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곳 중 2곳만 'U턴'…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기업들

머니투데이 세종=민동훈 기자, 심재현 기자, 권혜민 기자, 김훈남 기자, 김수현 기자 2020.04.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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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 '메이드 인 코리아'] 1류 국가에서 만드는 1류 상품의 경쟁력

편집자주 포스트 코로나(Post Covid-19) 시대 달라진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정책은 ‘제조업 리쇼어링’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주요 무역·투자 상대국의 국경봉쇄가 잇따르면서 우리 기업이 고전하고 있다. 소비시장과 저임금 인력을 찾아 해외로 나간 기업들의 취약점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제조업 생태계는 대기업과 그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짜인다. 대기업을 돌아오게 하는 과감한 정책전환과 사회적 문화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베트남 수출 25% 맡는데도 '문전박대'…포스트 코로나, U턴이 답이다
10곳 중 2곳만 'U턴'…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기업들


"엔지니어를 못 보내면 공장이 멈춥니다."

지난달 초 삼성그룹이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 긴급요청을 타전했다. 코로나19(COVID-19) 사태로 외국인 입국을 제한한 베트남 정부를 설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가 베트남 정부의 봉쇄 조치로 베트남 현지 생산라인의 개조작업을 담당할 기술진을 보내지 못해 발을 굴렀다.



삼성이 베트남 최대 외국인 투자자이자 베트남 수출의 25%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코로나19라는 세계적 대재난 앞에서 베트남 정부의 후순위 고려사항으로 밀렸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공조해 일부 인력을 보내면서 급한 불을 껐지만 베트남 사례는 코로나19에 따른 각국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자국 중심으로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하노이 북부 박닌성에 위치한 삼성전자 스마트폰 생산 공장. /사진제공=삼성전자베트남 하노이 북부 박닌성에 위치한 삼성전자 스마트폰 생산 공장. /사진제공=삼성전자


국경 봉쇄는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새로운 표준)이다.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시행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앞에서 더 이상 공허한 '세계화' 논리는 없다. 철저히 자국 이익을 위한 집중과 선택이 있을 뿐이다. 자국 산업을 지키고 자국 국민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데 전세계 국가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코로나19가 부른 신(新)고립주의 확산 속에서 기업 '리쇼어링'(기업의 모국 복귀, Re-Shoring)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이유다. 특히 대기업의 귀환은 중소·중견기업의 산발적 유턴과는 양과 질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포스트 코로나' 신고립주의 전쟁터


10곳 중 2곳만 'U턴'…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기업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오프쇼어링(Off-Shoring, 해외이전)에 기반한 글로벌 분업구조 붕괴를 앞당겼다고 분석한다. 올 연말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도 연일 "미국 제조업을 재건하겠다"며 해외로 나간 기업들의 복귀를 압박한다. 법인세 최고 세율을 35%에서 21%로 낮추고 각종 인센티브까지 제시했다.

일본도 리쇼어링에 사활을 걸고 있다. 법인세 인하는 기본이고 도쿄·오사카 등 대도시로 돌아오는 기업에는 규제 혜택과 연구개발비까지 지원한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완성차업체와 캐논 같은 전자업체가 일본으로 공장을 옮겼다.

한국도 2013년 12월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유턴법)'을 시행하며 유턴을 장려했다. 그러나 수치로 본 결과는 처참하다. 2014년부터 올해 3월까지 9년여동안 리쇼어링 기업은 72곳에 그친다. 이마저 계획 번복이나 폐업 등을 감안하면 68개사에 그친다. 대기업은 현대모비스 단 1곳에 불과하다. 300인 이상 중견기업으로 범위를 넓혀도 리쇼어링 기업수는 2016년 1개사, 지난해 4개사, 올해 2개사 등 총 7개사뿐이다.

