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마스크 쓰자"는 美·유럽…아시아와 대응 달랐던 이유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20.04.0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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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영의 속풀이 과학-(9)]전염병 예방 마스크에 대한 동서양의 태도

편집자주 ‘속풀이 과학’은 신문 속 과학기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이면과 뒷이야기, 혹은 살면서 문득 갖게 된 지적 호기심, 또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과학상식 등을 담았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자료사진트럼프 미국 대통령/자료사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수그러들지 않자 그동안 마스크 착용을 외면해오던 미국과 유럽 등 서양 국가들이 마스크 착용 의무화로 정책 방향을 틀고 있다. 당초 세계보건기구(WHO)는 의료진을 제외하고 일반인까지 마스크를 쓸 필요 없다지만, 세계적 과학학술지 사이언스는 "팬데믹을 조기 종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마스크 방역을 권고했다.

“마스크 쓸까” 美·獨 등 서양 사회 잇단 정책 선회
미국은 마스크 착용 권고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시민들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일반인의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지침을 검토 중이다. 1일 기준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8만명을 넘어섰고 사망자 수는 3440명으로 중국(3309명)을 앞질렀다.



의료진을 제외하고는 마스크 착용을 권하지 않았던 독일 보건 당국도 이날 브리핑에서 “마스크 사용은 모든 조치에 대한 출구로 고려될 수 있다”며 마스크 사용 의무화를 시사했다. 슈테펜 자이베르트 총리실 대변인도 “마스크 착용이 거리 유지와 손 씻기, 접촉 피하기 등 위생 수칙에 부가해 유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일부 유럽 국가는 이미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시행했다. 독일과 이웃한 오스트리아도 1일부터 마트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밀집장소 내에선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다고 밝혔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사람들이 밀접 접촉하는 장소에 갈 때는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 달라”며 “비록 이(마스크를 쓰는 것)는 우리의 문화는 아니지만, 감염병 확산을 줄이기 위해선 이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체코에서는 지난 19일부터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지금껏 일반인의 마스크 착용은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도움이 안 된다는 WHO의 공식적 입장과 배치된다. WHO 측은 "증상이 없는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데 효과가 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WHO는 코로나19의 펜데믹(세계적 대유행)을 뒤늦게 선언해 확산 사태를 키웠던만큼 국제 신뢰를 잃어 이 같은 권고가 제대로 통용되지 않는 모습이다.

독일의 한 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 AFP=뉴스1독일의 한 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 AFP=뉴스1
아시아에서나 착용하는 보호구…마스크에 대한 다른 인식과 선입견
그동안 마스크 착용에 소극적이던 서양 사회에서 이 같은 태도 변화가 일어난 이유는 뭘까. 미국의 경우 지난달 공중보건국 국장 제롬 애덤스 해군중장이 자신의 트위터에 “마스크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마스크 구매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내놓은 바 있다. 독일도 국가 전염병 연구·관리기관인 로베르트코흐연구소(RKI) 홈페이지를 통해 “건강한 사람의 마스크 착용이 확산의 위험을 낮춘다는 증거는 불충분하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간 서양 사회에서 마스크는 질병에 걸린 사람이나 보건 의료 종사자가 쓴다는 인식이 강했다. 특히, 2월 코로나19가 중국, 한국, 일본 등을 중심으로 퍼져나갈 땐 아시아에서나 착용하는 보호구 정도로 취급했다. 당시 미국·유럽 국가 지도자들은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 “감염자와 현장 의료진만 마스크를 착용하면 된다”는 식의 주장을 펴왔다. 해외 과학자들도 코로나19 확산 초기 대체로 마스크 효용성에 의구심을 제기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통제되지 못한 채 신규 확진 환자가 급속히 증가하자 이런 인식과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앞서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30일(현지시간) “그동안 건강한 일반인들의 마스크 착용에 무용론 등을 주장하던 일부 과학자들도 마스크 착용을 통해 코로나19 전파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 공감하기 시작했다”며 “마스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을 끝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독일 공영방송 ARD도 바이러스 전문가 알렉산더 케쿨레 독일 할레비텐베르크대 교수와의 인터뷰를 송출하며 “마스크 착용이 바이러스 유행을 억제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의학계도 무증상 전파가 가능한 코로나19 특성을 감안할 때 마스크는 예방 차원에서 반드시 착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더했다.

의료진 마스크도 없는데… ‘마스크 대란’ 우려 고개
문제는 일반 시민이 마스크 착용에 나섰을 때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느냐다. 독일의 경우 의료진들의 마스크마저 부족한 상황이다. 전 국민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할 경우, 가뜩이나 마스크가 부족한 상황에서 ‘마스크 대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향후 '전 국민 마스크 착용 권고'를 내릴 경우 마스크 부족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의학분야 국제학술지 ‘랜싯’에 게재된 마스크 관련 논문을 살펴 보면 각국 보건당국이 마스크 착용을 권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로 ‘공급부족 우려’를 꼽는다. 논문에 등장한 보건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유럽국가들이 이달 초까지 마스크 착용을 적극 권고하지 않았던 이유는 마스크 확보가 어려워진 각국 보건 당국이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이런 가운데 중국산 마스크의 품질 논란이 끊이지 않아 미·유럽인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 21일 중국 업체로부터 수입한 마스크 130만 장이 품질 기준에 미달해 전량 회수했다고 29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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