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아미의 4억 기부금과 가치소비

양현진(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0.03.1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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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이나 편의성보다 브랜드 가치 중요시

방탄소년단 슈가.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탄소년단 슈가.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21세기 흑사병의 위력은 사람들의 생업은 물론 일상을 송두리째 망가뜨렸다. 계획되었던 많은 일이 취소 혹은 무기한 연기됐고, 사람들은 분노했다.

세계적인 그룹 방탄소년단의 국내 콘서트 일정이 취소됐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팬들의 마음이 고분고분할 수 있으랴. 오랜 시간 기다려온 내 가수의 공연이고, 뒤에는 해외 투어 일정이 줄줄이 잡혀있는 데다가, 공공연하게 멤버의 입대가 거론되는 상황이다. 이번 콘서트가 아니라면 한동안 방탄소년단을 직접 보기 힘들 거란 위기감이 팬덤 내에 팽배한 상황에서 콘서트 취소 통보는 그럼에도 적잖은 데미지였을 거다.



한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이름으로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부가 쇄도한 것. 최근 그 금액이 4억2000만원이 넘는다고 알려졌다. 여기에 개인의 이름으로 납부된 기부금과 다른 취약 계층을 위한 다양한 단체로 이어진 기부금까지 합산되면 전체 금액은 훨씬 더 높을 것으로 추산된다. 일부에서는 이 기부가 애초 방탄소년단의 한 멤버인 슈가가 앞서 진행한 1억원 기부로 인해 비롯된 거라 말한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모방하는 팬의 심리란 거지. 하지만 과연 가수를 좋아하는 팬의 일명 ‘빠순이 마인드’로만 이 현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까.

IBM은 올 초, 전미유통협회(National Retail Federation)와 공동으로 Z세대부터 베이비붐 세대까지(18세~73세) 전 세계 28개국의 소비자 1만9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글로벌 소비자 동향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내용의 골자는 오늘날의 소비자는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를 비용이나 편의성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거였다. 이른바 ‘가치 소비’ 시대가 도래한 것. 이제 사람들은 가격 비교가 내 쇼핑리스트의 최우선 카테고리를 차지하던 시대와 기꺼이 작별했다. 브랜드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 즐겨 사용했던 제품이라 해도 구매 의사를 철회하거나, 심지어 더 나은 가치와 신뢰를 보여주는 경쟁사로 얼마든지 쉽게 떠나간다는 거다. 위기다. 로열티 높은 고객들의 오래된 구매 패턴을 바꾼다는 것. 현명한 데다가 도덕의식까지 높은 까다로운 소비자의 출현은 기업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젠 물건만 잘 만드는 거로는 택도 없다는 소리니까.

패션계는 모피를 반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비건 패션’이 트렌드가 됐다. 비건(Vegan)이란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단어로, 동물로부터 채취된 그 어떤 소재도 사용하지 않겠단 에코 프렌들리(Eco-Friendly) 기조를 말한다. 노 퍼(No Fur:모피) 노 레더(No Leather:가죽)를 외치는 스텔라 맥카트니가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며, 이러한 트렌드는 더욱 확장되는 추세다. 러쉬나 비욘드 등 브랜드가 앞장서 동물실험 반대 캠페인을 벌이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던 뷰티 업계에선 이젠 동물실험하는 브랜드를 찾기 힘들 정도다. 물건 판매 수익으로 위안부 할머님을 후원하는 마리몬드 브랜드나, 여성 노인 일자리 문제 해결 위해 할머님들이 직접 매듭 팔찌를 짓는 마르코로호 브랜드가 젊은 층에서 힙한 트렌드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순히 브랜드의 가치관만 중요할까. 갑질로 유명세를 떨친 남양유업과 대한항공을 향한 불매운동은 기업을 운영하는 방식, 윤리 경영 또한 중요한 항목임을 알게 해준다. 다시 말해, 이젠 모든 브랜드가 착해져야 한다는 거다.

우리는 지금 마이크로모먼츠 속에 살고 있다. 마이크로모먼츠(Micromoments)란 구글이 제시한 용어로 순간순간 콘텐츠를 소비하는 모바일 이용자의 '찰나'를 뜻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검색 및 쇼핑을 바로바로 그 찰나에 할 수 있는 이 시대는, 어찌 보면 매 순간 선택을 강요받는 기분이기도 하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이크로모먼츠 시대에 소비는 우리의 일상이다. 일하다 말고 휴가계획과 항공권 티켓팅까지 논스톱으로 처리하고, 기분이 꿀꿀한 날엔 회의실로 이동하는 와중에 '쓱배송'으로 매운 떡볶이를 당일 배송시킨다. 매 순간 선택지 앞에서 당신은 무얼 가장 우선시하겠는가.

다시 애초 기부금 이야기로 돌아가서. 콘서트가 취소됐다. 분노 혹은 절망이 당신의 머릿속을 지배한 순간, 당신은 어찌하겠는가. 확인된 바로는 콘서트 취소 소식 직후, 구호협회의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되고, 대표전화가 먹통이 되었다고 한다. 동시에 각종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엔 각종 구호협회와 단체의 계좌번호 캡처 화면이 빠르게 확산됐다. 단순히 연예인을 모방하려는 심리라면 이렇게까지 대대적이고 집약적으로 진행될 순 없었을 거다. 어찌 보면 분노와 절망이 빠르게 피드되는 그 순간, 팬은 환불된 티켓값으로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소비를 한 거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 내가 아닌 우리가 다시 행복해지기 위한 착한 옵션을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해버린 것이다. 사실 성공적인 소비만큼 나에게 만족도를 주는 일상의 경험도 흔치 않으니까.

양현진(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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