대기업 투심 돌릴 파격적 인센티브를 허하라

10곳 중 2곳만 'U턴'…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기업들


더 파격적인 대우와 지원으로 이제 대기업 리쇼어링을 유도해야 한다. 국내 경제에 미칠 막대한 경제효과를 생각하면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고 금기시할 필요가 없다. 지난해 5개 협력사와 함께 울산으로 돌아온 현대모비스는 3300억원을 투자해 최대 1만명 이상의 직·간접 고용을 유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에서 설움을 당하고 있는 배터리 3사(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가 국내로 복귀한다면 그 경제적 효과는 천문학적일 것으로 추산된다. 당장 중국내 모든 생산기지의 문을 닫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방식이 아니어도 된다. 앞으로 있을 추가 투자를 국내로 끌어올 수만 있어도 리쇼어링 정책은 성공적이다.

무엇보다 피부에 와 닿는 지원책이 필수라는 지적이다. 법인세율 인하 같은 세제지원은 물론 수도권으로는 눈길도 못 돌리게 하는 입지 규제도 풀어야 한다. 대기업 노조의 반발은 스마트팩토리 등 4차 산업혁명의 기술력으로 대응하면 된다. 대기업의 수많은 협력사와 내수시장 확장성 등을 감안하면 이 같은 리쇼어링만으로 중소·중견기업 수십 개사가 생기는 것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돌아오라" 불러도 응답없다…처참한 투자환경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28일 울산 북구 이화산업단지에서 열린 현대모비스 친환경 차 부품 울산공장 기공식 참석에 앞서 코나 EV 배터리 시스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28일 울산 북구 이화산업단지에서 열린 현대모비스 친환경 차 부품 울산공장 기공식 참석에 앞서 코나 EV 배터리 시스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지금까지 한국은 '투자처'로 매력은 거의 없었다. 정부에 따르면 2018년 한국 자본의 해외 직접투자는 497억달러(약 58조원)인 반면 외국 자본의 국내 투자는 172억달러(20조원)에 그쳤다. 한국기업은 밖으로 나가는데 그 자리를 메워줄 외국계 기업도 많지 않다.

좀 더 실리적이고 절실한 접근법이 요구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일 제4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신뢰를 살려 핵심 기업의 국내 유턴, 투자유치 등을 활성화하는 계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국기업 리쇼어링. 한국기업 유턴. 이제 생각이 아닌 행동으로 움직일 때다.

민동훈, 심재현 기자

"매력 넘치는 한국으로"…대기업 투심 돌려라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울산 이화산업단지에서 열린 현대모비스 친환경차 부품 울산공장 기공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정부는 앞으로도 국내 복귀를 위해 투자하는 기업들에게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제공) 2019.8.28/사진=뉴스1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울산 이화산업단지에서 열린 현대모비스 친환경차 부품 울산공장 기공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정부는 앞으로도 국내 복귀를 위해 투자하는 기업들에게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제공) 2019.8.28/사진=뉴스1
“어려운 시기에 유망한 기업들의 국내 유턴은 우리 경제에 희망을 준다.”

지난해 8월 ‘집 나갔던’ 현대모비스가 돌아왔다. 맏형이 중국 공장 2곳을 닫고 울산에 새 공장을 열자 아우 격인 5개 중소·중견 현대차 협력업체도 함께 한국행을 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공식에 직접 참석해 국내 최초 대기업 유턴 사례를 치켜세웠다. “국내 복귀를 위해 투자하는 기업들에게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내겠다”며 전폭 지원도 약속했다.

대통령의 말이 무색하게 정부의 유턴 유도정책은 대기업에 한해선 소극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2013년 제정된 유턴기업 지원법(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은 중소·중견기업에 초점을 맞췄다. 성과가 미진하자 시행 5년 만인 2018년 ‘유턴기업 종합지원대책’을 내놓았다. 보조금과 세제감면 등 대기업에 대한 추가 인센티브가 핵심이다.

국내복귀기업 유형별 지원사항./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국내복귀기업 유형별 지원사항./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하지만 중소·중견기업이 받는 다채로운 세제·인력·금융 혜택에 비하면 범위와 강도 모두 제한적이다. ‘2년 이상 해외사업장을 운영한 뒤, 해외사업장을 청산·양도하거나 생산량을 25% 이상 축소하고 국내에 복귀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도 걸림돌이다. 이런 탓에 유턴법 시행 이후 돌아온 68개 기업(철회·폐업 제외) 중 대기업은 현대모비스 뿐이다.

