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호모 사피엔스 생존과 코로나공포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0.03.02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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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우리 사회 전체를 휩쓸고 있다. 학교가 개학을 연기하고, 공장이 문을 닫았다. 경제시스템 마비까지 우려되고 있다.

미지의 질병을 연구하고, 대처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그 과정에서 '알지 못함'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자리 잡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 과함의 정도다.



인간이 미지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오랜 진화의 산물이다. 고고학자나 인류학자들은 우리의 DNA에 각인된 '조금은 과한 걱정의 인자'가 생존을 가능하게 한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인류는 타고난 걱정꾼이고, 그런 걱정꾼이었기 때문에 생존에 유리했다는 가설이다.

학자들은 대표적으로 기원전 3만년에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의 경쟁을 든다. 3만년전 경쟁에서 네안데르탈인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호모 사피엔스보다 힘도 세고, 뇌용량(1600cc)도 현생 인류보다 200cc나 더 컸던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이유를 학자들은 두려움 없이 싸움만 하고, 종족간에 소통이 잘되지 않았던 특징에서 찾는다.

나오미치 오기하라 게이오대 기계공학과 교수팀이 2018년 4월 26일자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한데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는 전체 뇌의 크기는 네안데르탈인보다 작았지만, 소뇌(150g)는 네안데르탈인보다 8배 컸다고 한다.

이 소뇌가 경쟁에서 살아남은 키였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소뇌는 운동 조정기능과 함께 두려움과 쾌감 반응을 조절하며 주의력과 언어 등의 인지기능에 관여한다. 지레 겁먹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 것이다.


리처드 호란 미국 미시간 주립대 교수는 덩치 크고 용맹했던 네안데르탈인은 20~30명씩 가족을 이뤘지만 겁 없이 맹수와 직접 경쟁하고, 소통 부재 본능의 결과로 동족포식의 경향을 가져 종족 수가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반면 호모 사피엔스는 두려움에 야간에는 맹수를 피해 높은 나무나 동굴 속에 숨었다가, 낮에 사냥을 할 때는 소통을 통해 집단을 이뤄 함께 사냥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로버트 여키스와 제자인 존 도슨은 "너무 심한 불안은 수행능력을 떨어뜨리지만, 적당한 불안은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게 만든다"며 '걱정꾼'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 비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네안데르탈인과 맹수가 사라진 이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 뇌의 한 부분은 미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의 출현에서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정신의학계에선 오랜 기간의 과한 걱정과 염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신체 증상들이 계속되는 것을 '범불안장애'라고 한다. 또 작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큰 과도한 염려로 고통을 키우는 것을 '재앙화'라고 한다. 걱정과 염려가 더 큰 두려움을 낳는 과정이 반복되면 없었던 재앙까지도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스웨덴 출신의 통계학 분야 세계적인 석학인 한스 로슬링은 저서 '팩트풀니스(사실충실성)'에서 어떤 재앙이 오면 '공포본능'은 '비난본능'으로 바뀌고, 그 결과 '다급함 본능(The Urgency Instinct)'이 일을 그르친다고 했다.

희생양을 찾고, 거기에 눈을 돌리다 보면 제대로 된 처방이 이뤄지지 않아 더 큰 화를 반복해온 역사를 얘기한 것이다. 코로나19의 공포에 휩싸여 공장 문을 닫고, 모두 집안에 숨어 아무 것도 하지 않아 '재앙화'가 올 경우, 마스크를 쓰고 생산현장에 나와 대처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지금은 걱정에 서로를 비난하는데 몰두하기보다 코로나19를 물리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사실 충실성’에 입각해 확산 원인과 방지 대책을 찾는데 몰두해야 할 때다.

극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공포심을 유발해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은 맹수를 피할 수 있도록 할지는 모르나, 맹수가 떠난 후에도 동굴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아사하도록 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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