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방. 탈출할 방. 폭파할 방!

양현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0.03.2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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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쏘우' 스틸. 사진출처=포털 영화 섹션 영화 '쏘우' 스틸. 사진출처=포털 영화 섹션


시즌3으로 돌아온 tVN 예능 프로그램 '대탈출3'가 화제다. 일요일 밤 시간대 방영임에 불구하고, 최근 시즌 최고 시청률 3.2%를 경신하며 인기 고공행진 중이다. 더구나 시즌1에 등장한 좀비 에피소드가 심화되어, 좀비의 탄생과 좀비 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백신의 출현, 결국 좀비가 생산되는 공장에 이르기까지, 이 ‘좀비 유니버스’는 보다 견고해지는 모양새다.

'대탈출3'은 밀실을 탈출하는 일종의 ‘방탈출 게임’의 확장판이다. ‘방탈출 게임’이란 밀실에 갇힌 게임 유저가 방 안에 놓인 각종 물건, 소품 등을 힌트 삼아 최종 열쇠를 습득, 방을 탈출할 수 있는 이스케이프(escape, 탈출) 게임이다. '대탈출3'는 세 번째 시즌으로 점차 진화된 형태로 거듭났다. 하나의 밀실을 통과하면 다음 밀실이 미션으로 주어지는 그 모든 과정에서 병원, 폐공장 등 좀 더 확장된 스테이지로 변모했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에피소드는 일면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듯한 스토리적 박진감도 선사했다.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미세한 일상 소음에 비명부터 지르고 보는 겁보 유저들이지만 스테이지가 거듭되며 일종의 성장캐릭터로서 시청자들의 애정도 덤으로 얻고 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이 사랑받는 이유엔 강호동을 비롯한 피오, 김종민, 김동현, 신동 등 다양한 캐릭터들의 재치 넘치는 플레이도 있지만, 사실 이 예능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밀실. 매 에피소드마다 점차 진화하고 있는 건, 바로 플레이어들을 끊임없이 갈등시키고 패닉에 빠트리는 이 ‘방’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붕괴되고, 사람들은 일터나 학교 대신 각자의 방으로 틀어박혔다. 자의반 타의반 자가격리에 들어선 우리 모두는 사실 각자의 방에 갇혀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란 캠페인은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꼭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때문에 이 ‘방’은 가장 친근하고 편안한 동시에, 자유를 억압하는 감옥처럼 여겨진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곳. 하나의 문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한 공간. 그리고 외부로 연결된 유일한 통로인 문이 잠겼다면 그대로 갇힐 수밖에 없는 구조.

‘방’은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영화 '쏘우'는 그러한 공간의 폐쇄성을 바탕으로 인간의 음습한 상상력을 극대화 시킨 방탈출 게임 무비의 시초와 같은 작품이다. 이런 밀실 트랩에 갇힌 인간들의 행동 양식이란 대개 극악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살기 위해 배신하고 때로는 살인까지 불사할 정도로 막장 인간 군상이 집약돼 보여지는 공간. 하지만 이런 밀실 트랩에서 정작 흥미로운 지점은 그런 막장 면모를 보여주는 플레이어에 있지 않다. 바로 이 밀실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제3의 인물에 있다. 이 터무니없는 게임을 만든 장본인. 밀실에 유저들을 가두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플레이하게 만든 절대자. 이 밀실 트랩에서 마스터는 곧 신의 영역이다. 방을 제작하고, 플레이어를 선택하며, 이 모든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는 이.



또 다른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저 번호로만 존재하던 그 ‘N번방’에서 벌어지던 끔찍한 트랩에 어린 여성들과 아동이 걸려들었다. 어디까지 잔인하고 가혹해질 수 있는지 마치 대결이라도 하듯 모든 방은 점차 수위를 높여가며 진화했다. 물론 이 방에는 트랩에 걸린 이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이 밀실에 유저들을 가두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플레이하게 만든 절대자가 존재했고, 스스로를 박사라 칭했다. 쏘우가 무릎 꿇을 정도로 지능적이고 교활했으며 또한 악랄했다. 이 N번방은 알려지기로 2018년 11월부터 시작되었으니 벌써 일 년이 훌쩍 넘도록 성행한 인기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이게 가능한 건 적게는 20만 원, 많게는 150만 원에 이르기까지 가입비를 내고 이 게임을 적극 즐겨찾기한 26만 명의 열혈 회원에 있다. 이들은 각 방의 플레이어에 열광했고, 더 나아가 게임을 주도하기 위해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며, 심지어 방을 자가증식시키기까지 했다. 이들의 팬심이 없었다면 이 N번방 게임은 이토록 흥행할 수 없었을 거다. 그게 자본주의의 논리니까. 어떤 면에서 보면 이들은 ‘박사’라 칭한 쏘우 보다 이 게임을 익스트림한 스포츠처럼 즐기고, 등급 연령조차 매길 수 없는 최악의 스너프 무비로 만들었으며, 범죄의 온상으로 진화시켰다. 가장 끔찍한 악몽이 현실화되는데 필요한 건 고작 150만 원이었다.

다시 '대탈출3'로 돌아가서. 좀비 유니버스로 확장된 이 예능의 백미는 단연 사방에서 밀려드는 좀비 떼다. 이 방을 탈출하기 위한 유저에겐 그저 공포의 대상. 언제 어디서나 유저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다가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유력한 힌트에 접근할 때면 나타나 훼방을 놓는다. 좀비에게 플레이어는 이 방에서 탈출해서는 안 되는 생명체이자, 그 자체로 놀잇감이다.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 어쩌면 26만 명이란 가늠되지 않는 숫자의 회원은, 이 좀비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한다.



외투로 얼굴을 가린 채 연행되는 ‘박사’란 이름의 26살짜리 쏘우. 그리고 26만 명의 좀비. 이 'N번방' 플레이어들이 갇힌 방의 숫자는 사실 ‘26’일 거다. 그 어떤 밀실보다 잔인하고 가혹한 방인 숫자 26. 그래서 현실은 게임보다 자비 없고, 영화보다 참혹하다. 그럼에도 이 현실 속 플레이어들이 진심으로 방 탈출에 성공했으면 한다. 그리고 이 게임의 엔딩이 부디 숫자로 이뤄진 26만 개의 모든 방이 폭파되는 그림이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이 ‘방탈출 게임’에 속편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양현진(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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