덩치 큰 대기업의 유턴이 낳는 고용·투자 효과는 분명하다. 현대모비스 사례처럼 중소 부품·협력사의 동반 유턴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해외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 복귀를 결심하긴 쉽지 않다. 기업들의 해외투자는 국내 규제 회피와 현지시장 확보, 낮은 인건비 활용 등 나름의 경영전략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혜택’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대기업이 국내로 복귀할 유인은 적은 셈이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기업 입장에선 국내 내수시장이 작고 인건비와 규제 문제가 심각해 유턴이 매력적이지 않다”며 “규제 완화 등 환경 개선 없인 ‘괜히 들어왔다’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관심 못끄는 유턴정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폐렴) 여파로 중국산 자동차 부품 공급이 중단되면서 현대차 울산공장이 휴업에 들어간 가운데 10일 오후 울산시 북구 현대자동차 정문 앞으로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11일부터 울산2공장을 시작으로 공장 가동을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2020.2.10/사진=뉴스1(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폐렴) 여파로 중국산 자동차 부품 공급이 중단되면서 현대차 울산공장이 휴업에 들어간 가운데 10일 오후 울산시 북구 현대자동차 정문 앞으로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11일부터 울산2공장을 시작으로 공장 가동을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2020.2.10/사진=뉴스1
‘코로나19’(COVID-19) 사태는 지금까지의 정책을 전환할 새 기회가 되고 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셧다운(가동 중단)에 들어가는 등 제조업 글로벌 공급망(GVC) 붕괴 위기를 목격한 세계 각국은 유턴 지원을 앞다퉈 강화한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해외진출 기업이 일본 내로 복귀할 경우 이전비용을 대기업은 절반, 중소기업은 3분의2까지 보조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법인세 감면 등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에 사활을 걸어 온 미국도 자국으로 복귀하는 모든 사업장을 유턴기업으로 지원한다.

최근 정부가 코로나19 기업 지원대책 일환으로 유턴기업에 대한 혜택을 대폭 강화했지만 여전히 대기업들의 관심을 끌긴 부족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울산 북구 중산동 이화산업단지에서 열린 현대모비스 친환경차 부품 울산공장 기공식에서 발파 버튼을 누른 뒤 송철호 울산시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울산시 제공) 2019.8.28/사진=뉴스1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울산 북구 중산동 이화산업단지에서 열린 현대모비스 친환경차 부품 울산공장 기공식에서 발파 버튼을 누른 뒤 송철호 울산시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울산시 제공) 2019.8.28/사진=뉴스1
산업부는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4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잇따른 일본의 수출규제와 코로나19 사태로 차질이 빚어진 글로벌 공급망(GVC)을 안정화하는 차원에서 ‘핵심기업 국내유턴’을 확대키로 했다. 종전 고용 및 산업위기지역이나 신설투자 유턴기업에만 적용하던 법인세 최대 7년 감면(5년 100%+2년 50%) 혜택을 증설 투자 유턴 기업에도 적용한다.

제조기업 외에 지식서비스산업·정보통신업도 조세 감면, 고용보조금 지원, 산업단지 우선 배정 등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국·공유지 사용특례도 신설했다. 비수도권에 입주하는 유턴기업에 국·공유재산 장기임대(50년), 임대료 감면, 수의계약 등을 허용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따라 조선기자재, 철강, 통신장비, 발광다이오드(LED) 부품, 주얼리, 식품 등 다양한 기업들이 코트라와 지방자치단체로 유턴 여부를 타진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기업은 1곳도 없고 중견기업 보다는 중소기업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코로나19, 지원대책 대전환 계기 삼아야

유턴법 시행(2013.12) 이후 국내 복귀 기업 수./그래픽=김다나 디자인기자유턴법 시행(2013.12) 이후 국내 복귀 기업 수./그래픽=김다나 디자인기자


전문가들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정부가 대기업에 대한 확실한 지원에 나설 때라고 촉구한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지금은 대·중소기업을 따질 시점이 아니다”라며 “기업들이 정부가 친기업으로 돌아섰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규제, 인허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전대미문의 위기 앞에선 ‘대기업=적폐’ 프레임을 걷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더 나아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떠나는 기업은 줄이고 돌아오는 기업은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반기업 정서와 규제가 강하고 노동 유연성이 낮은 한국에 기업들이 투자하긴 어렵다”며 “코로나19에 따른 공급망 차질로 기업들의 유턴 유인이 늘긴 했지만 이를 현실화하기엔 국내 환경이 열악하다”고 우려했다.

