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살롱]"우릴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법무부·검찰 멀어진 마음?

머니투데이 이정현 기자 2020.02.2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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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들어서고 있다./사진=뉴스1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들어서고 있다./사진=뉴스1


10.13km.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대검찰청에서 정부과천종합청사 내 법무부까지의 거리다. 10km 남짓 떨어진 두 기관은 전통적으로 검찰 내 대표적인 선호 근무지다. 현재 검찰 고위직에 있는 간부들은 기본적으로 한두번씩은 대검이나 법무부에서 근무했을 정도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 법무부 탈검찰화를 시작하기 전까지 법무부에는 많은 수의 검사들이 근무했다. 대검과 법무부의 업무가 연계되는 부분이 많아 검사들이 파견가서 일하는 게 효율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대검 소속 검사들과 법무부 소속 검사들은 교류가 잦았다.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의 쪽지 기능을 이용해 업무 관련 연락을 주고받았고 통화도 자주 했으며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법조계에서는 대검과 법무부의 관계가 한눈에 봐도 예전만 못한 것 같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던 대검과 법무부가 이제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모습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재임 시절 두드러졌다. 조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사명을 갖고 법무부장관이 됐다. 그런만큼 그는 의욕적으로 검찰 제도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그 과정에서 법무부와 대검의 의견충돌이 잦아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감정이 상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조 전 장관에 이어 부임한 추미애 법무부장관도 강도높은 검찰개혁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검경 수사권조정 후속작업과 형사사건 공보준칙 개정, 수사·기소 주체 분리 추진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검찰 제도를 손보고 있다.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검찰개혁이 이뤄지자 대검 소속 검사들은 법무부 소속 검사들이 더이상 아군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법무부에 검찰국이 남아있고 검사들이 근무하니 대검의 생각을 조금은 이해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는 하나" 정신으로 대검 연구관들이 만든 정책 및 제도를 법무부가 보완해 중앙정부부처에 전달하던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법무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대검은 어떻게든 반대하려고 애쓰고 법무부는 대검의 반대를 어떻게든 숨기려는 모습이다. 그러다보니 서로가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되고 기자단에 각 기관의 입장을 담은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자주 다투기도 했다.

이같은 현상은 지난 1월 단행된 대검 검사급 인사와 고검 검사급 인사 이후 더욱 심해졌다. 현 정부가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찰청, 법무부 주요보직에 친정부 성향 인사들을 보임하기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서는 더욱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검찰 내 일종의 파벌이 생겨버린 것이다.


대검의 한 부장검사는 "친했던 동기 검사가 법무부 과장으로 갔는데 아직 이프로스 쪽지 한번 보내지 못했다"면서 "예전에는 쪽지 보내는 것 쯤이야 아무 일도 아니었는데 이제는 쉽게 그러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어 "그렇다고 전화하기도 그렇고 나중에 우연히 한 자리에서 만나면 그때 인사나 해야겠다"고 말했다.

또다른 대검의 한 간부는 "최근 법무부에 제출할 서류가 있었는데 결재를 받아 서류를 제출한 뒤 법무부에 전화해 내용을 확인하기까지 했다"면서 "예전에는 다 아는 사람들이고 또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해 믿고 일했지만 이제는 하나하나 확인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에 근무 중인 한 부장검사는 "인사 이후 법무부로 발령난 한 검사로부터 '우릴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라는 쪽지가 왔다"고 했다. 그는 "법무부와 검찰 사이의 관계가 예전보다 많이 나빠진 것 같다"면서 "결국 서로 피해보는 결과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걱정했다.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대검과 법무부가 완전히 갈라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탈검찰화 이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대거 법무부 요직을 차지했고 과거 검사들이 일하던 자리에서 일반 변호사들이 일하기 때문에 예전보다 파견 검사들이 일하기 힘들어져 법무부는 더이상 검찰 내 선호 근무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인사 전까지 법무부에서 근무했던 한 검사는 "선배 검사들이 법무부에서 근무할 적엔 대검과 소통도 원활했고 훌륭한 선후배 검사들과 함께 일하니 일하기도 쉬웠을 것 같다"면서 "내가 근무했을 때는 변호사들이 기본적으로 검찰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일하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알기론 법무부는 더 이상 검찰 내 선호 근무지가 아니다"라고도 말했다.

이처럼 검사들이 법무부 근무를 기피하자 법무부의 위상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최근 추 장관의 수사·기소 주체 분리 방안을 비판하는 저연차 검사의 이프로스 글에 김태훈 법무부 검찰과장이 6개의 반박 댓글을 달자 여러 선후배 검사들이 해당 검사를 응원하는 댓글을 남겼다. 검찰 조직의 예산 및 인사를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국 검찰과장에게 집단으로 반발한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대검과 법무부가 이처럼 사이가 멀어진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검과 법무부 사이가 10km밖에 안된다고 하지만 마음의 거리는 지금 100km도 넘을 것"이라면서 "법무·검찰 가족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만큼 관계 회복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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