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배임' 우려까지…서울시의 송현동 땅 '일방통행'

머니투데이 이소은 기자, 주명호 기자 2020.05.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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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동 대한항공 부지. /사진제공=서울시송현동 대한항공 부지. /사진제공=서울시


'헐값 논란' 대한항공 송현동 땅값, 공시가 감안하면 5000억 육박?
서울시가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를 헐값에 매입하려고 한다'는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공원으로 지정하겠다는 계획이 알려진 지난 3월 이전 기준으로 감정평가를 받고 적정 수준의 매입가격을 지불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는 해당 부지 공시지가인 3100억원 보다는 높은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

공시가격과 시세 차이가 평균 35% 차이가 난다는 점을 감안시 5000억원에 육박할 수 있지만 6000억원 이상을 희망하는 대한항공 측 시각과는 여전히 간극이 크다.



◇쟁점1, 공정한 감정평가 가능?.."감정평가사, 서울시 1인 대한항공 1인 추천"

서울시는 지난 29일 해명자료를 내고 "대한항공 측에 구체적인 매입금액을 제안한 사실이 없으며 공정한 감정평가를 통해 적정 가격에 매입할 계획임을 전달했다"며 "예산 편성을 위한 사전절차 추진 중으로 부지 매입비를 예산 책정한 바 없다"고 설명했다.



감정평가는 2인 이상의 감정평가업자에 의뢰해 해당 토지의 공시지가, 주변시세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적정 가격을 책정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공정한 감정평가를 위해 서울시에서 추천한 1인과 대한항공이 추천한 1인을 포함해 감정 평가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감정평가를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할지도 쟁점이다. 송현동 부지를 공원으로 지정한 후 가치를 매긴다면 가격이 크게 떨어질 수 있어서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에 따르면 보상액의 산정은 해당 공익사업으로 인해 토지 등의 가격이 변동됐을 때 이를 고려하지 않도록 정해져있다.

서울시 측은 "송현동 부지의 감정평가 역시 공원 결정 이전의 토지 가치를 평가해 가격을 책정한다"고 말했다. 공원 조성 계획은 지난 3월 알려진 만큼 그 이전 시점 기준으로 감정평가를 하겠다는 뜻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대한항공에 1조 2000억원의 자금을 신규 지원하기로 결정한 24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중구 대한항공 서소문사옥 앞을 지나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대한항공에 1조 2000억원의 자금을 신규 지원하기로 결정한 24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중구 대한항공 서소문사옥 앞을 지나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쟁점2. 땅값 얼마나 될까? 평균 현실화율 적용 시, 4770억원 추산

통상 감정평가액, 실거래가 등은 공시지가 보다 높다. 송현동 부지 3만6642㎡의 공시지가가 3100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서울시의 매입가격은 이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올해 국토부에서 발표한 전체 표준지공시지(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가 현실화율은 65.5%다. 이를 단순 적용하면 이 부지의 실제 가격은 약 4770억원으로 추정된다. 현실화율을 감안한 가격이 5000억원에 육박하긴 하지만 부동산 업계 일각에선 5000억원 이상으로 보고 있고, 대한항공 희망가격은 6000억원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시 시각차는 여전히 크다고 볼 수 있다.

◇쟁점 3. "안 팔겠다"는데 서울시 강제수용까지 갈까

전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이 부지를 그냥 가지고 있겠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서울시는 '최악'의 경우 강제수용도 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서울시는 최대한 강제수용을 피하고 협의 매수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시 공공개발추진반 관계자는 "토지보상법에 강제수용할 수 있는 조항도 있지만 최근에는 협의해서 보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앞서 2008년 3만6642㎡ 규모의 송현동 부지를 삼성생명으로부터 2900억원에 사들였다. 이후 한옥호텔 등 복합문화단지 조성을 추진했으나 학교 인근에는 호텔 신축을 허용할 수 없다는 법 규정에 막혀 무산됐다.

서울시는 지난 27일 열린 도시건축공동위원회(이하 도건위)에서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 공원 결정(안) 자문을 상정했다. 북촌지구단위계획 변경을 위한 사전 절차로 결정안에는 이 부지를 도시계획시설상 '문화공원'으로 바꾸는 내용이 담겼다.

이소은 기자

헐값 매각? 배임 논란 불러올수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 사진제공=한진그룹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 사진제공=한진그룹
서울시의 해명에도 적정가격 수준과 매입 능력에 여전히 의문부호가 남는다. 대한항공은 최초 매입가에 지금껏 발생한 비용 등을 감안하면 감정평가액 수준으로만 부지를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당장 자금조달이 급한 만큼 서울시가 매입대금을 신속히 지불할지에 대해서도 우려가 크다.

◇"갖고있겠다"는 조원태..헐값에 넘기면 '배임논란'

실제 감정가로 추산되는 4770억원에 대해 대한항공은 최종 매각가격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방침을 세웠다.

대한항공은 당초 고급 한옥호텔 및 복합문화단지 개발을 추진할 목적으로 2008년 6월 2900억원에 송현동 부지를 매입했다. 하지만 규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12년 동안 부지를 방치해두어야만 했다. 그간 발생한 금융비용 및 세금부담금만 해도 수천억원에 이른다.

대한항공이 송현동 부지 가격을 최소 6000억원 수준으로 봤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진그룹은 이 가격대를 전제로 지난해 2월 발표된 '비전2023'에서 부지 매각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안을 발표했다. 충분한 매입가를 못받고 부지를 넘기면 배임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헐값에 파느니 "계속 갖고 있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은 것도 같은 의미로 풀이된다.

서울시가 대한항공이 원하는 가격대를 맞춘다고 해도 당장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도 문제다. 당장 자본확충이 시급한 대한항공으로서는 매입가를 제때 받아야 하지만 서울시가 그만한 예산능력이 있는지는 미지수다.

앞서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대한항공에 1조2000억원의 금융지원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2021년말까지 2조원의 자본확충을 요구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회사의 사활이 걸린 상황에서 정상화를 위한 자구책으로 최대한 빨리 (부지를) 매각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서울시가 곧바로 자금을 준다고 보장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적정가 맞지 않는다" 거절했는데 일방적 공원화 추진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대한항공에 송현동 부지 공원화 및 매입의사를 타진해왔다. 대한항공은 서울시가 제시하는 적정가격이 맞지 않을 뿐더러 향후 예산확보를 통해 매입대금을 맞추겠다는 방식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판단해 거절의사를 전달했다.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의 공원화를 추진하면서 현재 대한항공이 진행 중인 부지 매각도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워졌다. 공원 부지로 지정되면 건물 건축이 불가능해지는 만큼 해당 부지를 매입할 이유가 사실상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전부터 이같은 의사를 밝혀 왔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서울시가 대한항공의 매각 시도를 사실상 무산시킨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원화 계획을 밝힌 것은 그 자체로 다른쪽에서 매입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곳에 매각하는게 당연한데 공익을 핑계로 이를 가로막는게 적합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주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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