권혜민, 민동훈 기자

10곳 중 2곳만 "한국 유턴"…약발 안듣는 유턴법
올해로 시행 7년째인 '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 일명, 유턴법의 약발이 영 시원치 않다.

지원대상을 확대하고, 지원폭을 늘린 새 유턴법이 올해 3월 시행됐지만 실효성엔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해외 인건비 상승으로 현지 철수를 결정한 기업이 국내로 돌아오려고 해도 더 높은 인건비 벽에 부딪히는 등 풀어야 할 매듭이 한 둘이 아니다. 코로나19(COVID-19) 국면에서 유턴기업이 마주한 벽을 뚫기 위해선 기존 상식을 뛰어넘는 대책이 시급하다.

◆국내로 돌아온 기업 68곳…유턴법 7년 초라한 성적표

10곳 중 2곳만 'U턴'…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기업들
2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3년 12월 유턴법 시행 이후 지원대상 유턴 기업으로 인정받은 곳은 68개사다. 법 시행 직후인 2014년 유턴 기업이 20개사였고, 이후에는 매년 적게는 3개사에서 16개사까지 들쑥날쑥했다. 올해 3월 기준 2020년 유턴 기업은 4개다.

유턴 기업의 분포나 유턴 이후 조업 현황을 살펴봐도 만족스럽다는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유턴기업 68개사 중 일자리 창출이나 투자여력이 큰 대기업 유턴은 울산에 친환경 전기차 배터리 부품 공장을 세운 현대모비스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중견기업 7개사, 중소기업 60개사로 유턴 효과가 적은 중소기업에 치우쳤다.

특히 지난해 10월 기준 국내에서 정상조업을 시작한 유턴기업은 38개사에 그쳤다. 유턴 기업 지원을 신청했지만 정작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해 신청을 철회하거나, 아예 문을 닫은 곳도 4개사나 된다. 이렇게 유턴 기업 38개사가 창출한 일자리는 1271명. 지난 7년간의 성적표치곤 합격점을 주기에는 힘든 수치다.

◆해외기업 10곳 중 2곳만 "한국으로"…인건비 벽 높은 한국 매력↓

10곳 중 2곳만 'U턴'…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기업들
유턴 기업이 이처럼 미미한 것은 최초의 해외 진출국가나 또 다른 제3국에 비해 여전히 한국의 경영환경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신흥국의 인건비 상승으로 유턴을 생각하는 기업들도 막상 더 높은 한국의 인건비와 중소기업 구인난을 고려하면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을 접기 일쑤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한국이 아닌 제3국으로 생산기지를 돌리는 기업들이 많다.

코트라(KOTRA)가 2018년 해외진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현지철수를 고려 중인 기업 43개사 중 단 8개사만이 국내 유턴을 검토했다. 전체의 18.6%만 한국 유턴을 선택지 중 하나로 고려한 셈이다.

이처럼 해외 설비의 한국 이전이 어려운 이유는 뭘까? 당시 조사에서 '인건비 등 생산비용 증가'를 이유로 꼽은 기업이 22개사(52.1%)에 달했다. 특히 이 이유를 고른 기업 중 7개사는 '적절한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해외 인건비 상승과 현지 규제 강화를 이유로 한국 유턴을 하려고 해도 국내 노동환경이 이를 받아주지 못하는 것이다.

국내 유턴을 위한 지원에 대해선 기업 12개사(27.9%)가 '고용지원'을 선택했다. '법인세 같은 세금감면'도 7개사(16.2%), '투자보조금 지원'은 6개사(13.9%)가 필요한 지원책이라고 꼽았다.

결과적으로 국내 인건비를 감당할 수 있는 직접 지원책이 절실하다는 게 업계 목소리다. 정부도 유턴 기업에 대해 2년간 1인 720만원씩, 최대 100인(7억2000만원)까지 인건비를 지원해주고 있지만, 현장이 원하는 수준과는 여전히 온도차가 크다.

