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시장 경제 체제에 비해 국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커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시장 불균형과 부조리를 부추기는 탐욕적 금융의 폐해를 미리 예방하는 데도 관치금융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설명도 따랐다. 진보적 이념과 맥이 닿는 부분이다.
지금처럼 코로나19로 자영업자 등 서민경제가 위협받는 시기일수록 관치금융(물론 금융당국은 인정하지 않지만) '순기능'은 확실히 부각 된다. 서민 대출 만기 연장을 시작으로 은행별 소상공인 대출 할당 등이 그것이다. 이를 나쁘다고 말하는 이는 거의 없다.
대법원에서 이미 끝난 일이기 때문에 배상 근거가 없어 대부분 은행들은 배임을 명분으로 권고안을 거부했다.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사건을 다루는 방식도 그렇다. 손태승 전 우리은행장(현 우리금융 회장)과 함영주 전 하나은행장(현 하나금융 부회장)을 중징계 처분한 사건이다. 퇴직 후 3년간 금융사 재취업을 금지한, 사실상 금융권 퇴출 명령이다. 이들이 내부통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인데 은행장이 내부통제 최종 책임자인지가 불명확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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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당사자들은 금감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일부 승소하면서 본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상장 금융사를 향해 배당을 자제하라고 권고한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연말 연초가 아닌데 몇 번에 걸쳐 이런 식의 주문을 한 건 누가 봐도 하나금융을 향한 것이다. 유일하게 중간배당을 실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금감원 주문의 근거는 이렇다. 배당액은 자기자본에서 고스란히 감액되고 이는 BIS(국제결제은행) 비율을 축소하는 요인이 된다. 서민 대출 재원이 그만큼 빠져나가는 셈이다.
이를 존중한다고 해도 지난 15년을 지켜온 중간배당 전통을 무시하는 건 주식회사 입장에서 쉬운 게 아니다. 주주들과 관계를 생각해 실적과 리스크 관리 모두를 감안, 배당액을 줄여 집행하면 될 일이다. 정부가 특정 회사 주주 이익까지 챙겨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해도 되는 건 아니다.
한 은행 고위 관계자는 "최근 들어 벌어지는 금융당국과 은행들의 잇단 마찰은 과거 같았으면 마찰 단계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상식적이기 않은 '갑질'에 대해 철퇴를 가하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무시한 채 당국이 아직 저 세상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점에서 좋은 관치와 나쁜 관치를 따지는 건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다. 구제금융 속 보너스 잔치를 방관하지 않는 정부만큼이나 아무 때나 칼을 뽑는 정부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오늘날 세상은 상식과 비상식, 합법과 불법, 합리와 비합리로 구분될 뿐이다. 갑의 행위가 법의 틀 안에서 상식에 기반하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을'의 반란을 각오해야 한다.
새로운 질서를 거부하며 허구한 날 '라떼는 말이야…'만 외쳤다가는 '꼰대' 취급을 면치 못한다. 여기서 권력이 있고 없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건 이들이 설 땅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