부는 ‘양도차익 과세, 증권거래세 폐지’ 이 당위적인 체계를 실행하지 않았다. 아니 그게 합리적이란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늘 경제는 어렵고, 세수는 부족했으니까. 정부는 지난 20년간 대략 잡아 한 해 평균 6조원의 세금을 주식 시장에서 가져갔다. 주식을 주로 사고파는 것은 개미다. 기업이나 외국인은 매매 빈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결국 세수의 대부분을 개미들이 떠 안았다는 얘기가 된다.

막말로 경제가 어렵지 않거나 세수가 남아돌았던 때가 있었나. 그냥 앉아 있으면 또박또박 손쉽게 뭉칫돈이 들어오니 차일피일 과세 체계 정비를 미룬 것 아닌가. 그러면서 엉뚱하게 양도차익 과세만 건드렸다. 주식 투자자들은 양도세에 거래세까지 이중과세를 감내해야만 했다. 증권거래세 인하에 쌍심지 켜고 반대한 당국은 지난해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힘에 눌려 20년 만에 처음으로 거래세를 0.05%포인트 인하했다.

어쨌든 정부가 후진적인 과세 체계를 정비하겠다고 한다. 양도소득세 정비와 거래세 폐지, 합산과세와 손실이연, 분리과세 등 다양한 얘기가 시장에 흘러나오고 있다. 이번에 제대로 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주식 투자자들에 대한 부담 증가, 이에 따른 한국 증시 저평가 원인으로 지목되는 증권거래세가 없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세수 부족은 양도세로 메우면 된다.


정부는 특히 두루뭉슬하게 거래세 단계적 인하를 발표하지 말고 폐지 시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래야 투자자들이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지 않겠나. 시한 없이 거래세는 거래세대로 내고 양도세까지 내면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동학 개미’로 간만에 주식 붐이 일었다. 제로 금리와 부동산 규제로 앞으로 더욱 많은 자금이 증시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는 거래세 규모가 10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IMF 이후 증시 거래대금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면에 ‘바이 코리아'(Buy korea)’가 있었죠. 지금으로 치면 ‘동학개미운동’ 쯤 될 겁니다. 결국은 어땠나요. 개미들이 거래세를 국가에 갖다 바친 꼴이 됐죠” 최근 만난 한 증권사 CEO(최고경영자)는 간만에 대거 유입된 자금이 자본시장을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불합리한 증권거래세가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부는 기업으로부터 창출된다. 증시가 활성화돼야 기업들도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욕구가 더 생길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업이 성장하면 생각지 않은 법인세가 들어오고, 고용 창출을 통한 소득세까지 덤으로 거둬들일 수 있다. 정부는 당장 아쉽다고 눈 앞의 세수에 급급하지 말고 넓게 보고 통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광화문]증권거래세 폐지, 큰 그림 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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