정인교 인하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자국 기업 유턴을 위해 각종 지원책을 발표하는 외국 사례를 보면 살짝 법을 고쳐서 내놓는 지원책 정도로는 유턴 기업을 만족시키기 어렵다"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유턴 기업 유치를 위한 역할을 제대로 분담하고, 유턴법 전면 개정과 함께 기업활동을 막는 각종 규제들을 동시에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10곳 중 2곳만 'U턴'…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기업들
김훈남 기자

'포스트 코로나'시대…세계화의 판도가 달라진다
/사진=AFP/사진=AFP
"나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일자리 자석(employment magnet)'이 되길 원한다. 기업들이 떠나는 걸 훨씬 어렵게 만들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취임 직후 한 말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시작됐던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한층 속도가 붙었다.

미국의 리쇼어링 전문 비영리기구인 '리쇼어링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2010년 오바마 정부가 '리메이킹 아메리카(Remaking America)'를 외치며 리쇼어링에 불을 지핀 이후 9년간 총 3327개 기업이 미국으로 돌아왔다. 연평균 369개다. 미국에 다시 공장을 연 기업들이 9년간 새로 만든 일자리 수는 34만7236개에 이른다.

가장 큰 유인책은 법인세 감면 정책이었다. 오바마 정부는 법인세를 38%에서 28%로 낮추고 유턴기업의 공장 이전 비용을 20% 보조해줬다. 트럼프 행정부는 여기서 나아가 법인세율을 최고 21%까지 내리고 과감한 세제 지원책을 펼쳤다.

/사진=로이터/사진=로이터
특히 미국의 리쇼어링이 성공적인 건 일자리의 '품질'에 있었다. 지난 9년간 리쇼어링과 외국인직접투자(FDI)로 새로 생긴 일자리 75만 개 중 32%가 하이테크 기술 기반의 일자리였다. 기술 수준이 낮은 로우테크 일자리는 21%에 불과했다. 이는 미국 15개 주에 분포한 정부, 산업계, 학계의 협업 인프라인 미국 제조프로그램(MUSA) 연구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15개 연구소는 로봇공학, 인공지능 등 각각 특정 첨단 기술 분야에 초점을 맞추며 첨단 기술기업이 미국 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애플이 지난해 상반기까지 리쇼어링을 통해 미국에 만든 일자리가 2만2200개, GM은 1만2988개, 보잉 7725개, 포드 4200개, 인텔 4000개에 이른다. 이에 따라 미국 실업률은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월 3.5%로 5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일본도 '아베노믹스' 일부로 국가전략특구에서 규제를 완화하고 법인세율을 2013년 34.6%에서 현재 23.4%로 낮췄다.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로 돌아오는 기업에도 규제 혜택과 연구개발비를 지원했다. 도요타·혼다·닛산과 캐논, 파나소닉, 샤프 등 전자기업들이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국내로 공장을 이전하기 시작했다.

제조업 강국 독일 역시 자국의 높은 인건비를 상쇄하기 위해 스마트 팩토리와 연구개발(R&D) 보조금으로 자국 기업의 유턴을 유도하고 있다. 법인세율 완화(26.4%→15.8%)와 규제 하나를 추가하면 하나를 없애는 정책도 추진했다.

10곳 중 2곳만 'U턴'…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기업들
최근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인해 각국 정부들은 리쇼어링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고 있다. 지난 10일 래리 커들로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중국에서 돌아오는 기업의 각종 비용을 100% 지원하는 것은 매우 좋은 정책"이라며 "더 많은 기업이 유턴할 수 있도록 일정 시한을 정해 필요한 정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도 지난 7일 중국을 떠나려는 자국 기업의 이전을 돕기 위해 총 2435억엔(약 2조7170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특히 자국 복귀를 원하는 부품·소재 분야 대기업에 생산 공장 이전 비용의 절반을 지원하겠다는 유턴 지원책을 내놨다.

