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에 눈뜬 20대…'사설 HTS'로 월 90억 챙겨

머니투데이 김유경 기자, 김남이 기자 2020.04.0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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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_사이버사기1 / 사진=임종철삽화_사이버사기1 / 사진=임종철


#마트를 운영하는 A씨. 평소처럼 사설 HTS(홈트레이딩시스템)에서 선물거래를 하기 위해 3000만원의 보증금을 예치했다. 그런데 6시간 후 예치금은 단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투자중개인이 거래수수료 명목으로 3000만원 모두 빠져나갔다.

#자영업자 B씨는 동일 사설 HTS에 1000만원을 보증금으로 예치하고 선물투자를 위임했다. 초기에는 수익이 제법 났다. 하지만 B씨도 결국 1000만원을 모두 날렸다. 이후 1000만원을 추가로 넣었다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출금을 원했지만 출금이 막혔다. 그 사이 B씨의 남은 예치금도 모두 거래수수료로 사라졌다.




사설 HTS를 개설해 적게는 200만원에서 많게는 3000만원의 예치금을 넣도록 유인한 후 예치금 전액을 거래수수료 명목으로 빼가는 금융사기가 극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사기처럼 가명과 대포통장, 대포폰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사기를 당하고도 고소를 할 수 없어 속수무책이었다.

20대 10여명, 가명·대포폰·대포통장 이용…보이스피싱과 유사
7일 법무법인 참진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불법 선물거래 사이트를 통해 사기를 당한 14명은 내부고발자의 도움으로 이들에게 총 1억6000여만원 상당의 재산상 피해를 입힌 11명을 상대로 고소했다. 이중 거주지가 서울 강남인 한 명(27)이 최근 대구경찰청에서 사기 혐의로 검거돼 수사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내부고발자에 의해 덜미가 잡혔다. 이들이 사설 HTS 선물거래를 통해 편취한 규모는 월 9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홍걸 참진 변호사는 "이들은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이용하면서 개인이 고소하기 어려운 금액으로 다수에게 손실을 입혀왔다"며 "내부고발자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 20대 중반으로 아우디, 포르쉐 등 고가의 수입차를 타고 하루에 1억원 넘게 번다고 했다"고 밝혔다.

삽화=임종철 디자이너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외제차 타고 클럽서 수천만원 써…20대 인플루언서 유혹
이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수금해서 이익을 분배하고 주말에는 클럽 등에 모여 하루에 수천만원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또 조직원 일부를 별도의 조직으로 독립시키는 방법으로 조직을 확대해왔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이런 사기사건은 드러나기 쉽지 않다. 이 사건도 내부고발자가 없었다면 잡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피해자는 우리가 고소한 이후로도 계속 나오고 있어 그 규모는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사기를 당하고도 사기 당한줄 모르거나 소송을 할 시간적·물질적 여유가 없어 포기하는 피해자가 많다는 게 피해자 A씨의 설명이다. 그는 "피해자는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하고 학생, 직장인, 간호사, 자영업자 등 직업도 다양하다"며 "일부는 결혼자금, 아내 수술비를 날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처벌은 징역 5년 이하…내부 고발 없으면 검거도 어려워

불법 선물 사이트를 개설해 거짓광고로 개인투자자들을 유인하고 편취하는 수법은 오래됐지만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엔 20대 주축으로 사건에 가담하고 있는 게 눈여겨 볼 점이다.

이 변호사는 "도박사이트 운영으로 처벌을 받아도 징역 5년 이하인데다가 집행유예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며 "20대가 큰 노력 없이 고급 외제차를 타고 하루 수천만원씩 쓰면서 연간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을 벌 수 있다면 2년 정도 수감생활은 감수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아 우려된다"고 했다. 특히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영향력이 높은 20대 인플루언서를 통해 이같은 범죄가 확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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