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피해막는 건 좋은데, 카톡까지 감시하라고?

머니투데이 조성훈 기자 2020.04.2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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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자가 모든 대화방 다 열어보란 말"…범죄는 해외 서비스로 옮겼는데 韓 사업자만 겨누는 규제

“디지털성범죄물인지 그냥 음란물인지 누가, 어떻게 구분합니까, 결국 사업자가 알아서 이용자들의 카카오톡 내용까지 일일이 들여다보고 감시하라는 말인데...”

정부가 23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디지털성범죄 근절대책’을 내놓자 인터넷 업계가 뒤숭숭하다.



불법 촬영물 등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을 차단하자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성 범죄물들에 대한 포괄적 기술 조치 의무가 자칫 서비스 이용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감시로 이어져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정부 규제의 칼끝이 현실적으로 국내 인터넷 기업들만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해외 인터넷 서비스들과의 역차별 우려도 나오고 있다.


취지 공감하지만, 디지털성범죄물 누가 어떻게 파악? 빅브라더 만드나
이날 발표된 정부의 디지털성범죄 근절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인터넷 사업자가 즉시 삭제해야 할 성범죄물을 종전 불법촬영물에서 불법 편집물(딥페이크), 아동청소년 성착쥐물까지 포함한 디지털성범죄물 전반으로 넓혔다. 특히 웹하드 업체에만 적용하던 성범죄물 유통방지 목적의 삭제와 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의무를 포털, 메신저,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 등 모든 인터넷 사업자(부가통신사업자)로 확대했다. 이를 위반하면 앞으로 징벌적 과징금도 부과한다. 현행 2000만원 이하 과태료에서 처벌 수위를 대폭 높이기로 한 것.



이에 대해 당장 인터넷 업계는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과잉규제로 국내 사업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며 부작용만 초래한다고 반발했다.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운영자 조주빈을 도와 대화방 운영 및 관리에 관여한 공범 '부따' 강훈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0.4.17/뉴스1(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운영자 조주빈을 도와 대화방 운영 및 관리에 관여한 공범 '부따' 강훈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0.4.17/뉴스1


자료=국무조정실자료=국무조정실
인기협 관계자는 "모든 인터넷사업자에게 디지털성범죄물 차단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처벌키로 하는 것은 플랫폼 사업자에게 이용자인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들여다 보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면서 "특정 동영상이 디지털성범죄물인지 여부는 기술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워 결국은 사람이 일일이 살펴봐야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카카오톡에서 개개인이 주고받은 특정 영상이 디지털성범죄물에 해당하는 지를 카카오 관계자가 직접 들여다보는 상황까지도 배제하기 어려운 셈이다. 이는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자칫 2014년처럼 카카오톡 사찰논란으로 이어져 텔레그램 등으로 이용자가 이탈하면 디지털성범죄물 유통이 도리어 조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화방 모니터링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소지…해외 사업자는 '사각지대'
사단법인 오픈넷 역시 "디지털 성범죄물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플랫폼상 오가는 통신내용 등 모든 정보를 모니터링해야하고 대화방 모니터링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소지도 있다"면서 "기업차원에서도 엄청난 자원을 투자해야하는데 스타트업같은 영세한 곳은 아예 플래폼 사업을 포기해야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디지털성범죄물만 100% 골라내는 기술이 현존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현행법상 동영상 차단 기술은 '아무개양 영상'같은 키워드 필터링이나 동영상의 해시값(Hash, 데이터 위변조를 막는 특정수열)기반 필터링인데 이 역시 불완전하다. 해시값 필터링은 성범죄물로 판단된 영상의 해시값을 데이터베이스에 반영해 동일 영상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하루에도 무수히 쏟아지는 수많은 영상을 일일이 다 확인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해외사업자에대해서는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상황에서 이같은 규제는 국내외 사업자간 형평성 문제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이번 n번방 사건에서도 성범죄물 유포의 통로로 활용된 해외메신저 텔레그램의 이용자 정보에 대해 수사당국은 아무런 협조를 받지 못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해외업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네이버와 카카오 등 만만한 국내 인터넷기업들에게만 족쇄를 채우는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방통위, "성범죄물 판단 어려움 있어...사업자 의견 청취"
오픈넷도 "실효성이 낮고 이용자의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가 있는 모니터링이나 기술적 조치보다는 디지털성범죄 신고시 바로 차단 삭제하도록 자율규제를 장려하고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를 빨리 찾아내 구제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조언했다.

이에대해 방송통신위원회는 "차단이나 필터링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의 경우에 해당하며 사인간 대화를 감시하라는 것까지는 아니다"라면서 "사업자가 디지털성범죄물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어 사업자 의견을 충분히 청취한 뒤 법안검토에 나설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대형사업자들은 현재도 차단이 잘 이뤄지지만 군소 사업자는 여력이 안되거나 일부러 사업적 이득을 위해 방치하는 측면도 있어 사업들의 의무준수를 강화하는 취지이며 역외적용 문제도 정보통신망법상 규정을 명확히하는 차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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