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지구를 지배한 원동력…‘지능’이 아닌 ‘번식력’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20.06.1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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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절멸의 인류사’…인류의 시작부터 “살아남는 것이 강했다”

인류가 지구를 지배한 원동력…‘지능’이 아닌 ‘번식력’


세상살이가 힘들어질 때마다 푸념처럼, 또는 마지막 생존 조건의 함수처럼 내뱉는 문장이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실제 인류 역사는 이 말처럼 움직였다.

가장 간단한 예는 인류 조상에서 찾을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골격이 크고 단단한 체격을 지녔다. 뇌의 크기도 더 컸다. 하지만 진화 과정에서 멸종한 것은 네안데르탈인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힘은 약했지만 행동 범위가 넓었고 사냥 기술도 더 뛰어났다. 게다가 ‘대면 싸움’이 일어날 때 호모 사피엔스는 멀찌감치 달아나 투창기를 이용해 멀리서 공격하는 방식을 애용했다. 또 사냥감을 선점하는 방식으로 네안데르탈인의 생활 영역을 줄여나갔다.

불리한 신체조건으로 살아남는 것처럼 가난해서 생존을 유지한 경우도 있다. 19세기 지브롤터 생활 환경은 열악했다. 위생 상태가 안 좋았고 특히 마실 물이 부족했다. 부자들은 걱정 없었다. 우물을 파거나 저수지에 빗물을 받아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더러운 물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의 사망률이 더 높았다. 그런데 어느 해 심각한 가뭄이 들자 상황이 역전됐다. 부자들은 대부분 목숨을 잃고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 살아남은 것이다.

항상 깨끗한 물을 마시며 강한 개체와 약한 개체의 비율을 비슷하게 유지하던 부자들은 가뭄으로 더러운 물을 마실 수밖에 없게 되자 많은 수가 목숨을 잃었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가뭄이 들기 전부터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약한 개체는 도태됐기 때문에 더러운 물에도 생존할 수 있었다.

지구의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인류는 700만 년 전 약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남았고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인류가 됐다.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유약함이다. 저자는 “우리 조상은 약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했다.


송곳니가 무기인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인류는 크기가 작아지는 쪽으로 진화했다. 이 때문에 더 이상 암컷을 두고 수컷끼리 싸울 일이 없어졌고 일부일처 문화를 만드는 데도 일조했다.

포유류가 무성한 털로 뒤덮여 있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인류에게선 서서히 체모가 사라졌다. 멀리 이동하기 위해서다. 털이 무성한 개체는 멀리 이동하며 땀을 흘리면 쉽게 증발하지 않고 이로 인해 체온을 낮출 수 없어 사망한다. 털 많은 개체가 오래 걷거나 달릴 수 없는 이유다.

인류는 단거리에는 취약했지만, 다른 동물보다 멀리까지 걷거나 달릴 수 있어 먹을 것을 더 많이 구할 수 있었고 경쟁자보다 먼저 먹이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인류는 더 멀리에 있는 음식을 더 빨리 차지하기 위해 체모를 포기한 셈이다.

저자는 “인류는 생존과 번식의 문제를 위해 무기 대신 평화를 선택하는 쪽으로 진화했다”며 “무엇보다 우리의 지능이 뛰어나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번식력으로 자손의 규모를 확대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절멸의 인류사=사라시나 이사오 지음. 이경덕 옮김. 부키 펴냄. 272쪽/1만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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