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유가급락, 더블 블랙스완"…막오른 '유가전쟁'

머니투데이 황시영 기자, 강기준 기자, 뉴욕=이상배 국제부특파원 2020.03.10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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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막오른 오일전쟁' 유가 29년래 최대 낙폭…"바이러스 블랙스완"

편집자주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과 경제 충격으로 원유 수요가 급감했다. 하지만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 정부와 셰일업체를 겨냥해 생산을 더 늘린다. 29년만에 최대폭으로 급락한 유가와 눈앞에 닥친 역오일쇼크의 파장은 어떨까.

"코로나+유가급락, 더블 블랙스완"…막오른 '유가전쟁'


국제유가가 1991년 걸프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유가전쟁(oil price war)'의 서막이 올랐다.

9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물 WTI(서부텍사스산원유)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10.15달러(24.6%) 급락한 31.13달러에 마감했다. 1991년 1월17일 이후 29년만에 가장 큰 하락률이다. 국제유가의 기준물인 5월물 브렌트유는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이날 밤 9시36분 현재 10.9달러(24.1%)나 내려앉은 34.28달러에 거래됐다.

지난 6일 OPEC(석유수출국기구)과 러시아 등 비회원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가 러시아의 반대로 감산 합의에 실패하고, 사우디가 7일 오히려 석유 증산과 원유공식판매가격(OSP)의 배럴당 6~8달러 인하를 발표한 탓이다.



AFP통신은 "러시아가 감산에 합의하지 않아 사우디는 화가 났다"며 "사우디는 20년만에 가장 큰 폭의 가격인하를 단행했고 러시아의 시장점유율을 채가면서 에너지 시장에 대혼란이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원유 수요가 줄었다…"바이러스가 블랙스완"
코로나19 여파로 원유 수요도 줄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원유 수요가 하루평균 9만배럴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유 수요 감소는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1년만에 처음이다.

IEA는 세계 원유수요 증가량의 80%를 담당하는 중국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 경우 하루평균 73만배럴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존 킬더프 뉴욕 어게인캐피털LLC 에너지전문 분석가는 "코로나19는 석유 시장에 '블랙스완'(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발생할 경우 시장에 치명적인 충격을 가져오는 사건)이 될 수 있다"며 "바이러스 발병 직전까지만도 석유 수요 전망은 밝았으나 지금은 달라졌다"고 말했다.


2019년 12월 12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거리에 사우디 국영 석유사 아람코의 IPO(기업공개)를 알리는 광고판이 붙어 있다./사진=AFP2019년 12월 12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거리에 사우디 국영 석유사 아람코의 IPO(기업공개)를 알리는 광고판이 붙어 있다./사진=AFP
전문가 "유가 20달러대도 가능…코로나19로 유가 예측 어렵다"
전문가들은 사우디와 러시아간 싸움이 해결되지 않으면 국제유가가 20달러대로 떨어질 것으로 본다. 엑손모빌 자문분석가였던 알리 케데리는 미 CNBC에 "올해 유가가 20달러대로 내려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라 헌터 BIS 옥스포드이코노믹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코로나19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국제유가를 예측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면서 "시장은 지금 강하게 요동치고(wild oscillations) 있다"고 말했다.

모건스탠리는 "코로나19가 2분기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주요 국가들의 '기술적 경기침체(technical recession)' 위험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재정정책이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바이러스부터 잡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텍사스주 페르미안분지에 있는 셰일오일 시추시설/사진=AFP미국 텍사스주 페르미안분지에 있는 셰일오일 시추시설/사진=AFP
'치킨게임' 승자는 누구
코로나19 여파가 큰 데다 사우디와 러시아간 싸움에서 '유가 붕괴(oil price collapse)'가 오고 있다.

AFP통신은 "이번 사우디와 러시아간 대결은 물론 다른 산유국간 가격 치킨게임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사우디는 배럴당 2.80달러에 불과한 초저가 원유 생산국이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원가경쟁력이 높다.

매크로 어드바이저리의 크리스 위퍼는 "러시아가 향후 3~6개월간은 치킨게임을 버티며 꿈쩍도 않을 것 같다"며 "러시아의 재정 보유액은 사우디보다 800억달러나 많고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원유 가격이 배럴당 25달러 아래로 계속 하락할 경우 입장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이르쿠츠크주에서 나오는 원유를 이르쿠츠크 원유회사의 한 직원이 손에 담아보이고 있다.(2019년 3월 11일)/사진=로이터러시아 이르쿠츠크주에서 나오는 원유를 이르쿠츠크 원유회사의 한 직원이 손에 담아보이고 있다.(2019년 3월 11일)/사진=로이터
셰일오일로 돈번 美정유사 디폴트·인원 감축 가능성
2014년 유가 폭락 사태 당시에도 미 정유사들은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중소업체는 줄줄이 파산했고, 엑손모빌 같은 대형 정유사들도 자산 매각으로 간신히 버텼다. 다만 그때보단 정유업체들이 채산성을 많이 끌어올린 데다가 다양한 헤지 전략도 갖추고 있어 타격이 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와함께 뉴스위크는 미국이 세계 1위 산유국이 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셰일오일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10여년간 10% 정도로까지 커졌기 때문에 정유사들이 채무불이행(디폴트)나 인원 감축 등을 실시할 경우 경제에 줄 여파가 커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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