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 /사진제공=케이옥션
훈민정음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당시 기와집 한 채 값인 1000원에 10배에 해당하는 1만원을 주고 사 ‘훈민정음’의 정당한 가치를 보존하려 했고, 일본 거상으로부터 고려 최고 상감청자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도 거금 2만원을 들여 구입했다.
한국 문화재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구원투수처럼 등판해 우리 문화를 지킨 간송미술관이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 두 점을 내놓는 사상 초유의 일을 단행했다. 1938년 서울 성북동에 보화각(71년 간송미술관으로 개명)으로 문을 연 지 82년 만의 일이다.
금동여래입상은 8세기 통일신라 조각 양식의 전환기적 양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양식상으로 매우 중요한 미술사적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지금까지 유일한 신라지역 출토 불상인 금동보살입상은 백제 지역에서 크게 유행한 봉보주보살상과 일본 초기 불상이 형성한 교류 속에 영향을 끼친 특별한 가치의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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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은 일제강점기 유출될 뻔한 서화, 도자기, 고서 등 국보급 문화재 5000여 점을 수집하며 “문화를 통해 나라를 지킨다”는 문화보국 정신을 확립했다. 전 재산을 털어 문화재를 지켰지만, 간송 사후엔 빚쟁이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간송이 생전에 자기만 바라보고 예술활동을 하던 예술인과 단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빚까지 내 도와줬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그 빚은 (지금의) 종로4가 광장시장 맞은편에 위치한 집을 팔아 해결했다.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 /사진제공=케이옥션
간송재단 한 관계자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면서 “그나마 자존심을 지킨 건 간송의 대표적 수집품이 서화나 도자, 고서인데 이를 내놓지 않고 4건밖에 없는 불상을 경매에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간송미술관의 존폐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이번 일이 우리 사회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지 모른다”며 “우리 민족 유산 전체로 보면 정부든 민간이든 살려낸다는 공감대가 있으면 (간송미술관이) 살아낼 것이고, 아니면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화재 관계자들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르겠다”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문화재 관계자는 “신관 등을 새로 추진하면서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보물을 내놓을 정도로 심각한지 몰랐다”며 “간송미술관의 문제는 단순히 개인 차원을 넘어 국가가 주시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