전문가들도 리쇼어링이 최근 코로나바이러스에 수그러든 경제를 되살리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나다 샌더스 노스이스트대 다모어-맥킴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번 팬데믹으로 인해 미국으로 더 많은 제조업을 복귀시키고 사람들을 다시 일하게 할 것"이라면서 "연방정부의 저금리 대출과 세제혜택은 기업들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일자리를 가져오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한 지역에 물자를 집중시키는 것의 취약성을 노출했다. 기업들은 한 바구니 안에 있는 계란에만 의존하지 않을 것이며 대신 다변화하고 이곳 미국에서 제조를 시작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세계화 흐름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영국 옥스퍼드대 비타 자보치키 교수는 "세계화는 제조된 상품을 전세계로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아이디어, 정보를 이동시키는 것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도 "리쇼어링의 확산이 세계화의 끝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세계는 우리가 지난 30년동안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다른, 더 제한적인 형태의 글로벌 통합을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수현 기자

"해외진출 기업 5%만 유턴해도 일자리 13만개 생긴다"
"해외로 나간 한국 기업의 5.6%만 돌아와도 일자리 13만개가 생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지난 7일 발표는 기업 유턴 정책의 효과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연구 결과다.

업종별 일자리 창출 효과를 보면 자동차 4만3000명, 전기·전자 3만2000명, 전기장비 1만명, 1차금속 1만명, 화학 6000명 등으로 추산된다. 생산라인에 직접 투입되는 노동력이 많은 산업일수록 '리쇼어링'(해외로 나간 기업의 국내 복귀)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더 크다.

◆리쇼어링 국내생산액 40조, SK하이닉스 하나 만드는 셈

10곳 중 2곳만 'U턴'…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기업들

이 일자리 창출은 고스란히 경제효과로 이어진다. 국내생산액 40조원, 부가가치유발액은 13조1000억원에 달한다. SK하이닉스나 현대모비스 같은 굴지의 기업이 새로 생기는 셈이다.

특히 전기·전자 부문의 국내생산 유발액이 12조6000억원으로 가장 많다. 한경연은 2018년 11월 매출액 기준 상위 1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기초로 이런 결과를 도출했다.

이 결과는 추산치지만 실제에 상당히 근접한 수치라는 게 정부와 학계의 평가다. 최근 국내 제조업계가 해외 현지에서 고용한 인력 추이에서도 이런 결과가 직접 확인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05~2015년 국내 제조업체의 해외 진출 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기간 해외 고용인원이 53만2652명에서 162만4521명으로 100만명 이상 늘었다.

해외에 진출한 국내 제조업체들이 연평균 10만명씩 해외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국내에서 공장을 운영했을 경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5년간 2411개사 본토 U턴, 일자리 26만개 창출

10곳 중 2곳만 'U턴'…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기업들
기업 유턴 효과는 미국이나 일본 등에선 이미 숫자로 확인됐다.

미국 리쇼어링 기업 고용창출 현황에 따르면 2014~2018년 5년 동안 총 2411개 기업이 귀환하면서 일자리 26만개가 창출됐다. 연평균 5만2514개다. 특히 2017년에는 유턴기업의 신규 창출 일자리가 미국 제조업 신규 고용(14만9269명)의 55%를 차지했다.

이 중에선 애플이 2만2200개, GM(제너럴모터스)이 1만3000개, 보잉이 7700개 등으로 U턴 대기업이 만든 일자리가 적잖았다.

전문가들은 국내 조선·해운 등 주력산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벌어진 '고용 대란'은 앞으로 더 걱정이라고 지적한다. 시장에서는 한국 경제가 '제조업 위기→실업자 증가→가계소득 감소→내수 부진→제조업 위기 악화'의 악순환에 빠졌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오려면 일자리 만들기가 시급하다. 하지만 정권마다 일자리 창출의 키워드로 추진했던 기업 유턴의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과제 중 하나로 유턴기업 지원정책을 추진하면서 최대 38만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전망했지만 실제 창출된 신규 일자리는 800여개에 그쳤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들의 글로벌 공장 가동이 중단되며 해외 진출 대기업의 유턴을 유도하기에 좋은 조건이 갖춰졌다"며 "여기에 더해 세제 개선과 노동 개혁 등 과감한 사회적 합의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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