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터지고 안들리는데'…끝까지 011 쓴다는 사람들

머니투데이 조성훈 기자 2020.06.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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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의 2G시절 브랜드인 스피드 011광고/사진=SK텔레콤SK텔레콤의 2G시절 브랜드인 스피드 011광고/사진=SK텔레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2일 SK텔레콤 (51,800원 ▼200 -0.38%)의 2G 서비스 폐지 신청을 승인함에 따라 011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011로 대표되는 01X서비스는 내년 6월까지만 유지되고 이후 010으로 바뀐다. 정부가 01X 번호를 2G 서비스에서만 허용해서다. 그러나 01X번호 사용자들은 여전히 기존 번호를 지키겠다며 반발한다. 실제 네이버 카페 '010통합반대운동본부'에는 이날 2G 서비스 종료 승인 소식이 전해지자 정부를 성토하는 글들이 쇄도하고 있다.

모임 회원들은 "누구를 위한 과기부인가" "우리는 보상금이나 최신폰을 바라는게 아니다 2G망도 아닌 번호만 쓰게해달라는 것인데 이게 안되나" "과기정통부를 상대로 승인취소 가처분소송을 내야한다"는 등의 불만을 쏟아냈다.



보상도 필요없다 번호만 쓰게해달라는데… 분개하는 01X사용자들
앞서 지난해 초 SK텔레콤이 연내(2019년) 2G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01X번호 이용자들의 여론이 들끓었다. 이들 상당수는 20~30년이상 011과 016, 017, 018, 019번호를 유지해온 '골수'팬들이다.

이태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네트워크정책실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SKT 2G종료 승인 신청에 대한 심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사진=머니S 임한별 기자이태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네트워크정책실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SKT 2G종료 승인 신청에 대한 심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사진=머니S 임한별 기자


한 011번호 사용자는 "96년부터 25년간 사용해온 번호인데 예전 직장 동료와 친구, 지인들도 이 번호로 알고 있어 연락이 끊어진 이들이 종종 전화를 한다. 그만큼 소중한 번호인데 보상도 필요없고 단지 번호만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또다른 사용자는 "한국이동통신 시절부터 011을 사용했고 사업차 만난 국내외 거래처 사람들도 이 번호로 알고 있어 4~5년만에도 연락이온다. 사업을 위해서인데 제발 지금 번호를 계속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포털사이트 아이디나 은행 계좌번호를 아예 01X번호로 써온 이들도 있다.

한 01X 사용자는 "일부에서 우리를 '알박기'라거나 '꼰데', '틀딱충'이라고 비판하는데 부분적인 사례로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통화품질 안좋고 재난문자 안돼도 감내...정부는 010 통합에 "예외없다"
물론 과거 이통사들이 2G 당시 가입자 유치를 위해 제시한 망내 또는 가족간 무료통화와 할인, 각종 음악서비스 등 부가서비스를 유지하려거나 더 많은 보상금을 염두에둔 사용자도 없지않다. 하지만 대부분 01X 장기 사용자들은 전화번호를 자신의 분신과 같이, 마치 주민등록번호처럼 여긴다.


이들은 2G 단말기가 이미 10여년전 단종돼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자 해외에서 공동구매하고 AS가 안되면 자비로 고쳐쓰기도 한다. 이통사 2G장비 노후화로 통화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기술적 문제로 최근 코로나 사태 이후 재난상황을 알리는 재난문자도 받지 못하지만 그정도 불편은 기꺼이 감내한다. 통신사들이 공짜폰이나 보상안을 제시해도 요지부동이다.

이들은 01X 번호를 유지하면서도 3G이상 스마트폰을 쓰게해달라는 입장이다. 반면 정부는 010으로 번호통합에 예외가 없음을 분명히했다. 이미 10여년전 확정된 번호정책상 01X번호는 2G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국가의 유한한 자원인 번호체계의 효율성과 정부정책의 일관성, 현 010 사용자들과의 형평성을 따져야한다는 것이다. 이에 010통합반대운동본부는 SK텔레콤을 상대로 번호이동 청구 민사소송을 진행중이며 헌법소원도 추진하고 있다.

네이버 카페 '010통합반대운동본부' 박상보 회장은 "우리의 요구는 보상이 아니라 쓰던 번호를 계속 쓰게 해 달라는 것 뿐"이라며 "민사소송과 함께 대법원 판결까지도 구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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