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박쥐가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진짜 이유

머니투데이 원종태 산업1부장 2020.03.12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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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박쥐가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진짜 이유


1. 집단 생활
모든 게 박쥐 때문이다. 박쥐는 많게는 수백만 마리가 집단을 이뤄 살기 때문에 단 1마리의 바이러스 감염이라도 집단 전체 감염으로 이어진다.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박쥐들은 그 자체가 거대한 바이러스다.

박쥐는 지구상에 무려 1240종이 존재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관박쥐 종류만 18종이다. 서로 다른 박쥐 종들이 한 동굴에서 사는 것도 쉽게 볼 일이 아니다. 박쥐 집단에 감염된 바이러스는 종과 종 사이를 넘나들며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신·변종 바이러스로 바뀐다. 개로 치면 바이러스가 푸들에 이어 치와와를 감염시키고, 다시 시추로 옮겨가며 전혀 다른 바이러스가 되는 것이다.



2002년 중국 광둥성에서 발병해 전 세계 775명의 목숨을 앗아간 감염병도 이 과정을 거쳤다. 수백만 마리의 관박쥐들 사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뒤섞이며 완전히 새롭고 강력한 잡종 바이러스가 탄생했다. 이게 바로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다.

2. 긴 수명
박쥐가 바이러스를 잘 퍼뜨리는 이유로 수명이 길다는 점도 있다. 박쥐는 5~50년을 산다. 쥐의 수명이 2~3년. 다람쥐가 4~5년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장수 동물이다.



이처럼 수명이 길다는 것은 박쥐 집단이 바이러스에 노출돼 감염되는 시간도 그만큼 길다는 의미다. 박쥐는 긴 시간동안 감염과 재감염을 반복한다. 언제든 집단 밖으로 바이러스를 전염시킬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다.

일부 박쥐는 겨울잠을 자며 저체온과 신진대사 저하에 빠진다. 숙주의 이런 환경은 바이러스가 아주 좋아한다. 동면 전 박쥐에 침투한 바이러스는 동면 내내 집단 감염 상태를 지속시킨다. 동면이 끝나면 박쥐의 활동량이 많아지며 엄청난 속도로 다른 동물로 바이러스를 옮긴다.

2012년 중동을 시작으로 창궐한 메르스도 강력한 전파력을 가진 박쥐가 바이러스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는 박쥐에서 낙타로 옮겼다가 다시 인간으로 감염됐는데 3년 만에 515명이 목숨을 잃었다.


3. 날개
박쥐가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는 요인으로 날개도 빼놓을 수 없다. 박쥐는 포유류 중 유일하게 하늘을 날 수 있다. 무려 2000km를 비행할 수 있는 박쥐도 있다. 이 날개 덕분에 박쥐는 단기간에 더 넓은 지역에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육지에서만 사는 다른 포유류와는 감염 범위의 차원이 다르다.

특히 과일박쥐는 엄청난 양의 과일을 이빨로 씹어 먹는다. 이 박쥐의 비행권에 들어있는 땅에는 박쥐가 씹어먹다가 떨어뜨린, 바이러스가 잔뜩 묻은 과일 조각들이 꽤 많아진다.

가뭄이나 벌목으로 과일이 줄어들 때면 박쥐는 원숭이 같은 다른 개체군과 치열한 먹이 싸움도 벌인다. 이 과정에서 박쥐 바이러스가 원숭이들에게 순식간에 감염되기도 한다.

2013년 11월 아프리카 기니에서 처음 발생해 라이베리아 등으로 확산된 에볼라 바이러스도 과일박쥐로부터 창궐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일박쥐가 원숭이에게 옮긴 에볼라 바이러스로 2년여 동안 1만1301명이 사망했다.

4. 인간
그러나 박쥐가 인간을 향해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인간 자신에게 있다. 박쥐는 타이밍과 조건만 맞으면 어떤 동물에게도 바이러스를 감염시킬 수 있다.

책 '바이러스 쇼크'의 저자 최강석 농림축산검역본부 연구원은 이렇게 일갈한다. 지구 상에 박쥐가 사라지지 않는 한, 박쥐의 바이러스가 다른 종에게 감염될 조건들이 제거되지 않는 한, 야생 동물을 먹는 인간의 음식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박쥐의 바이러스는 계속 인간을 괴롭힐 것이라고.

인간이 야생의 생태계를 함부로 건드리지 않고, 야생의 서식을 보호해줘야 바이러스의 습격을 줄일 수 있다.

수 많은 야생동물을 거래하던 중국 우한 화난수산시장. 인간이 함부로 야생을 건드리면 어떤 재앙을 당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중국 당국이 코로나19 창궐 이후 중국 전역에서 압수한 야생동물만 3만9000마리에 달한다고 한다. 박쥐로부터의 감염은 어쩌면 박쥐 때문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자초한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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