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재배당' 논란에 입 연 법원 "오덕식 판사, 비난 홀로 감당"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20.04.0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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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L] 김병수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판사들에게 메일 보내 논란 해명

/사진=뉴스1/사진=뉴스1


N번방 사건 재판을 맡았던 오덕식 부장판사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법원이 입을 열었다. 오 부장판사는 고(故) 구하라씨의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부적절하게 처신했다는 비판 여론에 밀려 N번방 사건 재판을 내려놨다.

형사소송법이 정한 제척·기피사유가 없음에도 오 부장판사를 사건에서 제외한 결정이라 법원 안팎으로 말이 많았다. 사법부 독립이 유명무실해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오 부장판사의 의사를 존중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김병수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최근 형사부 판사들에게 오 부장판사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해명하는 메일을 보냈다.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중앙지법 형사부 판사들을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

김 부장판사는 구씨 재판과 N번방 사건 논란 이후 오 부장판사가 홀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적었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주 오 부장판사가 N번방 관련 사건을 맡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며 "성범죄나 디지털 성범죄의 양형을 둘러싼 법원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오 부장판사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또 "오 부장판사의 과거 판결 중 벌금이나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건만을 골라내 집중 보도하기도 하고 과거 언행에 대한 비난도 이어졌다"며 "국민청원이 계속되는 동안 비난의 정도는 더 늘어나고 언제 그칠지 예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했다.

이어 구씨 관련 재판과 관련해 양산됐던 논란을 언급했다. 구씨의 전 남자친구가 협박에 이용했다는 성관계 동영상을 오 부장판사가 확인하겠다고 하자 구씨에 대한 2차 가해라는 비판 여론이 거셌다.

이에 대해 김 부장판사는 구씨의 전 남자친구 쪽에서 동영상 내용을 문제삼았기 때문에 오 부장판사가 동영상을 확인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부장판사는 "피고인(구씨의 전 남자친구)은 '영상의 90%에는 피고인만 등장한다. 피해자(구씨)는 옷을 입고 있고 피고인은 나체다'라며 동영상 내용이 공소사실과 다르다는 취지로 다퉜다"며 "동영상 내용에 따라 협박 사실의 판단이나 양형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하므로 내용 확인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피해자의 변호인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우려가 있어 재판장이 판사실에서 동영상 내용을 확인할 것을 제안했고 오 부장판사는 요청을 받아들였다"며 "동영상 내용 확인이 불필요했다거나 변호인 반대에도 오 부장판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해 판사실에서 동영상 내용을 확인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오 부장판사도 자신을 향한 비난, 구씨의 극단적 선택 이후 괴로워했다고 한다. 김 부장판사는 "오 부장판사는 왜곡, 과장된 보도 내용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피해자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사실관계를 밝히는 과정에서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대응하길 원치 않는다고 했다"며 "비난은 스스로 감수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김 부장판사는 "오 부장판사가 겪은 심적 부담과 고통만큼이나 가족들이 겪는 부담과 고통도 컸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재판을 받을 (N번방 사건) 피고인에게 그대로 전가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며 그 부담을 감당하면서 재판을 받도록 하는 것은 미성년의 피고인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면서 오 부장판사가 먼저 N번방 사건을 맡지 않게 해달라는 의사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사법독립이 흔들린 것 아니냐는 뒷말에 대해 김 부장판사는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재판권을 행사하여야 한다는 점은 법관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라며 "그 외부의 영향이 국민청원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건의 재배당으로 우려하는 부분들을 감수하고서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해달라"며 "법원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상당 부분 혼자 감당하며 고통을 겪은 오 부장판사에게 동료 법관으로서 오해와 억측으로 또 다른 고통이 주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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