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외환업무센터 제재법규심사 담당자가 AI Sanction 심사 자동화 시스템을 활용한 선적서류 심사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5일 찾은 Sanction팀 직원들의 책상 위에선 서류 뭉텅이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직원이 사무실 한 켠에 마련된 스캐너를 이용해 문서를 스캔하고 있을 뿐이었다.
AI에게 맡기니 10분에 500장도 거뜬…'서류 지옥' 탈출
무엇보다 수출입 선적서류는 전세계에서 발행돼 은행으로 전달되는데 발행기관마다 사용하는 양식이 제각각 다르다. 검사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중간중간 국제 제재국가나 제재기업과 관련된 내용은 없는지 하나하나 조회까지 해야 하는 그야말로 '서류 지옥'의 나날이었다.
김상아 우리은행 외환업무센터 과장은 "처음 적응기간에는 직원들이 '뭐지 뭐지'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제는 일이 훨씬 더 편해졌고, 업무 종료시점도 빨라졌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추가 검증이나 심층 심사가 필요한 부분에 인력을 집중하면서 업무 효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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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외환업무센터 AI Sanction 심사 자동화 시스템의 서류 분석 및 심사를 위해 관련 서류를 스캔하는 모습
김 과장은 "기존에 20개 정도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확인하는데 그쳤지만 AI가 도입된 이후에는 최대 90개 항목까지 걸러내는 게 가능해졌다"며 "AI가 1차로 스크린을 한 뒤 추가로 직원들이 검증과 심사를 진행하다 보니 기존보다 심사 수준이 4~5배는 강화됐다"고 말했다.
권광석 행장 "은행 본점 업무, AI로 전환하라"외환업무센터 뿐만 아니라 우리은행은 최근 전사적으로 직원 업무에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최종 목표는 'AI 디지털은행'으로의 전환이다. 이런 분위기는 권광석 우리은행장 취임 이후 더 가속화됐다.
권 행장은 지난 3월 말 취임 후 한 회의에서 본점 임직원들에게 미션을 내렸다. 은행 본점의 모든 사업부문이 해오고 있는 기존 업무 중에서 AI(인공지능)로 전환 가능한 게 무엇이 있는지 발굴해달라는 요구였다.
권 행장은 필수불가결한 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 프로세스를 AI로 바꿔 우리은행 본점을 사실상 'AI 은행'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권 행장은 "은행 업무의 AI전환과 디지털혁신은 디지털금융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모든 임직원들에게 디지털혁신을 주문하고 있다.
이에 외환과 여신, 부동산, 자산관리 등 우리은행 본점의 모든 사업부문은 업무 AI화에 전념하고 있다. 오픈뱅킹 시행 등으로 은행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해 핀테크(금융기술) 업체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외환과 기업금융 등 은행 고유영역에서의 디지털화를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디지털전환에 그룹 미래 달렸다"우리은행이 'AI 디지털은행'으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는 건 조직개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권 최초로 디지털금융그룹을 BIB(Bank In Bank)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금융그룹에 인사와 예산 등을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전권을 줬다. 비대면 전용 상품 금리나 한도도 디지털금융그룹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됐다.
업무 환경도 기존과는 다르다. 우리은행 본점 건너편 우리금융남산타워 20~22층에 입주한 디지털금융그룹 사무실은 흡사 핀테크(금융기술) 회사를 연상케 한다. 통유리로 된 사무실 남쪽으로는 남산 전경이, 북쪽으로는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청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입은 직원들이 파티션이 없는 벌집 모양의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는 모습은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던 흔한 은행원과는 차이가 있었다.
우리은행 디지털금융그룹 관계자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도록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다"며 "은행만이 아니라 전 계열사를 아우르는 디지털전환을 진두지휘하는 그룹의 '미래 전략 기지'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전환, 국내만의 문제 NO…해외진출에도"우리은행의 디지털전환은 국내로 한정되지 않는다. 이미 진출해있거나 앞으로 진출할 국가에 대해서도 디지털금융을 어떻게 활용할지 연구하고 있다. 단순히 현지에서 은행앱을 고도화하는 수준을 넘어 일부 국가에선 전통적인 해외 진출 방식을 깬다는 목표다.
가령 현재 은행이 해외진출을 하려면 라이센스 취득과 자본력이 필수적이라 현지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까지 제약이 상당하다. 이에 우리은행은 모바일 보급률이 높고 인구가 많은 동남아 지역에서 디지털을 활용한 새로운 해외진출 모델을 만들려 하고 있다.
황규순 우리금융 글로벌총괄 겸 우리은행 글로벌그룹 상무는 "그야말로 '기-승-전-디지털'의 시대"라며 "아예 핀테크업으로 진출할 국가가 있을지, 아니면 현지에서 인수할 만한 핀테크 업체가 있는지 등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COVID-19) 국면이 지나고 나면 구체화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